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 한마디한 상사 '역갑질' 찍힌다…귀 닫고 입 닫는 전쟁터
국내 한 바이오 기업에 재직 중인 A상무는 최근 인사팀 관계자의 연락을 받았다. 함께 일하는 B팀장이 제대로 업무를 못한 것과 관련, 가볍게 웃으면서 “잘 좀 하자”고 말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서로 오래 알고 지냈던 사이임에도 B팀장은 상관인 A상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모욕감을 느꼈다'는 게 이유였다. 한 달여 간 회사 자체 조사 끝에 A상무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씁쓸함을 지우기 힘들다고 했다.
대기업 계열 유통 업체에 재직 중인 C부장도 최근 회사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과장급 직원인 D씨의 갑작스럽고 잦은 오후 반차와 관련해 “업무 흐름이 끊긴다”고 주의를 주면서다. 잦은 휴가 사유는 “반려견이 아프기 때문에 돌봐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주 자리를 비운 팀원에게 중요 업무를 맡기지 않은 것도 경고의 한 원인이 됐다. D씨가 “업무에서 자신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추가로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놓고 기업 곳곳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코로나19 재택근무로 한동안 잠잠하다가 최근 정상 출근을 택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관련 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은 여전히 문제다. 24일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장 내 괴롭힘 접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 관련법이 처음 시행된 이후 지난해 말까지 총 2만9930건의 직장 내 괴롭힘(중복신고 포함)이 접수됐다.
블라인드 앱, 글로벌 본사 등을 통해 공격
최근엔 상급자가 하급자에 대한 갑질 못지않게 하급자가 상급자에 대한 ‘역(逆)갑질’ 사례도 늘고 있어 논란이다. 사내 괴롭힘 등을 이유로 직장 상사를 공격하는 식이다. 방식은 다양하다. 사내 HR 담당 부서나 감사팀에 감정 섞인 제보를 하는 건 기본.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드 등에 특정인을 공격하는 내용을 게시하기도 한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엔 글로벌 본사로 투서를 넣는 일도 잦다고 한다. 유튜브나 각종 익명 사이트 등을 통해 역갑질 관련 노하우를 공유하는 일도 있다. 퇴직 사유가 ‘직장 내 괴롭힘’인 경우 실업급여 등을 받을 때 유리해서다. 노무법인 유엔의 김성중 노무사는 “2021년만 해도 역갑질 관련 사례가 별로 없었는데, 체감상 지난해에는 (과거의) 세 배는 되는 것 같다”며 "성희롱은 업무 관련성을 포괄적으로 인정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기준 자체가 더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 주장 중 상당수는 공식적으로 인정받긴 어렵다는 얘기다.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이 이어지면서, 일단 퇴사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논란 당사자 중 주로 상급자들이 택하는 방식이다. 징계 등으로 이어질 경우 이직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인사 담당자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관련 절차에 따라 갑질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것부터 담당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면담 등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사 쪽 담당자가 되레 시비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인사담당인 E 씨는 “사내 괴롭힘 관련 당사자에게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고지하는 과정에서 해당자가 ‘인사까지 나를 괴롭히는 거냐’라고 신고를 해 당황한 적이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처세 등 부작용
이수기·김민상 기자 lee.sooki@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미려 "가슴 축소 권하던 전 매니저, 내 가슴 몰래 찍어놨다" | 중앙일보
- 전 KBS 통역사 고백 "정명석 추행 보고도 문제로 인식 못 했다" | 중앙일보
- 결혼식 비용만 85억…中배우와 결혼한 카지노 재벌 딸은 누구 | 중앙일보
- "'김건희 여사, 장관 부인에 나가달라'는 허위"…우상호 송치 | 중앙일보
- 미러볼 달고 입장료 남자 3만원...딱 걸린 '제주 게하' 파티장 | 중앙일보
- 조현병 딸이 정상이었을지도…날 분노케 한 '부부와 대리인' | 중앙일보
- '백종원 매직' 이번엔 삽교곱창?···"똘똘 뭉칠건가" 의미심장 발언, 무슨일 | 중앙일보
- 이철우, 서세원과 인연 공개…"잡혀가도 괜찮다며 유세해준 친구" | 중앙일보
- 제자 때리고 그 어머니 성추행…고교 운동부 코치에 벌금형 | 중앙일보
- "누나가 봄 보여줄게"…유창한 중국어로 평양 소개한 연미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