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예술가들에게 '판' 깔아주니... 이런 결과가

유시연 2023. 4. 2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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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브랜드 프로젝트부터 디자인 공모전까지... 신진 아티스트 지원하는 기업과 플랫폼들

[유시연 기자]

"언더 아티스트들은 자본력이 약하고 생계 유지가 힘들어요. 하지만 내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간절함이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든 찾아보려 노력하죠."

지난 20일, 인터뷰를 진행한 가수 웻보이(WET BOY)가 한국 사회에서의 신진 아티스트의 입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꺼낸 말이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예술을 생계로 삼을 경우, 그로 인한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활고로 인한 예술가들의 자살은 언론을 통해 수차례 알려져 왔고, 이러한 문제는 연기, 미술, 음악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마찬가지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3년 주기로 시행하는 '예술인 실태조사(2021)'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예술인 중 겸업 예술인의 비율은 44.9%에 달하며, 지난 9년간 그 수치는 4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또한 이들의 76.3%는 겸업의 이유로 '소득', 그중에서도 낮은 소득 수준과 불규칙한 수입을 주된 문제로 꼽았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신진 아티스트들에게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 차원에서 아티스트와 상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대중과 아티스트의 매개체 역할을 자처하거나,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해 아티스트의 예술관을 선보일 기회의 장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빅테크 기업도 발벗고 나서
 
 버드와이저 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업로드하는 버드엑스비츠 콘텐츠
ⓒ 버드엑스비츠
맥주 브랜드 버드와이저(Budweiser)는 2019년, 뮤직 플랫폼 '버드엑스비츠(BUDXBEATS)'를 창설해 현재까지도 활발히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유명 선배 가수와의 컬래버 무대를 꾸미고, 인터뷰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단순히 아티스트의 결과물만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문화를 주제로 한 뉴스 레터부터 플레이리스트까지 지속적으로 뮤지션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예술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실질적 지원을 하는 것이 '버드엑스비츠'의 궁극적 목표이다.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국내 빅테크 기업도 발벗고 나섰다. 2019년, 선주문 커머스 플랫폼 카카오메이커스에서 '아티스트' 탭을 신설하며 신진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꾀했다. '티셔츠·에코백 그래픽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해 40점의 작품을 선정하였고, 선주문이라는 플랫폼 특유의 시스템을 활용해 재고를 없앰으로써 아티스트 차원의 부담을 없애고, 수익금의 일부는 작가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소비자는 기호에 맞는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카카오메이커스만의 강점을 구축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네이버 역시 '헬로! 아티스트'라는 제목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접근 문턱을 낮추고, 신진 작가들의 창작 활동과 전시를 지원하는 사업을 펼쳤다.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올라온 '헬로! 아티스트' 작가 관련 콘텐츠
ⓒ 네이버 그라폴리오
 
또한 아티스트 관련 콘텐츠 영역을 확장해 모바일 환경에서도 작품을 접할 수 있고, 네이버 그라폴리오를 통해 전시 안내부터 아트웍 상품 제작, 원데이클래스 예약까지 작가와 대중의 만남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신진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대기업 차원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벤처 기업 역시 '상생'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아티스트와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아트 전문 커머스 플랫폼 '뚜누(tounou)'와 신진 아티스트 공유 브랜드 '어나니머스 아티스트'가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뚜누'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아트라미'의 김현태 대표와, '어나니머스 아티스트'에 참여했던 가수 웻보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뚜누'는 신진 작가의 그림을 리빙 아이템에 녹여내어 판매하는 아트 전문 커머스 플랫폼이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각각의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이고, 대중들은 기호에 맞는 상품을 다양하게 접하는 시스템은 마치 브랜드샵이 모여 있는 예술 거리를 연상케 한다.

판매를 넘어... 예술가에 대한 존중을 담아낸 플랫폼 
 
 '뚜누(tounou)' 브랜드 로고 및 플랫폼 소개
ⓒ 뚜누
 
이러한 '뚜누'의 시작점에는 김현태 대표 자신의 경험이 있다. 그는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신진작가 스스로 작품을 홍보하고, 수익을 창출하기 힘들어요. 저도 그런 부분에서 현실적으로 내 작품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게 됐어요"라며 사진작가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뚜누'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하지만 단순히 제품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이 이 플랫폼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작가들의 예술관과 스타일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도록 새로운 아트웍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함께 전하기도 한다. 아티스트를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변모시키는 것이 아닌, 예술을 하는 사람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다.

주식회사 '나이비(Naivy)'가 2018년 시작한 '어나니머스 아티스트(Anonymous Artists, 신진 아티스트 공유 브랜드)' 프로젝트 역시 1020 세대의 음악 취향을 저격하며 해당 분야에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신인 뮤지션은 실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어나니머스 아티스트'라는 익명의 콘셉트 안에 다양한 아티스트를 녹여내는 이 프로젝트는 '멜론(Melon)'에서 현재 1만6000명이 넘는 팬을 보유하고 있다.

가수를 쫓아 곡을 듣는 것이 아닌, 곡을 듣고 가수를 찾도록 하겠다는 취지이다. 가수 웻보이는 곡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발음 안돼'를 통해 '멜론' 데일리 감상자 수 2700여 명을 기록하며 프로젝트 사상 기록적인 성공을 달성했다.

그는 "프로젝트 측에서 프로모션에 많은 신경을 쓰고, 유통 관련해서도 전문적인 도움을 주었다. 음원을 발매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자 피처링 문의가 오거나 비슷한 협업 프로젝트로부터 작업 요청을 받기도 했다"며 프로젝트 참여 이후 달라진 점을 이야기했다.

최근 들어 '어나니머스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알고 음악을 듣기 시작한 대학생 H씨(22)는 "전에는 유튜브 알고리즘에서도 평소 알던 유명 아이돌의 음악만 뜨길래 그 노래들 위주로만 들었는데, '어나니머스 아티스트'를 알게 된 이후엔 다양한 장르, 뮤지션을 접할 수 있어서 훨씬 노래 듣는 맛이 좋아진 느낌이다"라며 앞으로도 이런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질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흔히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아티스트는, 매스컴을 통해 만나는 '연예인' 정도이다. 이들은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어 활발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그 수는 예술 업계 전체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인터넷의 발달로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결과물을 선보일 기회는 늘어났다.

하지만 누구나 아티스트의 자격을 가질 수 있음에도, 누구나 대중에게 주목받을 순 없는 모순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이러한 상황의 최전선에 있는 김현태 대표와 가수 웻보이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소수가 독점하는 예술, 대중과 소통할 수 없는 예술은 더 이상의 의미가 없다. 새롭게 성장하는 아티스트들이 대중과 만나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어야 예술계가 그 미래를 떠올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앞으로의 예술계의 발전을 위해, 기업과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신진 아티스트가 더욱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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