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빠뜨리고 자국민 빼내간다" 시체 나뒹구는 수단의 분노

박형수 2023. 4. 2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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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벌 간 유혈 충돌로 아수라장이 된 수단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휴전 합의마저 깨지면서 세계 각국의 자국민 구출 작전이 난항에 빠졌다. 미국 정부는 특수부대까지 투입해 외교관 구출엔 성공했지만, 수단 내 미국 민간인들은 자력으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수단 북부 하르툼에서 RSF와 정부군의 충돌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은 전날 침투 작전에 사용되는 MH47 치누크 헬기 3대와 해군특공대, 육군 제3특전단 등을 급파해 수단에 체류 중이던 대사관 직원과 일부 제3국 외교관 등 100여 명을 안전하게 철수시켰다.

하지만 수단에 체류 중인 1만6000여 명의 미국 시민들은 그대로 남겨졌다. 이들 대다수는 미국·수단 이중 국적자다. WP는 미국 관리들의 발언을 인용해 “(구출하기엔) 위험도가 너무 크다”며 이들에 대한 지원은 탈출 경로와 물류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했다.

WSJ은 미국 정부가 수단 내 임박한 위험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고 유엔 중재에 따른 수단 정권의 민정 전환 합의를 지나치게 낙관해 결국 자국민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캐머런 허드슨은 수단 내 미국인들 철수와 관련해 “(정부의) 어떤 예방 조치나 시나리오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수단에서 탈출해 요르단 암만 마르카 군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이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국민 구출 총력전, 韓교민 28명 대피중


미국에 앞서 자국민 등 철수에 성공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바닷길을 이용했다. 사우디 국영 알에크바리야 방송에 따르면, 사우디는 22일 자국민 91명과 쿠웨이트·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튀니지·파키스탄 등 12개국 국민 66명 등 157명을 자국으로 대피시켰다. 이들은 차량으로 하르툼에서 홍해 항구도시 포트수단까지 이동한 뒤 배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로 이동했다.

프랑스는 23일 ‘신속 대피 작전’에 돌입해 100여 명을 철수시켰다. 이날 오전 시작된 작전 과정에서 프랑스 호송차 1대가 공격당해 프랑스인 1명이 다쳤다. 영국도 같은 날 현지 대사관 직원과 가족 구출을 완료했다. 독일은 23일 수송기 3대를 급파했고, 이날 1대에 자국민 101명을 태우고 수단을 떠나 요르단으로 향했다.

한국 교민 28명은 하르툼에 위치한 주수단 대사관에 대피한 상태다. 한국 정부는 교민의 안전한 대피를 위해 300여 명의 군 장병과 수송기 2대, 함정 1척을 현지에 급파했다.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시그너스도 지부티로 향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 청해부대 39진 충무공이순신함(DDH-II·4400t급)이 오만 살랄라 항에서 포트수단 해역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대통령실은 “수단 교민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24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방미길에 동행하지 않고 서울에 잔류한 상태”라며 “지난 21일부터 가동중인 관계 부처 태스크포스(TF)를 오늘은 이미 6차례 개최하는 등 관련된 모든 사항을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고 알렸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15일 시작된 수단 내 무력 충돌로 지금까지 최소 450명이 사망하고 3500여 명이 다쳤다. 현지 의료인들은 “거리의 시체를 수거할 수조차 없을 만큼 상황이 위중하다”며 “실제 사상자 수는 훨씬 많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총성이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으며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고 전했다.

수단에서 요르단 암만의 군사 공항으로 대피한 사람들의 모습. AFP=연합뉴스

"무력 충돌, 국제사회 책임있다"


외국인들의 탈출 행렬이 본격화되자 수단인들은 분노와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수단의 전직 언론인인 달리아 모하메드 압델모니엠은 트위터를 통해 “당신들은 수단을 이 혼란에 빠뜨려놓고 자국민만 쏙 빼내고 수단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들에게 남겨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단인들은 격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국제사회에 있다고 보고 있다. 수단 국민은 2019년 오마르 하산 알바시르 대통령의 30년 독재가 쿠데타로 종식되면서 민주화를 갈망했지만, 강대국과 주변국이 수단 내 군벌의 편을 나눠 각각 무기와 자본을 제공함으로써 군사적 충돌을 격화시키고 민주화의 흐름을 끊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반군인 RSF의 편을 들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용병단의 수장이 수단의 금광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RSF에 장갑차를 제공하고 장비 훈련을 시켰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수단의 홍해 연안 항구에 자국 군함의 접근권도 노리고 있다.

수단 하르툼 국제공항에서 수송기 한대가 불에 탄 모습. AFP=연합뉴스


UAE는 식량 공급 목적으로 수단에 눈독들이고 있다. 겉으로는 수단의 권력 투쟁에 중립적이지만, 물밑에선 RSF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전쟁 자금을 대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반면 이집트는 공개적으로 정부군을 지지하고 있다. 그간 수단 정부군을 위해 전투기 여러 대와 조종사를 보냈다. 나일강 수자원을 둘러싸고 에티오피아와 힘겨루기 중인 이집트는 수단과의 동맹이 절실한 상황이다.

수단 수도 하르툼의 국제병원 근처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리카 연구 싱크탱크인 리프트밸리연구소의 마그디 엘 기줄리는 “모든 이들이 수단에서 자신의 이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수단은 이렇게 많은 이해관계를 감당할 여력이 안됐다”면서 “결국 위태로운 균형이 깨지고 지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재클린 번스 선임연구원도 NYT 기고문을 통해 “국제사회가 진정한 정치개혁과 민주정부를 원하는 수단 시민의 목소리보다 부패한 무장세력의 주장을 우선시한다면 이번과 같은 폭력과 고통이 수단에서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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