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시민을 반국가사범으로 몬 진실화해위원장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지난 2월 7일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51차 전체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진실화해위원장)'은 '한국 근대화는 일본 식민체제를 통해 이뤄졌다', '제주 4·3은 공산 폭동이다', '광주 5·18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등등의 발언으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바로 그가 '그 누군가' 중 하나다.
15년 전인 지난 2008년은 갓 출범한 이명박 정권이 광우병 촛불집회로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던 해다. 이명박 정권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무고한 국민을 반국가사범으로 몰았다. 그해 8월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된 최보경 간디학교(경남 산청) 교사도 그런 피해자 중 하나다.
30대 초반의 대안학교 역사 교사인 그는 <간디학교 역사배움책 3-현대사>라는 수업 교재를 집필하고 <경남진보연합 5차 대표자회의 자료집> 등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반국가사범으로 몰렸다. 1심·2심·3심 모두 무죄 선고에서도 알 수 있듯, 최 교사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광동을 비롯한 감정인들이 이적성 판정을 내렸고, 이를 근거로 검찰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그를 재판에 묶어놓았다.
뉴라이트 교과서 집필자이기도 했던 김광동 당시 나라정책연구원장과 함께 이적표현물 감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제성호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 이동호 뉴라이트전국연합 조직위원장, 정원영 공안문제연구소 연구원,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유광호 한국전략연구소장, 조영기 한반도정책연구소장이다.
검찰 측 증인인 이들에 대해 최보경 교사는 지난 21일 "각기 개인 연구소를 운영한다고 되어 있으나, 이들은 다 같은 자유민주연구학회 소속입니다"라고 알려왔다.
'최보경 교사에 대한 국가보안법 공소장의 10가지 이적 표현물 감정 내용과 감정인'이라는 문건에 따르면, 유광호 소장은 "4·19 후 좌익세력에 의한 통일운동을 중요시하고", "광주민주화운동에서 계엄군에 대한 악랄한 모략을 사실시하여 선동하고", "6·15 공동선언을 자주민주통일의 정당성이라고 주장하고"라는 등의 이유로 수업교재를 이적물로 감정했다.
▲ 본문에 인용된 감정서 사본. |
ⓒ 최보경 |
김광동이 감정한 내용도 유광호의 감정만큼이나 상식을 벗어났다. 경남진보연합 자료집을 분석한 김광동은 2007년 10월 12일 제출한 <감정서>에서 "진보세력의 대선 승리를 선동"한 것 등을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그는 경남진보연합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해 운동한 것을 "2007년 대선에서의 보수세력 재집권 저지라는 일련의 주장을 제기하며 직간접적으로 북한 수령독재적 공산체제를 옹호하고 있음"이라고 감정했다. 이명박 후보를 떨어트리려 한 것이 '북한 수령독재 옹호'라는 엉뚱한 결론을 도출했다.
김광동은 자신이 속한 뉴라이트를 비판한 대목도 문제로 삼았다. "뉴라이트 등 자유민주적 세력을 반민족·반민중적이라고 비난·폄하하는 주장을 통해 남한 사회의 기본질서체제를 분열·붕괴시키고 결과적으로 북한이 추구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음"이라고 감정했다. 뉴라이트를 한국의 기본질서로 규정한 부분이 흥미롭다.
김광동은 '뉴라이트를 비판하는 것'을 '북한식 사회를 지향하는 것'과 연결했다. 그런데 둘 사이의 연관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식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식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라는 그 주장 역시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고 "직간접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또다시 에둘러 표현했다.
김광동은 '미국이 압도적 군사력에 기반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내용이 자료집에 담긴 것도 문제로 삼았다. 그는 "특히 문건은 미국이 현재 세계 최강국이 된 것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가능했다면서 미국을 일방적으로 반평화세력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해 반감과 적대감을 확산시키고 있음"이라고 감정했다.
그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고 촛불집회를 언급하는 내용도 이적행위로 간주했다. "특히 문건은 한·미 FTA에 대한 투쟁을 민족생존권 차원의 투쟁이라면서 촛불집회 등 다양한 불법적 수단을 동원한 반미투쟁에 국민들이 동참하도록 부추기고 있음"이라고 감정했다.
김광동은 이런 감정서를 제출한 뒤 검찰 측 증인이 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법정에 나가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는 보도들이 계속 나간 뒤인 2010년 1월 19일에야 창원지법 진주지원 제101호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보경의 변호인인 법무법인 덕수의 이석태 변호사는 2008년 9월 2일 제1차 공판 이래 무려 1년 4개월 만에 등장한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진주지원이 작성한 '2008 고단 705' 사건의 제11회 증인신문조서에 따르면, 변호인은 경남진보연합이 공개적인 시민단체인 사실을 아느냐고 김광동에게 물었다.
경남진보연합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연합과 '김해·창원 여성의 전화' 등을 비롯한 이 지역 사회단체들이 모인 경남 도민들의 사회운동조직이다. 감정인이 이 단체 자료집을 이적물로 평가했으니, 변호인으로서는 단체의 성격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증인신문조서에 따르면, 김광동은 "제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문건만 보고 판단합니다"라고 답변했다.
▲ 본문에 인용된 선서문 사본. |
ⓒ 최보경 |
증언 직전에 김광동 원장은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합니다"라고 선서했다. '경남진보연합을 나는 알 수 없다. 그 문건은 이적 문건이다'라는 비상식적인 진술은 그의 증인 선서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석태 변호사는 감정서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옹호·찬양하고 있음"이라고 적은 이유도 물었다. 북한 핵개발로 인해 한반도 질서가 바뀌고 있다는 대목은 있지만 북핵 보유를 옹호·찬양한 대목은 전혀 없는데도 그렇게 감정한 이유를 물어봤다.
김광동은 '북한 핵개발을 언급하면서 북핵을 비판하거나 반핵을 지지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런 것을 언급하지 않은 채 북한 핵개발과 한반도 질서 변동만 언급한 것은 북핵을 옹호·찬양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자료집이 북한 핵개발을 옹호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대지 못한 채,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북핵 옹호·찬양' 문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광동의 감정과 법정 진술에는 이 외에도 상식을 벗어나는 대목들이 한둘이 아니다.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거나 한반도평화협정 지지를 이적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김광동은 문제 될 게 없는 것들을 이적행위로 감정했고 이런 감정을 근거로 검찰은 자료집 소지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나머지 감정인들의 감정 결과까지 앞세워 무려 7년간이나 최보경 교사를 재판 절차에 묶어놓았다.
진실화해위원장은 국가가 국민에 대해 범한 잘못을 파헤쳐 내는 자리다. 국민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입은 피해를 낱낱이 드러내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공인이다.
그런데 최보경 사건에서 보듯 김광동은 무고한 시민을 반국가사범으로 모는 데 합세했다. 멀쩡한 교육자를 반국가사범으로 몰아세운 공안사건의 가담자였다. 그가 진실화해위원장에 어울리는지를 묻는 것은 하나 마나 한 물음이다.
증인신문조서에 따르면,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이 검찰 요청으로 감정을 해준 횟수는 그 이전 10년간 20여 회에 달했다. 그가 감정한 여타 사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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