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전세 사기 피해자 보증금 보전"…원희룡은 "선 넘는 것"

하남현 2023. 4. 2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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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국민의힘이 전세 사기 대책의 초점을 피해자의 주거 안정에 두기로 했다. 하지만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가 전세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빠졌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공공매입을 통해 피해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보전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오는 27일에 특별법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인데, 전세보증금 보전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인천 부평구 인천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대책회의에서 발언 하고 있다. 오른쪽은 유정복 인천시장. 뉴스1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4일 인천 부평구에 마련된 ‘인천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를 찾아 “당정이 합의한 전세사기 피해 특별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한 만큼, 긴급히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당정은 특별법에 피해 임차인의 거주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는다는 방침이다. 경매에 넘어간 전세 사기 주택에 대해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 피해자가 매수를 원하면 세금 감면 및 장기 저리 대출을 지원한다. 경매를 통해 제3자가 주택을 낙찰받아 세입자가 쫓겨나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도다. 피해자가 매수를 원하지 않을 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 LH가 해당 주택을 매입한 뒤에는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면 피해자가 저렴하게 임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금융당국이 주도하고 있는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는 특별법 제정 전 시간을 버는 조치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인천 미추홀구 전세 피해와 관련해 경매 기일이 도래한 38건 모두 경매 기일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유예 조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 20일부터 집계하면 97건 중 93건의 경매 기일이 미뤄졌다.

반면 야당이 주장하는 피해자에 대한 전세보증금 보상 조치는 법에 담지 않는다는 게 당정의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공공매입을 통한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를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정부기관이 채권을 매입해 피해 금액을 보상한 뒤 경매·공매·매각 등을 통해 투입 자금을 회수하자는 것이다.

이 방안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야당은 대립각을 세웠다. 원 장관은 이날 “사기당한 피해 금액을 국가가 대납해 돌려주고 회수가 되든 말든 떠안으라고 하면 사기 피해를 국가가 메꿔주라는 것”이라며 "안타깝고 도와주고 싶어도 안 되는 것은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등 관계부처에서도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보이스피싱도 전세 사기 못지않은 큰 사회적 문제가 됐는데, 전세 사기를 보전할 경우 보이스피싱 피해액 역시 국가에서 보전해야 한다는 논리여서 가능하지 않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정의 특별법 방침에 대해 “초부자들을 위해 수십조원씩 세금 깎아줄 돈은 있어도 전세 세입자들을 위해 공공 매입할 돈은 없다는 말인가”라며 “당장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떼인 피해자들에게 돈을 빌려줄 테니 집을 사라는 건 온전한 대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안상미 전세사기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고충 접수센터 개소 현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상미 전세사기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 허종식 의원, 이재명 대표, 박주민 의원. 연합뉴스

169석을 지닌 민주당뿐만 아니라 정의당 역시 공공 매입을 주장하고 있어 향후 협의가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능한 빠른 특별법 처리를 원하는 정부‧여당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경매 유예와 같은 조치는 피해자 퇴거를 일시적으로 막는 시간 벌기 수준에 머무는 만큼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사인간 발생한 채무를 공적 재원으로 변제하는 건 시장 논리에 어긋나는 나쁜 선례를 만드는 것이고, 이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쌓이게 된다”라며 “당장 전세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이 시급한 만큼 특별법을 우선 처리하고, 향후 전세 사기를 가능케 한 시장 왜곡이 있지 않았는지 점검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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