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전화 돌려 막았다…금감원 '개인기'에 기댄 경매 유예

김남준 2023. 4. 2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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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과 국토교통부가 별도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가능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노력과 달리 경매 유예 대상과 기간 모두 정해진 것이 없어, 당분간 피해자의 혼란이 예상된다.


전화 돌려 ‘유예’…강제할 방법은 없어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경매 기일이 도래한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주택은 총 97채였다. 이 중 4채를 제외한 93채에 대해서는 경매 기일이 연기됐다.

경매 기일 연기는 금감원이 직접 해당 주택의 선순위 채권자에게 연락해 경매 연기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법상으로 보장된 경매를 강제적으로 연기할 방법이 없어, 금융당국의 ‘개인기’에 기댄 것이다.

금감원 등 금융당국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은행과 상호금융 등은 비교적 협조가 쉬운 편이다. 문제는 이미 민간채권관리회사(NPL) 등에 매각된 부실 채권들이다. 이들 회사는 금융권의 부실 채권을 매입해 이를 경매로 되팔아, 수익을 거두는 일종의 추심업체다. 특히 부동산 부실 채권은 경매하지 않으면 자금 회수가 안 되기 때문에 금융당국에서도 경매 유예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금융당국이 경매 유예를 진행하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주택은 절반 이상이 이미 NPL 사업자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도 직원들이 해당 회사에 직접 전화를 돌려가며, 경매 유예를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다행히 아직은 경매 유예에 협조적이라 순탄하게 진행하고 있지만, 이들의 사업 규모가 영세해 연제까지 경매 유예가 될지는 모른다”고 했다. 실제 금감원이 최근까지 경매 유예를 요청했다 거절당한 4채는 영세한 NPL 사업자가 보유한 물건이었다. 다만 이들 물건은 경매에 나섰지만 모두 유찰됐다.


연기는 일단 ‘한 달’…대상도 불확실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에 전세사기 피해 수사 대상 주택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스1
경매가 유예됐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밝혔던 6개월 이상의 장기 유예가 가능할지도 불확실하다. 은행·제2금융권이 채권자인 피해 주택의 경우 정부 공언대로 6개월 이상 경매 유예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NPL 사업자의 물건은 언제든 경매 진행이 재개될 수 있어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단 한 번 경매가 연기되면 다음 경매 진행까지 약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정도 시간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해당 사업자들이 6개월간 경매 유예에 협조해 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경매 유예 주택에 대한 기준도 아직은 불명확하다. 현재 금감원은 국토부에서 “전세 사기 주택이라고 통보받은” 물건에 대해서만 경매 유예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단 현재 국토부와 금융당국에서 경매 유예 조치를 진행하는 것은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물건뿐이다. 물론 앞으로 상황에 따라서 전세 사기 물건의 범위를 확대하면, 추가로 경매 유예 대상이 늘어날 순 있다.

다만, 단순히 집값 하락으로 전세금이 떼이는 역전세 상황과 전세 사기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대상을 무한정 늘리기도 어렵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명확한 피해 사례에 대해 명확한 지원을 한다는 게 현재의 원칙이다”면서 “당장의 경매 기일이 도래하는 피해 주택들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전세 사기 주택 범위를 설정해 지원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구체적 지원책 빨리 나와야”


시간벌기용 경매 유예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 지원 대상 범위와 구체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차인의 권리를 위해 임대인의 권리를 무작정 침해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정부가 모든 피해액 다 변제해 줄 순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주거권을 지키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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