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 “대만해협 간섭 말라”는 中, 舊소련 독립국엔 "주권 없다" 논란
중국이 유럽연합(EU) 고위 인사의 대만해협 순찰 제안에 대해 “굴욕을 자초하지 말라”고 반발했다. 대만의 주권 문제를 건드리지 말라며 발끈한 것이다. 반면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는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이 “국제법상 주권국가 지위가 없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신문 글로벌타임스는 24일자 사설에서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유럽 각국 해군의 대만해협 순찰 필요성을 제기한 데 대해 “매우 도발적 발언”이라 비판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힘에 의한 대만 현상변경 반대” 발언을 언급하며 “한국 지도자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잘못된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비춰 (보렐 대표 발언은) 즉각적으로 많은 관심을 불렀다”며 “장기간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처럼 유럽 군함들이 그들의 힘을 태평양에서 과시하고 싶어 한다면 그 결과는 당혹스러운 실패뿐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조국을 수호할 강력한 힘을 가진 인민해방군은 도발과 ‘힘 자랑’을 해오는 유럽 군함에 눈살을 찌푸릴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며 “굴욕을 자초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반발한 건 보렐 대표가 23일(현지시간) 프랑스 주간지 르 주르날 뒤 디망슈에 쓴 기고문이다. 보렐 대표는 기고문에서 “(대만은) 우리와 경제·상업·기술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유럽 해군이 대만해협을 순찰해 ‘항행의 자유’에 대한 유럽의 헌신을 보여 줄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렐 대표는 같은날 트위터에서 루사예(盧沙野) 주프랑스 중국 대사의 “옛 소련 국가에 주권이 없다”는 주장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한 국가들의 주권을 문제 삼는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의 발언을 용납할 수 없다”며 “EU는 이 발언이 중국의 공식 입장을 대표하지 않을 것이라 여길 뿐”이라고 적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루 대사는 지난 21일 프랑스 방송사 TF1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를 국제법상 우크라이나의 일부로 간주하느냐는 질문에 “크림반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토의 일부였으며 전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 소련 국가들은 주권을 구체화한 국제 합의가 없기에 실질적으로 국제법상 주권국가의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루 대사의 발언은 큰 파문을 낳았다.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부정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다른 나라의 국가 지위마저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에 옛 소련에서 독립한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이 루 대사의 발언에 크게 반발했다. 발트 3국은 이날 중국 대사를 나란히 초치해 루 대사의 발언에 대해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브리엘리우스 란트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발트 3국이 왜 중국의 우크라이나 평화 중재를 신뢰하지 않는지 궁금해한다면, 크림반도가 러시아 영토라며 우리 국경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중국 대사를 보라”고 비판했다.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도 란트베르기스 장관의 발언을 리트윗하며 “발트 3국의 역사와 주권이 중국 대사에 의해 왜곡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루 대사는 중국이 외교적으로 공격당하거나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때 거친 태도로 공세에 나서는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대표적 인물이다. 지난해 12월엔 중국에서 발생한 ‘백지시위’를 두고 “외부 세력의 사주를 받은 ‘색깔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는 사태 진화에 나섰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전 소련국들의 주권국 지위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그동안 옛 소련국들과 외교 관계를 맺은 이후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상호 관계를 유지해왔다"며 "일부 언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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