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 올려야 물가 내려간다? 그들의 위험한 믿음
매일같이 쏟아지는 경제 이슈 보도들을 진보경제학자가 날카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편집자말>
[전용복,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 지난 16일 오전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붙은 주택담보대출 안내문.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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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위험한데... 정말 금리 인상이 답일까 https://omn.kr/23lzv
설명 ② : 금리 인상 → 수요 감소 → 물가 하락
금리 인상이 어떻게 물가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지에 관한 두 번째 설명은 '수요 억제'다. 금리가 올라가면 소비와 투자 모두 감소한다는 논리다. 우선, 금리가 올라가면 소비 대신 저축을 더 많이 한다. 이자소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리가 올라가면 투자 비용이 증가해 투자 수요가 감소한다.
금리와 수요(소비 및 투자) 사이의 관계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금리가 오른다고 꼭 수요가 감소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연구도 매우 많다. 여기서 논점은 이런 논쟁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물가상승의 원인을 대하는 관점이다. 이들은 '실업률을 높여야' 물가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 [그림 1] 필립스 곡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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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리가 수요에 영향을 미쳐 물가를 관리할 수 있다는 논리에 숨겨진 가정을 이해해야 한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 상충관계가 안정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정이 그것이다(가로축에 실업률, 세로축에 물가상승률을 표시하고, 두 변수 사이의 상충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그래프를 '필립스곡선'이라 부른다. - [그림 1] 참고).
노동자의 협상력이 클수록 이 상충관계도 더 커진다(즉, [그림1]의 기울기가 가팔라진다. 앞서 지적한 '통화량 증가에 따른 물가상승' 주장은 필립스곡선 전체가 위로 이동한다는 의미다. 이 곡선이 위로 이동하면, 똑같은 실업률 수준에 대응하는 물가상승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금리 인상은 어떻게 실업률을 높일 수 있나? 다음의 인과관계라면 가능하다. '금리 인상 → 수요 감소 → 경기침체 → 실업률 상승 → 물가하락'.
실제로 올 3월 7일 미국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당)은 연준(Fed) 의장 파월을 상대로 "연준의 금리 인상 목표가 올해 말까지 실업률을 1% 포인트 높이려는, 다른 말로 200만 명의 실업자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마지 못해 이를 인정하면서도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수 있음을 알지만, 물가상승은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주장하며, 실업률 상승 목표를 정당화하려 애썼다.
이기에 대한 반론은 너무나 많다. 작금 물가상승의 원인이 낮은 실업률 때문이 아니라는 반론이다. 더 구체적으로, 물가가 급등하는 동안 임금도 상승한 것은 맞지만, 임금이 상승한 정도가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물가상승이 먼저고 임금 상승이 뒤따랐다는 점도 사실이다. 임금이 원인이 되려면 최소한 물가상승 이전에 올랐어야 했지만, 양자는 반대의 순서였다.
작금 물가상승의 실제 원인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다룬다. 여기서는,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앞에 두고도, 왜 실업률 상승을 정책 목표를 정했냐는 점이다, 그것도 경기침체의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 정부는 지난 1월 30일 앞으로 구직자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대신 구직자의 취업을 촉진하고 근로 의욕을 높이는 방향으로 일자리 정책을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제5차 고용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실업급여 수급자격 신청을 위해 안으로 향하는 모습. |
ⓒ 연합뉴스 |
현대 통화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론의 두 번째 핵심 전제는 '실업률이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면 물가상승률이 점점 더 높아진다'는 명제다. 부연하면, 실업자 수가 너무 적으면 노동자의 협상력이 강화돼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이것이 물가로 전가된다.
일단 물가가 이렇게 예상을 벗어나 상승하면, 노동자는 다음 임금 협상에서 높아진 물가상승을 반영해 더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물가는 더 높아진다. 이렇게 반복되는 과정을 '임금-물가 동반 상승 현상'이라 부른다. [그림 1]로 설명하면, 필립스 곡선이 계속 위로 이동한다. 이 '일정 수준의 실업률'의 이름조차 '자연실업률'로 지어서, 이 전제가 마치 어떤 자연법칙인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실제로,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정부의 정책이 자연실업률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연실업률은 경제의 구조적 특징을 반영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조적 특징이란 '노동시장'과 그 위에 부과된 다양한 제도들(최저임금, 실업보험, 강성 노조와 그들을 보호하는 법제 등) 사이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아무런 제도적 제약이 없는 순수한 노동시장이었더라면 실업은 존재할 수 없다. 순수한 노동시장이란 임금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변동하는 세상을 말한다. 여기서는 실업이 발생하면(즉, 노동이 과잉 공급이면) 임금이 하락하고, 고용이 증가한다. 그 흔한 수요-공급 논리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고용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임금 하락을 방해하고, 그 결과 실업이 발생한다.
정리하면,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①물가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의 상충관계와 ②자연실업률의 안정적 존재를 '전제'한다. 자연실업률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특히 중요하다. 금리 인상의 직접적 목표가 실업률을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실업률이란 관념은 잘 작동하는 노동시장에 대한 '믿음'에 기반하고 있음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 이론 혹은 맹목적 믿음?
처음으로 돌아가자. 금리 인상으로 금융위기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왜 이런 위험을 감내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나? 불행히도, 이 외엔 대안이 없다는 담론이 지배한다. 그런데 이 주장에 뭔가 심오한 이론이 있는 것 같지만 '시장에 대한 맹신'일 뿐이다. 이 맹신에 따라 물가 대책이나 여타 경제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은 고려조차 되지 못하고, 모든 경제정책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기준금리 조절)에만 의존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 근본적인 믿음, 즉 시장이란 믿을 만한 것인가? 특히 잘 작동하는 노동시장이란 존재하기나 할까? 전 세계의 경제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좇은 것이 허상은 아닐까? 이들이 믿는 경제학은 경험이 주는 교훈을 중시하는 실증적이고 실용적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어떤 이상형을 미리 정해 놓고, 현실을 거기로 끌고 가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경제학은 규범적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이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잘 작동하는 이상적 노동시장이란 가능할까? 우선 경험적 증거부터 보자. 그간 자연실업률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근본적 의문이 들게 하는 증거들이 축적돼 있다.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3월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당시 연준은 기준금리를 기존보다 0.25%포인트 높은 4.75~5.00%로 올렸다. |
ⓒ 신화=연합뉴스 |
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다시 한번 상기하면, 현재의 통화정책을 뒷받침하는 전제는 자연실업률이 안정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이는 잘 작동하는 노동시장을 전제한다. 잘 작동하는 노동시장이란 일반 상품과 유사하게 노동에 대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시장이다.
하지만 이 수요·공급 곡선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고, 그들이 '안정적'(가령, 임금이 1만 원일 때 노동수요는 ○○시간, 노동공급은 △△시간, 그리고 임금 1원이 상승할 때 노동의 수요량은 ▢▢시간 감소하고 공급량은 ◊◊시간 증가한다 등)이란 증거는 전혀 없다.
하나의 예시로 노동수요를 생각해 보자. 노동의 수요곡선이란 임금 수준에 따라 고용 여부를 결정하는 기업의 전략을 나타낸다. 가령, 표준적 노동 수요곡선이란 임금이 높아지면 기업은 고용을 덜 한다는 의미다. 과연 이런 단선적 관계가 존재할까?
고용뿐 아니라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요인은 이윤 확대 가능성이다. 그런데, 기업의 이윤을 결정하는 요인은 임금 외에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경기가 확장하고 있어 자사의 생산물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는 상황을 고려해 보자. 수요 제약이 없으니 단가가 평균 생산비보다 높은 한, 더 많이 생산할수록 이윤 총량은 증가한다.
이 경우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이윤이 증가하는 한 고용은 증가할 것이다. 임금인상에 따른 추가 비용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는 임금이 상승하면서도 고용이 증가하는 경우이고, 표준적 노동 수요곡선에 반한다. 하지만 표준적 노동 수요곡선은 이러한 지극히 상식적인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어쩌면 표준적 노동의 수요·공급 곡선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순수 허상일 수도 있다.
제도적 요인에 의한 노동의 상시 초과공급이란 진단도 역사적 경험과 다르다. 자본주의 전체 역사에서 말 그대로 '완전고용' 상태를 달성한 경험은 없다.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한 이후 실업자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했다는 사실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전형적인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교차하는 점)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노동시장이 형성되면서부터 임금이 자유롭게 하락하지 못하게 만드는 제도가 존재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참고로 세계 최초의 최저임금 제도는 1894년 뉴질랜드이고, 미국은 1938년, 프랑스도 1950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가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처참했던 노동자의 상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임금이 그보다 더 하락한다면 인간 사회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노동을 보호하는 제도들이 도입된 것은 아닐까? 인간 사회 자체가 붕괴하는 임금 수준에서야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교차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경제학자를 조롱하는 유머가 돌았다.
경제학자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이 경제학적 해법이 어이없는 이유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어떻게' 넣을지에 관한 설명(질문의 핵심) 대신 그것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을 설명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에 기반한 기준금리 인상 주장은 이 조롱과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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