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도 못 막는 '직장 갑질'…감소하고 있지만 '사각지대'는 여전
#1. 술 약속에 늦으면 질책을 들어야 했다. 휴일에 늦잠을 자서 전화를 못 받으면 직장에서 다양한 사유로 강하게 질책을 받았다.
#2. 과도한 업무 지시로 힘든 기색을 내비치자 “네가 뭐가 힘드냐” “솔직히 하는 일이 뭐가 있냐”라는 꾸지람을 들었다.
최근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는 갑질 사례가 꾸준히 올라온다. 직장 내 갑질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직장인이 늘자 정부는 법률 정비에 나섰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019년 7월부터 시행된 배경이다. 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익명 게시판에서 가져온 사례는 모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관련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설문조사 응답률은 매년 하락하고 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갑질을 경험한 설문조사 응답은 2019년 44.5%에서 36%(2020년), 28.9%(2021년), 29.1%(2022년)로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378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간접고용노동자 347만 명, 특수고용노동자 229만 명, 플랫폼 노동자 53만 명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한 이를 상대로 한 보복 갑질과 소송 등 2차 가해 사례도 있다. A씨는 육아 휴직을 거부한 회사를 신고했지만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그러자 직장 상사는 A씨를 상대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2차 가해를 차단하기 어려운 건 가해자가 갑질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실관계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사임한 영국 법무부 장관 도미닉 라브의 갑질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라브는 법무부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부하 공무원에게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간 괴롭힘 의혹 8건을 조사한 뒤 48쪽 분량의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라브 전 장관을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임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이러한 2차 가해를 보호할 장치가 없다. 직장갑질119 정기호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형사 고소나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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