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적당히 타협? 역사적 사실 사라지지 않아"

이영광 2023. 4. 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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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온에어' 235] 송원근 뉴스타파 PD

[이영광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와 한일 정상회담 등으로 논란이 있던 3월 말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에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진 김복동의 외침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란 다큐 한 편이 올라왔다. 이 다큐는 지난 1, 2월 일본 도쿄 등에서 열린 영화 <김복동> 상영회 풍경과 함께 당시 논란이던 윤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다큐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고 영화 상영할 때 일본 현지 분위기는 어땠는지 들어보고자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진 김복동의 외침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를 연출한 송원근 뉴스타파 PD와 지난 21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송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일본 시민들 영화
<김복동>
 보고 충격 받아"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진 김복동의 외침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의 한 장면
ⓒ 뉴스타파
 
- 지난 3월 31일 업로드된 다큐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진 김복동의 외침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를 연출하셨잖아요. 소회가 어떠세요?
"지난 1월과 2월에 일본에서 열린 영화 <김복동> 상영회를 다녀왔는데, 그 이야기 의미를 제대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일본 내에서 김복동 할머니의 삶이나 영화 <김복동>를 어떻게 보는지 한국에 있는 시민들한테도 좀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제작했어요. 단순하게 영화 상영회를 구구절절 설명한다기보다 상영회 준비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마음으로 상영회를 준비하게 됐는지, 그리고 일본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어떤 마음 가지게 됐는지 영화 <김복동>을 연출한 사람으로서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 처음부터 다큐 제작 계획을 갖고 시작한 건가요?
"아니요. 1월 21일 첫 도쿄 상영회에 참석했을 당시만 해도 영화 상영회 가지고 리포트를 만든다거나 내용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2월 25일에 교토 상영회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 상영회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김복동의 희망' 장학생들이 참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만약 그 학생들을 다시 한번 직접 만날 수 있다면, <김복동> 상영회가 일본 사회에서 상영된 의미를 짚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던 거 같아요."

- 상영관 잡기 어렵지 않았나요? 일본 극우들의 방해 공작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방해 공작이 있지는 않았지만, 준비위 측에서 방해 공작을 대비하시더군요. 예를 들면 저는 그런 문구를 처음 봤는데, 상영장 앞에 '폭력을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상영장 입구에 '폭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은 출입할 수 없다'라는 식의 문구가 붙어 있었어요. 그걸 보니까 이분들이 얼마나 극우 폭력적인 사람들에게 노출됐는지가 느껴졌어요.

제가 상영회를 가면 관객들과 질의응답을 하는데, '이 상영회를 준비하면서 위협을 받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영화 한 편을 이렇게 상영하는데, 그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받아야 되는 일인 거냐고 되물었거든요. 그만큼 재일동포 사회가 굉장히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지 않았나,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일본에서 열린 <김복동> 상영회 때 분위기는 어땠나요?
"일본 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도 하지 않고 있고, 언론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고 있거든요. 워낙 이와 관련한 정보가 유통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혹시 영화를 편협하고 일방적인 시선으로 보는 건 아닐까 우려하고 걱정했어요. 그런데, 실제 상영장을 찾아서 관람한 남녀노소 관객들이 김복동 할머니의 이런 투쟁에 대해 많이 공감해 주셨어요. 지금까지 일본에 살면서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는 소감도 많았고요. 이 영화를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조금이라도 알게 됐고, 주변에도 알리겠다는 다짐도 있었어요. 특히, 김복동 할머니의 활동을 보면서, 피해자들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인권운동가로 느낄 수 있어서 놀랐고, 감동했다는 말씀 많이 해 주셨습니다."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진 김복동의 외침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의 한 장면
ⓒ 뉴스타파
 
- 일본인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알고 있나요?
"일본 사회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거의 없어요. 학교에서도 교과서로 가르치지도 않고요. 뉴스에서도 한국과의 갈등 정도로 이 주제를 다룰 뿐, 인간 존엄성 회복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의 강제에 의한 전쟁 범죄로 접근하지 않아요. 그냥 단순하게 '한국이 또 떼를 쓴다. 다 끝난 얘기를 또 뒤집는다. 한국은 무책임한 나라다. 저렇게 말이 항상 바뀌는 나라다'라는 식으로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본 시민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접근할 수가 없는 거죠.

제가 이번에 일본에 취재를 가서 알게 된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위안부의 '위안'이라는 단어가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미였는데요. 실제로 일본 사회에는 '위안 여행'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하더라고요. 힐링 여행 비슷한 걸 '위안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일본군 '위안부'도 그런 '위안'의 의미로 접근하는 일본인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 그럼, 영화 보고 많이 충격받았겠네요?
"그렇죠. 그런 걸 전혀 몰랐던 사람들은 영화 보고 충격을 받는 거죠. 일본 언론들의 얘기만 들었을 때는 '돈을 벌기 위해서 다 끝난 얘기를 다시 끄집어내는 사람들' 정도로 피해자를 인식했는데, 피해자가 직접 하는 얘기 보고 들으면서, 놀라는 거죠. 일본 시민들은 이 영화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거죠. 또 전쟁 당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피해 사실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김복동 할머니 스스로가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를 얻기 위해, 당당하고 떳떳하게 활동하는 능동적인 사람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고요. 일본 사회에서 피해자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존재여야 하는데, 영화 <김복동>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할머니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존재였잖아요. 이런 부분들이 일본 시민들의 상식과는 반하는 사실인 거죠."

- 일본인들은 일본군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것 같던데 왜 그럴까요?
"현재 일본의 극우 세력이 집권하게 되면서, 과거 동아시아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전쟁범죄자로서의 일본은 사라지고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어쩔 수 없는 패전국 일본만 부각하고 있거든요. '우리 위대한 일본은 패전국이 됐지만, 다시 위대한 일본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위대한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만 남은 거죠. 과거 사실은 다 지우면서요. 그러니까 '일본군이 강제로 위안부를 전쟁터로 끌고 갔을 리 없어. 일본군이 위안소를 모집하고 운영했을 리도 없어. 위안부들은 모두 돈을 벌려고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야'라는 생각이 현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과거 전쟁범죄와 관련한 모든 역사를 수정하고 바꾸고 지우는 데 혈안이 된 거죠."

"지치고 힘들 때면 할머니 떠올린다는 말에 감사"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진 김복동의 외침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의 한 장면
ⓒ 뉴스타파
 
- 지금 일본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문제들을 못 받아들이는 거죠?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못 받아들인다기보다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까지만 해도 뭔가 일본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 문제들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1996년에는 유엔 인권위를 통해서 일본군의 '위안부 제도'를 성노예 제도라고 표현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예 모든 것을 부정하잖아요. 그리고 교육도 하지 않으니, 일본인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아예 모르게 되어버리고요. 결국 일본 사회는 이런 과거 일본의 문제들에 대해 결국, 무관심하게 되어버린 거 같아요."

- '위안부' 문제는 끝났다고 가르치는 거 아닌가요?
"'다 끝난 문제'라고 얘기하는 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할 때죠. 그러니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 2015 한일 합의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끝났다고요. 일본은 매번 한국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 피해자들은 항상 일관된 입장이었어요. '피해자인 우리에게 일본 정부가 제대로 사과하라'였거든요. 배상금에 대해서도 합의금이니 위로금 이런 꼼수 부리지 말라는 것도 피해자들의 일관된 입장이었어요.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할 만큼 했다고 하고, 다 끝났다고 하죠."

- 우리 정부 책임도 있잖아요.
"그렇죠. 우리 정부가 책임이 크죠.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 정부에 가장 큰 빌미를 준 건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예요. 합의문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우리 정부가 넣은 거잖아요. 그 합의에 의해서 일본 정부가 돈을 내고 한국 정부가 재단도 만들었고요. 애매한 상황을 우리 정부가 용인해 줬기 때문에, 지금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합의문은 결국 외교적으로 부정할 수가 없잖아요. 아마 전임 정부도 그것을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에 난감했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외교는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거죠. 대통령이 어떻게 역사에 책임을 집니까. 임기 5년 대통령은 그래서 더 신중해야죠."

-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많나 봐요?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여전히 많이 노출돼 있었어요. 많은 재일조선인이 굉장히 조심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재일조선학교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교복이 한복이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이 한복 교복을 입은 재일조선학교 학생에 대해 어떤 일본인이 커터칼로 옷을 찢는 범죄가 벌어졌다고 해요. 한복을 입었다고, 혐오범죄의 표적이 되는 거죠.

그 후 재일조선학교 측에서는 외부에서 입고 다닐 때 범죄 표적이 되지 않도록 평범한 교복과 같은 제2 교복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제2 교복이라는 이름으로 입고 등하교하는 거죠. 학교에 도착하면 원래 교복으로 다시 갈아입고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2년 전에는 재일조선인들이 거주하는 교토 외곽의 우토로 마을에 일본인 20대 청년이 방화 범죄를 저지르 사건이 있었어요. 창고에다 불을 질렀는데 인근의 집 4채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요.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많이 답답했습니다."

- '김복동의 희망'이라는 장학금 받은 박형화 학생과 전화 통화하셨잖아요. 어떠셨어요?
"박형화 학생이, 교토조선중고급학교 출신이어서, 교토 상영회에 가면 만날 수 있다는 정보를 준비위 측에서 얘기해주었어요. 그런데, 가서 보니 장학생 4명 중 3명이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영회에 참석하신 학교 선생님을 통해 전화 통화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통화를 했는데 박형화 학생도 5년 전인 2018년에 김복동 할머니를 만났었던 그 시간을 지금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더라고요. 지치고 힘들 때면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면서 마음도 다잡는다고 했어요. 할머니와 만났던 그 짧은 시간이, 여전히 머리에 깊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제가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형화 학생은 지금 도쿄에 있는 재일조선대학교에 교육학부에 다니는데, 졸업하면 다시 교토로 돌아가서 조선학교 선생님이 계획이라고 했어요. 형화 학생은 특히 할머니가 한 말 중에 '조국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차별 속에서 사는 재일 교포들에게 굉장한 힘이 되었던 말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던 거 같아요."

-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발언 등을 담으셨던데 지난 3월 윤석열 정부의 행보 어떻게 보셨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 사건을 덮으려고 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려고 해도, 역사적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이 문제는 해결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하셨거든요. 그런데, 그런 피해자를 두고, 일본이 사과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게 많이 놀라웠습니다.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사실이 없는데, 사과가 충분하다는 사실이 아닌 말을 하는 걸 보면서, 많이 답답했습니다. 왜 우리 대통령이 일본의 극우들과 같은 주장을 하는 건지, 이해도 되지 않고요. 다시 한번 또 2015 한일 합의 같은 그릇된 결정과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됩니다. 우리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대통령이 심사숙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번 다큐를 제작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이번 일본 상영회 통해 생각보다 많은 일본 시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보여줬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어쩌면 일본 시민들은 제대로 된 정보에 목마른 상태가 아닐까란 생각도 해봤어요. 도쿄는 500석 객석이 가득 찰 정도였고, 다른 상영장에서도 예상보다 많은 관객이 찾아주었다고 상영 준비하신 분들이 말씀하시더군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알릴 기회만 있어도, 일본 시민들의 변화로 사회가 변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최근 윤석열 정부의 역사 관련한 행태를 보면서, 이 역사 전쟁이 쉽게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하게 됐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든가 강제 동원 문제 등을 대하는 일부 국민들의 태도가 일본 극우들의 시각과 비슷한 사람들도 많아지는 것도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생각해요. 수요시위 현장에서 참가자들을 모욕하는 혐오 행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이제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욕하면서 피해자들 모욕하고 있거든요.

단순하게 역사로만이 아니라, 역사 전쟁이 내가 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관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립을 다뤄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습니다. 그저 지나간 일로만 역사를 보는 게 아니라, 역사가 오늘날 어떻게 활용되는지 또 그들은 누구인지 정체도 짚어야 할 것 같고요. 어쩌면, 영화 <김복동> 이후, 우리 역사 훼손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 각오를 진지하게 하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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