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저격글' 1주일 뒤, 곽상도는 직원에게 500만 원씩 줬다
[곽우신 기자]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당신은 7년을 치열하게 살았다는 이유로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고, 당신의 아버지를 모신 보좌진들은 7년을 함께 했어도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겠죠. …(중략)… 그런데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위해 건강과 가정, 개인적인 시간 등을 상당 부분 포기하며 헌신한 보좌진들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500만 원이라도 챙겨주셨을까요?" -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 1854번째 게시물 중에서(2021년 9월 27일)
▲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게시글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지난 2021년 9월 27일에 올라온 포스팅. 이름이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곽상도 전 국회의원과 그의 아들 곽병채씨를 꼬집는 내용을 담았다. |
ⓒ @assemnamu |
"21대 국회 의정활동보좌 격려금: 5,000,000원" - 곽상도 전 국회의원 정치자금 지출 내역(2021년 10월 5일)
곽상도 전 국회의원을 '저격'하는 페이스북 글이 올라온 지 약 일주일 후, 곽 전 의원은 실제로 의원실 소속 보좌진 8명에게 격려금을 지급했다. 액수는 500만 원씩으로 페이스북 글에서 언급한 액수와 정확히 일치했다. 명목은 '21대 국회 의정활동보좌 격려금'이었다.
당시는 곽 전 의원의 아들 곽병채씨가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의혹'의 핵심인 화천대유자산관리로부터 퇴직금 '50억 원'을 수령한 사실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화천대유 측은 처음에 '산업재해 위로금' 성격이라고 해명했으나,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다. 곽상도 전 의원의 이름은 '50억 클럽'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곽상도 전 의원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지만, 쟁점이었던 50억 원을 뇌물로 인정하지 않으며 무죄로 판단했다. 판결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면서, '퇴직금 50억 원'을 둘러싼 공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021년 9월 27일,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글도 이 점을 짚고 있다. 익명의 작성자는 "올해로 국회 보좌진으로 일한 지 7년이 조금 넘은 보좌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당신께서 2015년 무렵 화천대유에 입사하여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신 것처럼, 저 역시 2015년 무렵 우연한 기회로 국회에 들어와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곽병채씨와 본인을 비교했다.
그는 "당신께서 치열하게 7년을 사셨던 것처럼, 국회에서 일하는 보좌진들도 치열하게 살고 있다"라며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당신은 7년을 치열하게 살았다는 이유로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고, 당신의 아버지를 모신 보좌진들은 7년을 함께 했어도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저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얼마나 많은 보좌진들을 해고해왔는지 명단 일부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짧은 시간 동안 보좌진들을 꽤 많이 바꾸셨더라"라며 "그런데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위해 건강과 가정, 개인적인 시간 등을 상당 부분 포기하며 헌신한 보좌진들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500만 원이라도 챙겨주셨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오마이뉴스>가 제21대 국회 출범 이후부터 곽상도 전 의원이 의원직에서 사퇴할 때까지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들여다본 이유도 이 페이스북 글에서 시작했다. 곽 전 의원은,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보좌진들에게 대체 얼마를 챙겨주고 있는 걸까?
▲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이 2월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대장동 개발사업에 도움을 주고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고 밖으로 법원을 나서고 있다. 곽 전 의원은 남욱 변호사에게 받은 5천만원에 대해서만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
ⓒ 이희훈 |
국회의원 보좌진의 근무환경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을 때가 많다. 정무직 공무원의 특성상 고용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4년마다 치러지는 선거도 문제이지만, 그 4년조차도 온전히 채우기가 쉽지 않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중간에 의원직이 상실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스스로 의원직을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의원 본인이 임기 동안 자리를 잘 지킨다고 해서 보좌진도 그 자리를 지키라는 법은 없다. 국회의원이 '그만두라'라고 한마디 하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의원실에서 짐을 싸야 한다. 국회 사무처를 통해 정해진 월급을 받지만 그뿐이다. 국정감사 기간을 포함해 밥 먹듯이 초과근로에 시달리지만, 이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근속연수를 최소 10년을 채워야 기존 국민연금과 합산해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10년 이상 채우는 보좌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보좌진들에게 때때로 '격려금' 명목으로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의원들은 사비 혹은 정치자금을 활용해, 의원실 보좌진들의 노고를 일정 정도 보상해준다. 물론 어디까지나 의무가 아니라 자율이다. 격려금을 별도로 챙겨주지 않는 의원실도 존재한다.
곽상도 전 의원은 어땠을까? 그는 2020년에는 보좌진들에게 총 1550만 원을 지급했다. 2020년 5월 29일, 1명의 보좌진에게는 200만 원을, 나머지 보좌진 8명에게는 100만 원씩 나눠줬다. '보좌직원 격려금'이라고만 기재하고, 별도의 성격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제20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일이 2020년 5월 29일인 점을 고려하면, 재선에 성공한 그가 지난 4년 간 함께해 준 보좌진에게 20대 국회 마지막 날에 맞춰서 격려금을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20년 8월 31일, 보좌직원 1명에게 100만 원을 지급했다. 그해 12월 18일에는 9명의 보좌진에게 50만 원씩 돌렸다. 2021년 2월 18일에는 '명절 격려금' 명목으로 30만 원씩 줬는데, 이는 설날 명절 격려금으로 추정된다. 2021년 7월 12일에는 '여름휴가'를 위한 격려금을 역시 30만 원씩, 추석을 맞이한 2021년 9월 15일에도 30만 원씩 정치자금으로 금일봉을 선물했다.
탈당 이후 치솟은 격려금, 300만 원 추가 지급
그런데 이후로 갑자기 격려금 액수가 치솟게 된다. 9월 30일에는 두 번에 나누어 한 보좌직원에게 300만 원을 지급했다. 공교롭게도, 곽 전 의원은 아들의 퇴직금 문제가 언론에 처음 보도된 9월 26일, 당 긴급최고위원회의가 열리기 직전 탈당계를 제출했다. 실제로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건 10월 2일이었는데, 그 사이에 지급한 300만 원 격려금의 명분이 모호하다. 탈당계 제출 시점부터 사실상 의원직 사퇴까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그가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10월 2일부터 실제로 사직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11월 11일 사이 동안 곽 전 의원은 의원실 신변정리에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국회의원이 의원직에서 물러나게 되면 후원회 역시 해산한다. 정치자금이 남아 있더라도 더는 쓸 수 없게 된다.
이 시기에 보좌진에게 수백만 원의 격려금이 지급된 것은, 남은 정치자금을 '털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의심된다. 앞에 언급한 10월 5일 직원 8명에게 500만원씩 지급한 것 이외에도 사직안 표결 바로 전날인 11월 10일, 곽 전 의원은 보좌진들 중 2명에게는 300만 원씩, 나머지 6명에게는 100만 원씩 '전별금' 명목으로 추가 지급한다. 사실상의 퇴직금 성격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2021년에만 총 6520만 원의 정치자금을 보좌진들에게 나누어줬다.
이처럼 의원직을 물러나면서 보좌진들에게 거액의 격려금을 주는 건 곽 전 의원만이 아니다.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 역시 2021년 3월, 두 번에 걸쳐 '퇴직위로금' 명목으로만 6045만6374원을 지급했다. 합쳐서 1000만 원 넘게 퇴직금을 챙기게 된 보좌직원도 있다. 3월 5일의 경우 800만 원부터 100만 원까지 차등 지급됐고, 3월 31일에는 3명이 각 300만 원씩 그리고 다른 1명은 195만6374원(194만706원+1만5668원)을 받았다.
김 전 의원은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앞두고 의원직에서 사퇴했다. 사퇴 의사를 밝힌 건 3월 2일이고, 실제로 사직 처리가 된 것은 3월 24일이었다. 정치자금 잔여 재산 처리 과정에서 원 단위까지 지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의원은 재선 의원이지만, 공백기를 갖고 21대 국회에 입성한 인물이기 때문에 당시 그의 의원실에서 일한 보좌진의 근속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 권우성 |
국회의원 보좌진이 여러 이유로 의원실을 떠날 때, 정치자금으로 격려금을 챙겨주는 다른 의원들의 경우는 어떨까? 최다액수는 2000만 원을 지급한 박병석 민주당 의원이었다. 다만, 박병석 의원실의 경우 국회 사무처로부터 임금을 받는 보좌진이 아니라 지역 사무실에 일하는 직원에게 지급한 중간정산 성격의 퇴직금이었다.
박병석 의원실은 <오마이뉴스>에 "해당 직원은 박 의원의 정계 입문 이후부터 현재까지 23년째 지역 사무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간사"라며 "현재 월 3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박 의원이 별도로 지급하고 있는데, 박 의원의 이번 임기가 끝나면 사실상 해당 직원도 퇴직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한꺼번에 거액을 지급하기도 어려워 지금까지 지급된 임금의 10% 정도 누적됐다고 계산해 일부 선지급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인 국회 보좌진 퇴직금과는 결이 조금 다른 셈.
최소액은 인턴 보좌진에게 퇴직 격려금 30만 원을 지급한 이영 전 국민의힘 의원(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었다. 국회 인턴의 경우 국회 사무처에 고용된 계약직으로 통상 11개월 단위로 재계약해 22개월이 최대 근속 시한이다.
중도에 의원직에서 물러나면서 갈 곳이 없어진 보좌직원들에게 적절한 포상을 하는 것 자체를 두고 비난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후원회 해산에 맞춰서 잔여 재산을 터는 방식으로, 의원의 사비도 아닌 정치자금으로 수백만 원씩 지급하는 것이 온당하기만 한 행위일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의 질의에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격려금을 지급할 수 있는 건 아니고, 통상적으로 국정감사라든지, 일상적으로 하는 업무가 아닌 경우, 사회통념상 그 노고를 격려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원직 사퇴라든지 임기 만료로 의원실 직원들에게 퇴직금 성격의 위로금을 전달하는 경우, 통상적인 격려금의 경우로 보이기 때문에 지급이 가능하다"라는 것.
이어 해당 관계자는 "격려금을 임금에 준하는 수준으로 지급하는 건 맞지 않다"라며 "과도한 액수를 정기적으로 지급해 사실상 임금의 성격으로 띠는 격려금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액수는 얼마가 적정하다고 보기가 어렵다"라며 "통상적으로 민간기업이나, 다른 의원실의 사례들을 참고해서 너무 과도하지 않게 지급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선관위는 "사회통념상 특별히 노고를 치하해야 하는 경우에, 적정한 수준에서 지급"하도록 안내하고 있지만 그뿐이다. 사실상, 구체적인 액수나 지급 횟수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제제할 수단도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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