[경제시평] 설계하지 말고 흐름에 맡겨야

2023. 4. 2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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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가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탄소중립 국가 목표인 '2030 NDC'는 상당 부분 탁상에서 정한 비현실적 설계에 따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 정부 정책 중 상당 부분이 설계주의적 사고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는 '계획'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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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문재인정부가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탄소중립 국가 목표인 ‘2030 NDC’는 상당 부분 탁상에서 정한 비현실적 설계에 따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재인정부의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8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인 3790만t이었으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철강·석유화학 등 관련 업종으로부터 의견을 취합하고 국책연구원들이 연구용역을 수행한 결과 2030년까지 실제 달성 가능한 온실가스 감축 규모는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5%인 1300만t이었다.

우리 정부 정책 중 상당 부분이 설계주의적 사고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는 ‘계획’에 의존하고 있다. 필자가 2006년 우리나라 법률을 전수조사한 결과 257개 법률에 무려 537개의 정부 계획이 규정돼 있었다. 지금은 이보다 더 많은 계획이 각종 법률에 규정돼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정책 실패는 잘못된 설계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그동안 자연스러운 시나리오를 짜도 될까 말까 한데 무리한 정책적 목표까지 하향식으로 욱여넣어 자원을 낭비하고 부작용이 속출한 계획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현장을 잘 모르고 머리로만 설계할 때 큰 위험이 도사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시작하면서 민주 정부를 세워 깔끔하게 국가 건설을 마치고 이라크에서 손 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동의 복잡한 정세가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지난 몇십 년의 경험이 뼈저리게 말해줬다. 미국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은 ‘지리의 복수’라는 저서에서 구체적 지리와 정세를 모른 채 설계주의적 계획을 짤 때 나타나는 위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지도는 인간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를 야단치면서 가르쳐 준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 후 나토 사령관을 지낸 다음 콜롬비아 대학의 총장을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직원들이 학교 캠퍼스에 큰 잔디밭을 조성하고 그 가운데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콘크리트 인도를 만들려는 계획을 그에게 보고했다. 그는 잔디밭은 먼저 조성하되 인도는 석 달 지난 후에 만들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은 그의 지시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시대로 잔디밭을 조성하고 3개월을 기다렸다. 3개월 동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잔디밭은 자연스럽게 파이면서 표시가 났다. 아이젠하워는 그렇게 표시가 난 길에 콘크리트 인도를 만들라고 했다. 사람이 아무리 잘 예상하고 설계했어도 실제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콘크리트 인도와 함께 보기 흉하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생길 수 있었던 것을 우려해 석 달 동안 지켜본 것이다.

출범 1년이 돼가는 윤석열정부는 문재인정부가 만들어 놓고 떠난 각종 설계주의적 유산과 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탈원전, 무리한 NDC 목표, 낮은 에너지 가격에 따른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천문학적 적자 등 산적한 문제가 많다. 꾸준히 일관성을 갖고 장기적 정책을 수행하면 시행착오와 경험을 쌓으면서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서 앞 정권의 내용을 백지화하고 다시 새로 짜지만 또다시 5년 후에는 휴지가 돼 버린다. 설계주의와 단기실적주의는 최악의 정책조합이다. 에너지 가격 규제와 같은 또 다른 인위적이고 인기영합적인 단기적 정책보다 시장원리를 따르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장기적 정책이 훨씬 낫다는 것을 우리의 경험은 말해준다. 지금 우리 정부에는 엘리트식 관료주의가 고집하는 설계주의적 정책보다 겸손하게 경험과 시장의 흐름을 존중하는 유연함과 인내가 필요할 때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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