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관중' 응원 속...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새 봄 맞았다
[박장식 기자]
▲ 홈에서 2부 리그 승격을 확정지은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
ⓒ 박장식 |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가 새 봄을 맞았다.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지난 23일까지 수원 광교복합체육센터에서 열린 2023 수원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 1B디비전에서 우승을 거뒀다. 선수들은 '5전 전승'이라는 놀라운 성과 속에 내년부터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사상 처음으로 1A디비전(2부 리그)를 밟는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선수들의 성장, 그리고 높아진 아이스하키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띈 대회였다. 이번 대회 기간 한국 선수단이 포함된 경기가 열릴 때면 경기장이 꽉 차곤 했다. 특히 주말 경기에는 너무 많은 관람객이 몰려 입장 제한까지 걸릴 정도였다. 흥행도, 선수들의 분투도 완벽했던 4월의 봄날이었다.
베테랑과 영건의 조화... 완벽했던 일주일
대표팀에게는 완벽했던 한 주였다. 첫 경기인 영국전에서부터 2대 1 극장골로 승리를 거뒀다. 이어 폴란드전에서는 4대 0 완승을,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는 4대 2로 승리하기까지 했다. 승격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영국전 3대 2 승리, 그리고 최종전인 카자흐스탄전에서는 경기 종료 1분 전 결승골이 터지며 2-1 승리를 거뒀다.
그렇게 대표팀은 5전 전승으로 다른 팀의 최종전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없는, '경우의 수' 없는 깔끔한 승격도 이뤄냈다. 특히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추구하면서 호그라인을 넘어 상대 진영에서 한국이 슈팅을 이어가는 플레이를 펼친 것, 그러면서도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페널티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 승리 요인이었다.
특히 선수가 2분간 퇴장당하며 상대에게 파워플레이 기회를 내주는 '페널티 킬링' 상황의 극복도 잘 해냈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파워플레이 상황 실점을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에 닥친 페널티 킬링 10개 중 9개 꼴을 무실점으로 막아냈을 정도였다.
'신구조화'도 남달랐다. 대표팀의 주장 한수진 선수를 비롯해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뛰었던 포워드 박종아 선수가 대표팀의 베테랑으로서 활약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과정에서 특별귀화했던 임대넬 선수도 다시 대표팀에 합류해 은반 위에서 여전히 스틱을 지쳤다.
그런 베테랑과 함께한 영건들의 활약도 훌륭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나섰던 김희원 선수는 이번 대회 4골, 그중에서도 결승골 2골을 몰아쳤고, 올림픽 직전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이은지도 지난 아쉬움을 털어내는 활약을 선보였다.
그런 신구조화를 가장 실감할 수 있었던 장면은 우승 확정 직후였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혼이 울리자마자, 선수들은 이번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수문장 허은비 선수에게 모두 달려가 세리머니를 펼쳤다. 6골을 허용하는 동안 119개의 슛을 막아냈던 허은비 선수는 2004년생 '영건'이었다.
▲ 23일 수원 광교복합체육센터에서 열린 여자아이스하키 WC1B 세계선수권 카자흐스타전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선수들이 허은비 골리에게 달려들어 기쁨을 나누고 있다. |
ⓒ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
광교복합체육센터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아이스하키 대회에 최다 관중이 입장했다는 신기록도 쓰여졌다. 특히 주말에는 하루 2000명~3000명 안팎의 관중들이 입장하면서 열띤 응원을 펼쳤다. 특히 아이스하키복을 입고 나온 어린이들과 주변에 홈구장이 있는 아시아리그 팀 HL 한라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적잖았다.
수원시와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공조한 훌륭한 홍보 덕분이었다. 이번 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을 수원 곳곳에 설치하는가 하면,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 역시 대회를 알 수 있게끔 '지역 밀착 홍보'에 더욱 신경을 썼다. 협회 역시 선수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하는 등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대회 붐업에 나섰다.
그런 붐업이 너무나도 잘 통한 덕분에 예상 밖 흥행이 벌어졌다. 주말 경기에서는 관람석의 수를 뛰어넘은 관람객이 입장하면서 '입장 제한'이 걸리기도 했다. 매 피리어드 때마다 빙상장 안으로, 그리고 관중석 안으로 오가는 인원을 통제하느라 협회 직원들이 꽤나 애를 먹기도 했다.
관중석 풍경도 한국에서 열리는 아이스하키 대회가 맞나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장내 아나운서의 응원 유도에 따라 열띤 응원을 펼치는가 하면, 한국이 골에 가까워지는 상황이 오면 큰 함성을 내면서 한국의 '일곱 번째 포워드' 역할을 확실히 해냈다. 선수들 역시 관중들의 '특급 활약'에 놀라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협회 역시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 대회 매일 116석의 유료 좌석을 판매했는데, 이 유료 좌석이 모두 매진되면서 다른 관중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특히 대회 종료 직후에는 로비 전체를 자연스럽게 선수 및 코칭스태프의 '사인회장'으로 변모시켰다. 완벽하면서도 유연한 운용이 만든 흥행이었다.
'평창의 유산' 제대로 남겼던 선전... 앞으로를 기대해
대표팀 선수, 코칭스태프의 주축을 이룬 수원시청 여자 아이스하키 팀의 지원도 선수들의 선전에 도움을 주었다. 특히 수원시청은 상당히 특이한 팀이다. 초·중학교 팀의 창단과 고교·대학팀의 창단이 선행되어야 성사되는 스포츠 직장운동경기부, 이른바 실업팀이 학교 팀 없이도 창단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을 둘러싼 논란이 일자, 정부에서 실업팀 창단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을 위해 처음으로 모였던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간절히 바라왔던 실업팀이 20년 만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평창의 유산'이 헛되지 않음을 선수들은 증명해냈다. 홈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5년 만에 열린 세계 대회에서 선수들의 손으로, 한국 스포츠 팬들 앞에서 자신들이 성장했음을 알렸다.
물론 앞으로 갈 길은 멀다. 내년 열리는 세계선수권 2부리그에서는 잔류, 즉 생존을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고, 올림픽 출전권도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평창을 넘어선 영광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터. 하지만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이 꽃길이라는 것만큼은 변치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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