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만 원으로 영화 대박 친 감독, 90억 주자 벌어진 일
[양형석 기자]
봉준호 감독은 장편 감독 데뷔 전 <모텔 선인장>의 각본과 조연출, <유령>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투자사의 지원을 받아 만들게 된 첫 장편영화가 2000년 2월에 개봉했던 <플란다스의 개>였다. 봉준호 감독 정도 되는 거장도 장편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선배감독 밑에서 스태프로 활동하며 준비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거대자본이 들어가는 상업영화의 경우 소수인원과 소액으로는 한 편을 완성하기 쉽지 않다. 작년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던 박찬욱 감독 역시 "내 색깔을 보여주면서 투자자가 손해보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상업영화와 자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데스페라도>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터프가이의 대명사'로 급부상했다. |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받은 영원한 터프가이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1980년대부터 스페인 국립연극단에서 활동하다가 1992년 영화 <맘보 킹>에 출연하면서 미국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필라델피아>에서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톰 행크스와 동성애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뱀파이어 아르망을 연기했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역시 초창기 반데라스의 필모그라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반데라스는 1995년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액션배우의 이미지를 굳혔다. 한 편은 근육질 스타 실베스타 스텔론과 출연했던 <어쌔신>이었고 다른 한 편이 바로 로드리게스 감독이 연출한 <데스페라도>였다. 반데라스가 낡은 기타 케이스에 각종 화기를 넣고 다니는 떠돌이 악사 마리아치를 연기한 <데스페라도>는 7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25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어쌔신>과 <데스페라도>를 통해 터프가이 이미지를 얻은 반데라스는 <마스크 오브 조로>와 < 13번째 전사 > 같은 액션 영화에 출연했고 마돈나와 연기호흡을 맞춘 <에비타>에서는 체 게바라를 연기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가족영화 <스파이 키드> 시리즈에도 출연한 반데라스는 2001년 당시 떠오르는 신예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한 <오리지널 씬>을 통해 파격적인 멜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터프가이 반데라스의 빼놓을 수 없는 의외의 대표작 중 하나는 바로 장화 신은 고양이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슈렉>시리즈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귀여운 모습과 반데라스의 중저음 목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주인공 슈렉을 능가하는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2011년과 작년에는 장화 신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영화가 제작돼 두 편 합쳐 10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반데라스는 액션과 멜로, 가족영화, 애니메이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워낙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로 이 때문에 연기력은 과소평가된 부분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반데라스는 지난 2019년 <페인 앤 글로리>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연기력도 출중한 배우다. 어느덧 환갑을 지나 중후한 매력을 뽐내고 있는 반데라스는 오는 6월 개봉 예정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 출연할 예정이다.
▲ '터프가이' 안토니오 반데라스(오른쪽)는 등 뒤에서 수류탄이 터져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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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스페라도>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바로 로드리게스 감독이 대학 시절 단돈(?) 7000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2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한 독립영화 <엘 마리아치>다.
실제로 로드리게스 감독은 <엘 마리아치>를 시작으로 <데스페라도>, 그리고 2003년에 개봉한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멕시코>로 이어지는 '멕시코 액션 3부작'을 연출한 바 있다.
로드리게스 감독은 7천 달러로 데뷔작을 만든 감독답게 제작비를 많이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지 클루니의 출세작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제작비가 1900만 달러였고 반데라스와 조니 뎁, 셀마 헤이엑이 출연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의 제작비도 2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렇게 저예산 영화를 주로 만들던 로드리게스는 지난 2019년 감독 데뷔 후 처음으로 1억7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알리타:배틀 엔젤>을 연출했다.
사실 <데스페라도>는 부초(호아 킴 데 알메이다 분)의 패거리에 의해 사랑하는 여자와 한쪽 손을 잃게 된 마리아치(안토니오 반데라스 분)가 부초에게 복수한다는 단순한 내용의 액션영화다. 로드리게스 감독은 '절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달리 드라마나 이야기 구조보다는 호쾌한 액션연출에 집중하는 감독이다. 따라서 <데스페라도> 역시 영화의 숨은 의미를 찾기 보다는 영화가 주는 원초적인 쾌감을 즐긴다면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데뷔작 <엘 마리아치>에 비해 제작비 1000배가 올라가면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역시 주인공 안토니오 반데라스 캐스팅이었다. 당시 반데라스는 <필라델피아>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의 새로운 섹시스타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데스페라도>는 반데라스의 첫 단독 주연영화였다. 반데라스는 <데스페라도>에서 화려한 액션과 터프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한 동안 할리우드 최고의 터프가이로 군림했다.
▲ <데스페라도>로 주연데뷔한 헤이엑은 지난 2021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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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페라도>에서는 사람이 찾지 않는 한적한 서점을 운영하는 묘령의 여인 캐롤리나가 총상을 입은 마리아치를 구해준다. 사실 캐롤리나는 그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지역의 지배자인 부초에게 신세(?)를 지며 살고 있다. 캐롤리나는 부초에게 돈을 받고 서점을 마약거래현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마리아치가 부초를 죽이면서 복수에 성공하게 되고 자유의 몸이 된 캐롤리나는 마리아치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데스페라도>에서 캐롤리나를 연기한 배우는 멕시코 출신 셀마 헤이엑이었다. <데스페라도>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주연 출연작이 없는 신예였던 헤이엑은 <데스페라도> 이후 1996년 <황혼에서 새벽까지>,<2003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등 로드리게스 감독의 영화를 통해 인지도를 높였다. 2021년에 개봉한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는 치유능력과 이터널들의 의식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리더 에이잭 역을 맡기도 했다.
로드리게스 감독의 절친이자 로드리게스 감독이 <데스페라도>를 만들기 1년 전, <펄프 픽션>으로 아카데미 각본상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타란티노 감독도 픽업 가이 역할로 <데스페라도>에 출연했다. 로드리게스 감독 만큼이나 재주가 많은 걸로 유명한 타란티노 감독은 로드리게스 감독의 차기작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도 무법자 리차드 역으로 출연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신작을 끝으로 감독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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