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심각한 위협” 세계의 법원들, 변화 시작됐다 [이슈&탐사]

이경원,이택현,정진영,김지훈 2023. 4. 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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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멸종위기종 인간]
북극곰 한 마리가 북극해 러시아령인 프란츠 조셉 랜드 군도의 빙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지난달 20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열린 제58차 총회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지 않으면 2040년 내 지구평균 기온이 1.5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AFP연합뉴스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후 시스템 보장’을 촉구한 미 하와이주 대법원의 판결이 매우 유별난 것은 아니다. 정부의 충실한 기후위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거나 화석연료 발전소 폐쇄를 청원하는 소송들에서 세계 곳곳의 법원과 헌법재판소들은 전과 다른 판례들을 내놓고 있다. 허무한 주장으로 치부되던 미래세대의 권리는 ‘세대 간 형평’이라는 해석과 함께 판결문에 담기기 시작했고, 전통적으로 법원이 개입하지 않던 입법부·행정부의 재량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요청이 이뤄지고 있다.

과학적 사실과 인권적 판단

마이클 윌슨 전 하와이주 대법관은 지난 22일 국민일보에 “(‘후 호누아’ 사건의) 보충의견에는 파키스탄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먼저 진행돼온 논의들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가 짚은 이들 나라 판결의 공통점은 기후위기로 인한 위협을 사실로 인정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법원이 기본권 보호의 필요성을 판단했다는 것이다. 윌슨 전 대법관은 “용기 있는 판사들이 나선 결과지만 변화는 이제야 막 시작됐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고등법원은 2015년 정부가 농부 아쉬가르 레가리씨의 생명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기후변화 정책의 마련과 실행을 지연한 부작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고법은 정부가 기후변화 담당자를 지명해 계획을 이행할 것, 과학자를 포함한 기후변화위원회를 설립해 정책 이행을 점검할 것을 주문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이미 1994년에 대법원이 “완전한 과학적 확실성의 부족이 환경 악화를 방치하는 이유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정부가 그린벨트 지역에 고압 송전망을 건설하는 것이 인권 침해라는 지역 주민들의 주장에 대한 답변으로, 대법원은 1992년 리우 선언에서의 ‘예방적 원칙’을 언급했다.

프랑스 국참사원(최고 행정법원)의 ‘그랑생드시 판결’도 법원이 정부에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취할 것과 관련 법률의 제정을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 국참사원은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 판결을 통해 “정부는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용한 조치를 하라”고 주문했다. 환경단체들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지만 개인 원고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던 다미앵 카렘 전 그랑생드시 시장은 유럽인권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그의 사건은 스위스 여성노인단체가 “스위스 정부가 온난화에 기여한다”며 정부를 제소한 사건과 함께 지난달 공개변론이 진행됐다. 스위스 사건을 법률자문하는 네덜란드의 데니스 반 베르켈 우르헨다재단 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판관들이 매우 정확한 질문을 던졌다” “제소 1년 반 만에 공개변론이 열린 건 빠른 속도”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대법원의 2019년 ‘우르헨다 판결’은 최고법원이 국가의 기후변화 대응이 위법하다고 확정 판결한 최초의 사례다. 소송의 쟁점은 정부가 1990년 대비 2020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5%가 아닌 17%로 설정한 것이 주의의무 위반인지의 여부였다. 대법원은 “과학적 증거와 국제적 기준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후변화가 네덜란드 국민의 생명과 복지에 심각한 영향을 줄 위험이 있다”며 국가의 의무 위반을 판단했다. 이후 아일랜드 대법원도 2020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원본 사이즈의 그래픽은 국민일보 홈페이지 기사에서 이곳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미래세대의 기본권 침해

환경 문제에 관해 ‘미래세대의 권리’는 법조계에서 논란이 분분한 주제였다. 이와 관련해 “법원이 ‘세대 간 정의’를 심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 사례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2021년 독일 기후보호법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독일 헌재는 연방기후보호법에 온실가스 감축의 구체적 목표가 없어 “미래세대 자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2030년 이후에는 미래세대에게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고 반대로 감축 부담은 현저히 높아진다는 ‘탄소 예산’ 개념에 기초한 판단이었다.

2030년 이후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현행법이 현재 세대의 부당한 기본권 침해 행위라는 독일 헌재의 판단은 이후 세계 각국의 기후변화 소송에서 빠짐없이 인용되고 있다. 베르켈 변호사는 독일 헌재가 현재와 미래의 탄소배출량을 과학적으로 계산해 미래세대의 불리함을 발견한 것을 두고 “정치권의 판단을 크게 뛰어넘는 사법의 통찰력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네팔 대법원은 2018년 ‘슈레스타 판결’에서 “우리가 지속가능발전 원칙과 세대 간, 세대 내 형평성의 원칙을 수용하고 생물 다양성 및 생태계 보존을 위한 법을 제정해야만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기후정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콜롬비아 대법원은 2018년 이른바 ‘미래세대 판결’에서 “아마존 벌채행위는 근본적 권리 침해”라며 정부가 아마존강의 일부인 아트라토강 일대에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콜롬비아 헌법재판소가 아트라토강에 보호·복구 받을 권리를 부여한 데 따라 나온 대법원 판례였다.

칠레 메히요네스 주민들이 “‘안모스 화력발전소’의 사업계획 평가 때 기후변화가 고려되지 않아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제기한 소송은 항소법원에서 “행정부에 속한 권한”이라며 기각됐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지난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점진적이고 계획된 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을 뒤집었다. 윌슨 전 대법관은 “정부에 대책을 요구해온 판사들, 발전소의 계획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검토해온 판사들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이경원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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