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의 가슴에 그리움이 있다
[이준만 기자]
▲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집 표지 |
ⓒ 이준만 |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미디어창비)에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슴 한편에 자리한 그리움의 조각을 음미하는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시가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그리움과 맞물리는지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물결이 먼저 강을 깨운다 물보라 놀라 뛰어오르고 / 물소리 몰래 퍼져나간다 퍼지는 저것이 파문일까 / 파문 일으키듯 물떼새들 왁자지껄 날아오른다 // 오르고 또 올라도 하늘 밑이다 / 몇 번이나 강 너머 하늘을 본다 / 하늘 끝 새를 본다 / 그걸 오래 바라보다 / 나는 그만 한 사람을 용서하고 말았다 / 용서한다고 강물이 거슬러 오르겠느냐 / 강둑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발끝이 들린다 / 내가 마치 외다리로 서서 / 몇 시간 꼼짝 않는 목이 긴 새 같다 / 혼자서 감당하는 자의 엄격함이 저런 것일까 // 물새도 제 발자국 찍으며 운다 / 발자국, 발의 자국을 지우며 난다" - 천양희, <목이 긴 새> 전문
무언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그리움이 사무치게 솟구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분명 있을 터이다. 그리움이란, 이처럼 정적인 상태에서 약간의 시간을 들여, 어떤 대상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때 생겨나기 쉬운 심리 상태라 할 수 있다. 위 시의 화자는 '그만 한 사람을 용서'했다.
한마디 말도 없이 화자 곁을 떠난 사람일까? 아니면 화자 마음에 잔인한 상흔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일까? 알 도리가 없지만, 무슨 상관이랴. 각자의 가슴 한편에 묻어 두고 있는, 미움 범벅인 그리운 사람을 끄집어내자. 그런 다음 용서하고 보내 주자. 그래야 또 다른,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쌀을 씻다가 / 창밖을 봤다 //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 옛날 일이다 //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 아침에는 / 아침을 먹고 // 밤에는 눈을 감았다 //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 황인찬, <무화과 숲> 전문
밥해 먹으려고 쌀 씻다가, '그 사람'이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숲으로 이어진 길을 바라보고 있다. 한 장의 정지 화면이다. 손은 반쯤, 쌀 씻는 바가지에 담그고 눈은 숲길에 고정되어 있으리라. '그 사람'이 떠난 건 아주 오래전 일일 텐데,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여전히 화자는 '그 사람'이 떠난,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일상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늘 '그 사람'과 함께하고 있다. 그 누구도 혼낼 수 없는 꿈속에서 '그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고 있다. 지독한 그리움이다. 지독한 사랑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의 화자에게 완벽하게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그리움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뿐. 그러나, 그 누구는 완벽한 공감의 심정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런 사람이라면 이 시를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터이다.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 /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 /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 나를 내다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 /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 창밖 가로등 아래 /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 강성은, <기일(忌日)> 전문
'기일(忌日)'은 해마다 돌아오는 제삿날이다. 몇 번째 맞는 기일(忌日)일까? 이미 많이 버렸는데도 아직도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고 한다. 미련 때문에, 그리움 때문에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많은 것이리라. 그만큼 그 대상과 함께해 온 날들이 많았으리라. 문제는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밤새 부스럭거리며 버린 물건 중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버렸는데도 여전히 버려야 할 물건이 많은 것이다.
그리운 대상의 기일(忌日)을 맞아 그와 관련한 물건을 몽땅 다 버려야,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한편에 너무나도 견고하게 옹이 져 있기에, 그럴 수 없나 보다. 캐내고 싶어도 캐낼 수 없는 처절한 그리움이다. 이토록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 낡은 수첩 한구석에서 나는 이런 구절을 읽게 되리라 /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 그랬던가 / 너를 사랑해서 / 너를 그토록 사랑해서 / 너 없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할 수조차 없어서 / 너를 사랑한 것을 기필코 먼 옛날의 일로 보내버려야만 했던 그날이 / 나에게 있었던가 /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한사코 생각하는 내가 / 이토록 낯설게 마주한 너를 / 나는 다만 떠올릴 수 없어서 / 낡은 수첩 한구석에 밀어 넣은 그 말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 그 말에 줄을 긋고 이렇게 새로 적어넣는다 /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 그런 나를 한 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 - 남진우,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전문
'그리고'로 시가 시작된다. 사랑했던, 그리운 대상과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기에, 도저히 적을 수가 없어서 생략하고 '그리고'로 시를 시작한 모양이다. 이별을 했는지 작별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너'를 정말로 너무나도 사랑한 듯하다. '너'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랑의 파토스가 격렬하게 휘몰아칠 때는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는 있을 터이다.
그런데 '너를 잊은 적이 있는'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살다 보면, 아무리 그리운 대상이라 하더라도 잊히기 마련 아닌가? 그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적이고 결벽적인 사랑이라 하겠다. 가슴속 깊이 간직해 두고 틈틈이 꺼내 보고 있는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그 누구라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마음 어딘가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추억이든 간에 말이다. 이런 감정이 메마른 시대를 관통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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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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