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의 이코노믹스] 대출로 산 아파트, 가격 급락 땐 시장 파괴자로 돌변

2023. 4. 2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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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붐은 어떻게 위기를 부르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아파트 실거래 가격 하락을 비롯해 위험 요소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1월 아파트 실거래 가격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감률은 서울, 수도권, 그리고 전국 각각 -21.0%, -22.0%, -17.1%에 달한다. 2022년 7월을 계기로 집값 하락이 본격화했는데, 그 하락 폭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 부동산 급등락, 금융위기 전조
미국선 서브프라임 사태 불러

거래 막히면 가격 급등락 발생
세제·규제 정비해 물꼬 터줘야

시장 연착륙이 위기 방지 핵심
대출금리 뛰지 않게 관리해야

수도권 아파트값 20% 넘게 떨어져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2021년도 기준으로 아파트 실거래 가격의 서울, 수도권, 전국 최고 상승률이 각각 28.4%(3월), 32.7%(9월), 26.1%(9월)까지 기록했음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조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021년의 집값 급등이 국민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준 것 같이 2023년의 급락 역시 경제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후 하락하는 시기는 대체로 금융위기와 겹치거나 금융위기로 이어진 전조였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대표적인 예로 부동산 가격 급등과 함께 이뤄진 서브프라임 부동산 담보대출의 확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많은 금융위기도 부동산 붐과 이어진 가격 하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초반 일본 금융위기 역시 1991년 1분기를 정점으로 그 이전에 급등하던 부동산 가격이 그 이후 계속해서 하락했던 사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선진국·개도국 모두 비슷한 패턴

이러한 패턴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태국·말레이시아 등은 위기를 전후해 몇 년간 부동산 붐과 가격 급락을 경험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태국 수도 방콕의 거주용 부동산 실질 가격은 1991년 1분기를 100으로 볼 때 1993년 2분기 130으로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해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1997년 3분기에는 120 정도로 떨어졌고 이후 금융위기 진행과 함께 1999년도 2분기엔 80 정도까지 하락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부동산 붐과 위기의 순환은 안정적인 사회복지 체제를 갖춰 주거 걱정이 크지 않을 것 같은 나라에서도 발견된다. 유럽의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에서 1990년대 초반 발생한 ‘스칸디나비아 금융위기’가 이런 위기의 전형적 모습이다. BIS 자료에 따르면, 정점이던 1990년 1분기에서 저점인 1993년 1분기까지 3년간 스웨덴의 실질 거주용 부동산 가격은 30% 정도 하락했다.

노르웨이 역시 정점인 1987년 2분기에서 저점인 1993년 1분기까지 5년에 걸쳐 57% 정도 떨어졌다. 핀란드는 더욱 심각했는데, 정점이던 1989년 1분기에서 저점인 1993년 1분기까지 4년에 걸쳐 65% 폭락했다. 대개 금융위기 직전에 부동산 가격 급락이 전개되고 금융위기 진행과 함께 부동산 가격 하락은 더욱 악화한다.

레버리지 효과, 급락기엔 손실 증폭

이처럼 부동산 가격의 움직임이 금융위기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은 상당한 자금조달이 대부분 대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투자한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투입한 자기 자금에 대비해 훨씬 더 큰 폭으로 수익과 손실이 확대되는 ‘레버리지(leverage) 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상승할 때는 문제가 나타나지 않지만, 일단 가격 하락이 시작되면 손실이 증폭된다. 특히 대부분 시기가 금리 상승기이기 때문에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 커지고, 이는 결국 부동산 매각 증가로 이어지면서 가격 하락을 가속화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경우엔 레버리지 효과를 추구하는 자금 유입이 급증하지 않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은 과도하게 대출에 의존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뜻이고 그 결과 가격 급등 이후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대출 자체도 부실화하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증시 폭락도 과다 대출이 요인

부동산의 경우 워낙 대출 중심으로 자금조달이 이뤄지기 때문에 레버리지 효과와 이에 따른 위기가 두드러지지만, 어떤 자산이든 투자의 상당 부분이 대출로 조달된 자산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엔 이후 가격 급락과 함께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발생시킬 사업의 현금흐름에 기반해 현재 가치를 평가하는 기업 가치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 주식의 가치는 근본적으로 변동성과 불확실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기에 레버리지 효과를 기대하고 과도한 대출에 기반해 투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1929년 미국 대공황 당시의 주식시장 대폭락 역시 일반 대중이 투자하는 주식 매입 자금의 상당 부분이 대출로 이루어졌던 부분과 관련이 높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부동산 대출 성격이지만, 불확실한 미래현금흐름에 대한 투자로 볼 수 있는 것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다. 주거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주거용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지니지만 부동산 PF의 경우는 주로 상업용 부동산의 자금조달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경기 민감 사업의 불확실한 미래현금흐름에 기반을 둔다고 볼 수 있어서 금융위기를 유발하는 계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PF, 금융위기의 지렛대

유명한 사례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 미국에서 발생한 저축대부조합(S&L) 사태다. 저축대부조합이 지역 사회의 주택담보대출 정도를 취급할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일종의 상업용 부동산 PF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위험 노출이 커졌고 1980년대 후반 미국의 기준금리 상승기에 많은 대출이 부실화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현재와 같이 이자율은 높아지고 경기가 침체하면 상업 부동산의 경우 미래현금흐름 전망은 악화하는 가운데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는 구조여서, 수익과 비용 모두에서 재무적인 압박을 받아 위험해지기 쉬운 것이고, 현재의 이러한 측면이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고리를 끊을 방안은 무엇인가.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이러한 상황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부동산 가격의 과도한 급등을 제어하는 것이겠지만, 이미 일어난 상황에서는 레버리지 효과의 재무적 위기가 경제 전반의 금융위기로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억지로 부동산값 묶지 말아야

그러한 관점에서 가장 핵심은 부동산 가격이 연착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가격 하락이 악화하며 대규모 매각으로 이어져 가격은 폭락하고 대출이 부실화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때도 그렇지만 하락 국면에서도 가격의 안정적 흐름을 유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그렇다고 가격을 억지로 특정 수준에 묶어두려는 시도 자체는 대개 성공하기 어렵다.

가격 안정화의 핵심은 사실 시장에서의 원활한 거래다. 거래를 제약하는 규제는 가격을 급등시키거나 급락시킨다. 반면에 구매자와 판매자가 원활하게 거래를 할 수 있다면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거래와 관련한 규제나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오히려 소득이 있는 사람들은 과도하지 않은 범위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물가상승을 제어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더라도 예대 금리 격차의 과도한 확대 때문에 대출금리가 지나치게 오르지 않도록 금융감독 차원의 관리도 중요하다.

그런데 주거용 부동산에 비해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는 또 한 가지 요건이 추가로 필요한데 그것은 경기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미래 경기상황 개선에 대한 신뢰 없이는 부동산 PF처럼 불확실한 미래현금흐름에 기초한 투자가치의 흔들림을 막을 수 없고 그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위기가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신뢰 확보가 관건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비롯한 대출의 부실화로 금융기관에 일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통화 당국이 이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확실한 신호를 보냄으로써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레버리지 효과의 재무적 취약성은 언제든지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금융위기로 증폭시킬 수 있지만, 그 원인과 경로를 확실히 파악하고 이에 대해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위기를 관리할 수도 있다. 과거 위기가 발생했던 때와 유사한 글로벌 환경과 금융시장이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경각심을 한층 높이고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적절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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