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에 중국의 반도체 부족분 채워주지 말라 압박”
‘중국의 반도체 부족을 한국이 돕지 마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미국 백악관이 한국 정부에 보낸 청구서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에 중국이 반격에 나서자 미국이 한국 정부를 압박해 추가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은 미·중 두 고래 사이에 끼여 ‘등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새우 신세에 몰리고 있다.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백악관이 한국 정부에 ‘중국 정부가 마이크론의 중국 내 반도체 판매를 금지할 경우 한국 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지 말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양국 최고위급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이 동맹국 기업에까지 일정 역할이나 동참을 요구한 사실상 첫 공개 사례다.
세계 D램 시장은 빅3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 45.1%, SK하이닉스 27.7%, 마이크론 23%다. 마이크론이 빠지면 자연스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마이크론은 지난해 매출(308억 달러)의 25%가량을 중국 본토와 홍콩 등에서 올렸는데, 중국의 심사가 제재로 이어질 경우 위험부담이 크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당혹스러운 눈치다. 두 회사 관계자는 “‘중국의 반도체 부족분을 메우지 말라’는 요구를 받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반격에 나서려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입장은 더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수출통제 조치를 내놓은 데 이어, 최근엔 반도체법을 통해 지원금을 받는 기업의 중국 생산 확충을 저지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내놓으며 중국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반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패권과 사익을 지키기 위해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공급망 단절을 강권하고, 동맹국에도 대중 압박에 협조토록 했다”며 “전형적인 과학기술 괴롭힘이고, 보호무역주의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31일 중국 당국은 마이크론 제품에 대해 ‘안보 심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결국 미국 정부가 한국 측에 내민 이번 ‘청구서’는 대리인 격인 한국을 내세워 중국의 반격을 진압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자국산 장비를 활용해 첨단 3차원(3D) 낸드플래시 반도체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또 YMTC가 ‘우당산’이란 이름의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해 엑스태킹(Xtacking 3.0) 낸드플래시 제조를 시도하고 있으며, 자국 반도체 장비업체 베이팡화창(나우라 테크놀로지)에 식각(에칭) 장비 등을 대규모 발주했다고 덧붙였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대중 압박을 강화할수록 중국은 자체 학습을 지속해 자국의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나설 것”이라며 “현재도 중국 기업의 중저가 플래시메모리 기술은 상당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지적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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