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최고의 파인다이닝... 주방에 감춰진 비밀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헝거> 포스터. |
ⓒ 넷플릭스 |
태국을 대표할 만한 일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헝거', 셰프 폴은 맛과 퍼포먼스를 겸비해 정재계 인사는 물론 부자와 인플루언서들이 너나없이 찾는다. 그들은 폴의 요리가 너무나 맛있는 듯 그야말로 추잡스럽게 먹어 치운다. 그러나 그는 주방에선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인간 말종 독재자, 그의 눈밖에 나면 그 누구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 반면 그의 눈에 들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아버지의 허름하고 낡은 식당을 이어받아 요리에 전념하는 젊은 여인 오이에게 헝거의 주니어 수셰프가 접근한다. 그녀의 요리를 맛보고 재능이 있다고 판단해 스카웃하려는 의도였다. 오이는 얼마 후 헝거를 찾는데, 입단 테스트 볶음밥은 어렵지 않게 통과하지만 고기 볶음에서 폴에게 대차게 욕을 먹는다.
이를 악물고 연습해 폴의 눈에 드는 오이, 드디어 완전한 일원이 되고 곧이어 큰 행사에서 메인 메뉴를 만든다. 하지만 그뿐 그녀는 다시 셰프 보조로 돌아간다. 그녀는 재능이 있었지만, 폴이 보기에 아직 새파란 애송이일 뿐이었다. 더 배울 게 많았고 세상의 쓴맛도 더 맛봐야 했다. 그렇게 폴과 가까워지고 있을 때 모종의 이유로 헝거를 박차고 나오는 오이,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던 신생 레스토랑의 주인이 그녀를 초빙하려 하는데... 과연 오이의 앞날은?
▲ <헝거>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태국 영화는 1970~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등장으로 쇠퇴했다가 장르 영화로 부활했다. 1997년 태국발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에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펜엑 라타나루앙, 논지 니미부트르 등이 주도한 '뉴웨이브'의 출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대대적인 흥행과 함께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영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한편 대중 상업 영화들도 만들어졌는데,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1999년작 <낭낙>이 태국 영화 최초로 1억 바트 이상을 벌어들였다. 우리나라의 <쉬리> 같은 존재다. 그런가 하면, 훗날 <랑종>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2013년작 <피막>은 10억 바트 이상을 벌어들이며 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수익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명량> 같은 존재다. 2017년엔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 주연의 <배드 지니어스>가 크게 이름을 알리며 흥행에 성공했고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되기도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헝거>는 태국 영화계의 현재이자 미래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이 주연한 스릴러 드라마다. 공개된 직후부터 글로벌한 인기를 이어가며 태국의 장르 콘텐츠 저력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위플래쉬> <기생충> <더 메뉴> 등의 영화들이 곳곳에서 생각나는데, 오이의 성장과 셰프 폴을 통해 들여다보는 태국 사회의 추한 면모가 투 트랙으로 영화를 이끈다.
▲ <헝거>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오이는 주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요리사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허름하고 낡은 식당에서 저렴한 가격의 음식을 만들어 팔다 보니, 힘은 힘대로 들고도 돈이 벌리지 않는다. 자기 성찰의 기회를 얻거나 요리사로서의 명예를 생각할 틈도 야망을 가질 틈도 없다. 그런 와중에 최고의 파인다이닝 '헝거'의 주니어 셰프가 오직 그녀의 실력만 보고 찾아왔다.
이번 생에선 절대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성공의 사다리를 만질 기회가 주어진 것, 오이는 사다리에 악착같이 매달려 한 발 한 발 오르기로 한다.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이니 만큼,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훗날 어떻게 되든 적어도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오이는 요리의 새로운 세계의 눈을 떴을 뿐만 아니라 요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면모를 통해 성공의 이면에 눈을 뜬다. 영화의 제목이자 오이가 새롭게 들어간 레스토랑의 이름이기도 한 '헝거', 즉 '배고픔'이야말로 성장의 민낯이자 소위 고위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민낯이기도 하다. 배고프면 앞뒤 안 가리고 먹을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지 않은가?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 <헝거>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최고의 파인다이닝 '헝거'를 이끄는 셰프 폴은 뛰어난 실력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특히 고위층이 그를 좋아라 하는데, 그의 요리가 보여 주는 원초적인 면이 그들의 깊은 곳을 자극시키는가 보다. 가진 놈이 더 가지려 한다는 말이 있는데, 폴은 정확히 그 지점을 간파하고 가진 자들의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을 자극한다. 배고픔의 작동 원리에 대해선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폴은 누구보다 요리에 진심이지만 요리를 요리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맛있는 요리를 먹었을 때의 환희는 전혀 알지 못하는 듯, 알 필요도 없다는 듯 오직 배고픔을 채우는 용도로서의 요리를 선보인다. 주제를 갖고 펼치는 퍼포먼스도 동일한 결의 용도다. 그에게 요리는 성공에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도구이고, 고위층의 원초적인 배고픔을 채워 줌으로써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든 살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남모를 무엇을 상정하곤 한다. 공부, 직업, 사람 등 가지각색일 것이다. 폴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이도 있을 테고, 오이처럼 고민하고 성찰하며 삐걱대지만 나아가는 이도 있을 테며, 두려움에 차마 발을 디디지조차 못하는 이도 있을 테다.
이 영화 <헝거>는 다양하다고 할 순 없지만 대신 꽤 깊이 있게 인간군상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장르적 요소를 가미해 재미를 극대화시켰다. 요리를 만드는 게 이리도 스릴 있고 요리를 맛보는 게 이리도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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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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