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운운'에 울분 토한 전세사기 피해자들 "또 죽어야 법 바뀌나"

박정훈 2023. 4. 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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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민주당-피해자 대책위 간담회... "정부·여당 대책 '알맹이' 없어, 사각지대 놓치면 안돼"

[박정훈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저희 국세로 뭐 해달라는 거 아니에요. 범인들 잡아주세요. 이 사람들 지금도 비웃듯이 명품차 끌고 다니고 명품으로 치장하고... 이 사람들 호화 결혼식 하는데 우리는 장례식 했어요. 왜 사기꾼들이 잘못하고 있는데 서민들이 이렇게 힘들어야 하죠? 인생이 너무 망가졌어요.

또 죽어야지 법이 바뀌나요. 제가 (보증금) 3억 이상인 분들 탄원인 대표예요. 저라도 어떻게 할까요? 앞이 안 보여요. 아무리 이렇게 해도 이재명 대표님, 조오섭 의원님, 허종식 의원님한테 그 마음이 안 닿을것 같아요. 그런데 이재명 대표님은 좀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전세 사기 피해자 하아무개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앞에서 눈물로 호소했다.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와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에 참석한 하씨는 "아무리 얘기해도 자기가 안 겪으면 모른다"라며 정부가 마련한 전세 사기 대응책이 다양한 형태의 피해자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전세 사기는 허그(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보험의 허점을 가지고 사기를 친 것이다. 허그 보증보험은 나라에서 만든 것이기에, 사고가 생겼다면 아예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라며 "그런데 정작 정부가 내놓는 (전세 사기) 피해 대책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사람은 별로 없다. '피해 사실 확인서'를 발급받는 것조차 까다롭다"라고 지적했다.

하씨를 포함해 이날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대책위) 소속 8명의 피해자는 각자의 피해를 증언하면서, 경매 중단을 비롯해 지난 23일 당정이 내놓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을 위한 특별법'의 실효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국민과 언론에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방안을 '혈세 낭비' 프레임으로 소비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선 구제'는 혈세 낭비? 정부·여당 프레임 정면으로 반박한 피해자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대표·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미분양 아파트 사주고, 비트코인 (투자 손해) 구제해주고 이런 것은 '세금'인데 왜 우리한테 쓰는 건 '혈세'입니까. 왜 서민들을 '진상' 취급 합니까. 저희가 부동산 법을 압니까. 길을 찾아주셔야 할 것은 여기 계신 전문가분들이세요. '안 된다' '못 한다' 하지 마시고 세부적인 방향을 제시해주시고 이 문제를 여기서 바꿔야 합니다."

안상미 대책위 위원장은 전세 사기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혈세 낭비'로 바라보는 프레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3일 야당의 '선 지원 후 구상권 청구' 지원 주장에 대해 '전세보증금을 혈세로 지원한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24일 "사기 범죄에 대해 앞으로는 국가가 떠안을 것이라는 선례를 대한민국에 남길 수는 없다. 선을 넘으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계속 (정부에서) 뭔가를 해준다고 하는데 '알맹이'가 없다. 예전에 나왔던 대책은 우리와 안 맞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불안감이 크다"라며 피해자들과 소통을 거쳐 대책을 만들기를 요구했다.

안 위원장은 전세 사기 주범으로 구속된 남헌기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그는 "이것이 선례가 되어야 한다. 남헌기 일당과 바지 임대인까지 다 털어서 기소해야 한다"라며 "솜방망이 처벌을 하지 않고 기준을 정확히 잡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피해 당사자 최은선씨는 "절대 안 된다던 '경매 중지' (대책이) 이뤄졌다"라며 ▲세부적인 중지 기간 ▲NPL(부실채권)으로 넘어가는 것 방지 ▲이자 발생에 대한 대응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고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권아무개씨와 박아무개씨는 '부부 합산 소득 7천 이상', '보증금 3억원 이상' 등의 조건에 맞지 않을 경우 저리 대출 등 전세 사기 피해자를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 역시 일종의 사각지대라고 비판했다.

앞서 '보증금 3억 원 이상 탄원인 대표'를 맡고 있다고 밝힌 하씨는 "보증금 3억 이상인 분들, 그 돈이 다 자기 돈이냐, 80% 이상이 대출이다"라며 "가장 비쌀 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때 (전세로) 들어간 사람들이 다 3억이다. 그 사람들 10평도 안 되는 집에 부모님 모시고 산다"라고 토로했다.

하씨는 전세 사기가 '전 정권 탓'이라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대해 "전 정권 때의 문제라고 치자. 그럼 그 전 정권 때는 (문제가) 없었나"라며 "부동산이 올라가다가 딱 꺾이면 이런 문제가 계속 생긴다 (...) 제발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 정권도 지금 정권도 내 나라고 내 정부다. 우리나라에서 좀 살게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이재명 "예산상의 어려움? 사람 죽고 사는 문제에 인색한 정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세번째)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고충 접수센터 개소 현판식에서 제막식을 하고 있다. 왼쪽 세번째는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장.
ⓒ 공동취재사진
 
이날 이재명 대표는 "앞으로 예방 대책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도 구제책에 주력해야 될 때라고 생각이 된다"라며 "사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또 정부 정책 상의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상당 정도 책임을 지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여당은 '예산상의 어려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연간 6조 원이 넘는 초부자 감세는 과감하게 해치우면서 국가 예산에 비추어봤을 때 극히 소액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피해 보상과 관련된 예산에는 너무 인색하다"라며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기 때문에 정부가 조금 더 과감한 전향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소속 김남근 변호사는 정부·여당이 경매 중지와 LH의 우선 매수권 행사 등을 대책으로 내놓은 것에 대해 "여러 가지 피해 유형들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임차인의 선택에 따라서 여러 방안으로 실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데, 너무 정부가 이걸 정쟁적으로 몰고간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매가 진행되지 않고 발이 묶여서 보증금들을 돌려받고 있지 못한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선 지원 후 구상권 청구' 방식을 통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하는 '주택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정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을 내놓은 조오섭 의원은 "국민의힘이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하는데 무슨 내용인가"라며 "(민주당은) 선 지원 후 구상권 청구의 원칙을 지키겠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가 끝나고 민주당은 중앙당사 2층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정책에 반영해 개선하기 위한 기구인 '전세사기 피해 고충센터' 개소식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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