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의 가슴에 그리움이 있다

이준만 2023. 4. 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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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요일 엮음,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이준만 기자]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집 표지
ⓒ 이준만
누구나 가슴 한편에 그리움의 편린 한 모금쯤 머금고 살아간다. 바삐 살다 보면 잊어버리기 마련인 감정이 그리움이다. 지나가 버린 일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리라. 과거는 잊히기 쉽지만 아름답게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리움을 잊는 일은 아름다움에 무뎌지는 과정과 닮아 있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미디어창비)에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슴 한편에 자리한 그리움의 조각을 음미하는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시가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그리움과 맞물리는지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물결이 먼저 강을 깨운다 물보라 놀라 뛰어오르고 / 물소리 몰래 퍼져나간다 퍼지는 저것이 파문일까 / 파문 일으키듯 물떼새들 왁자지껄 날아오른다 // 오르고 또 올라도 하늘 밑이다 / 몇 번이나 강 너머 하늘을 본다 / 하늘 끝 새를 본다 / 그걸 오래 바라보다 / 나는 그만 한 사람을 용서하고 말았다 / 용서한다고 강물이 거슬러 오르겠느냐 / 강둑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발끝이 들린다 / 내가 마치 외다리로 서서 / 몇 시간 꼼짝 않는 목이 긴 새 같다 / 혼자서 감당하는 자의 엄격함이 저런 것일까 // 물새도 제 발자국 찍으며 운다 / 발자국, 발의 자국을 지우며 난다" - 천양희, <목이 긴 새> 전문

무언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그리움이 사무치게 솟구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분명 있을 터이다. 그리움이란, 이처럼 정적인 상태에서 약간의 시간을 들여, 어떤 대상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때 생겨나기 쉬운 심리 상태라 할 수 있다. 위 시의 화자는 '그만 한 사람을 용서'했다.

한마디 말도 없이 화자 곁을 떠난 사람일까? 아니면 화자 마음에 잔인한 상흔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일까? 알 도리가 없지만, 무슨 상관이랴. 각자의 가슴 한편에 묻어 두고 있는, 미움 범벅인 그리운 사람을 끄집어내자. 그런 다음 용서하고 보내 주자. 그래야 또 다른,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쌀을 씻다가 / 창밖을 봤다 //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 옛날 일이다 //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 아침에는 / 아침을 먹고 // 밤에는 눈을 감았다 //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 황인찬, <무화과 숲> 전문

밥해 먹으려고 쌀 씻다가, '그 사람'이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숲으로 이어진 길을 바라보고 있다. 한 장의 정지 화면이다. 손은 반쯤, 쌀 씻는 바가지에 담그고 눈은 숲길에 고정되어 있으리라. '그 사람'이 떠난 건 아주 오래전 일일 텐데,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여전히 화자는 '그 사람'이 떠난,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일상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늘 '그 사람'과 함께하고 있다. 그 누구도 혼낼 수 없는 꿈속에서 '그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고 있다. 지독한 그리움이다. 지독한 사랑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의 화자에게 완벽하게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그리움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뿐. 그러나, 그 누구는 완벽한 공감의 심정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런 사람이라면 이 시를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터이다.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 /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 /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 나를 내다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 /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 창밖 가로등 아래 /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 강성은, <기일(忌日)> 전문

'기일(忌日)'은 해마다 돌아오는 제삿날이다. 몇 번째 맞는 기일(忌日)일까? 이미 많이 버렸는데도 아직도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고 한다. 미련 때문에, 그리움 때문에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많은 것이리라. 그만큼 그 대상과 함께해 온 날들이 많았으리라. 문제는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밤새 부스럭거리며 버린 물건 중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버렸는데도 여전히 버려야 할 물건이 많은 것이다.

그리운 대상의 기일(忌日)을 맞아 그와 관련한 물건을 몽땅 다 버려야,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한편에 너무나도 견고하게 옹이 져 있기에, 그럴 수 없나 보다. 캐내고 싶어도 캐낼 수 없는 처절한 그리움이다. 이토록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 낡은 수첩 한구석에서 나는 이런 구절을 읽게 되리라 /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 그랬던가 / 너를 사랑해서 / 너를 그토록 사랑해서 / 너 없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할 수조차 없어서 / 너를 사랑한 것을 기필코 먼 옛날의 일로 보내버려야만 했던 그날이 / 나에게 있었던가 /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한사코 생각하는 내가 / 이토록 낯설게 마주한 너를 / 나는 다만 떠올릴 수 없어서 / 낡은 수첩 한구석에 밀어 넣은 그 말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 그 말에 줄을 긋고 이렇게 새로 적어넣는다 /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 그런 나를 한 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 - 남진우,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전문

'그리고'로 시가 시작된다. 사랑했던, 그리운 대상과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기에, 도저히 적을 수가 없어서 생략하고 '그리고'로 시를 시작한 모양이다. 이별을 했는지 작별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너'를 정말로 너무나도 사랑한 듯하다. '너'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랑의 파토스가 격렬하게 휘몰아칠 때는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는 있을 터이다.

그런데 '너를 잊은 적이 있는'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살다 보면, 아무리 그리운 대상이라 하더라도 잊히기 마련 아닌가? 그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적이고 결벽적인 사랑이라 하겠다. 가슴속 깊이 간직해 두고 틈틈이 꺼내 보고 있는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그 누구라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마음 어딘가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추억이든 간에 말이다. 이런 감정이 메마른 시대를 관통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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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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