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목마른 배우 전도연에게 ‘도취’란 없다_요주의여성 #84
넷플릭스 〈길복순〉이 처음 공개됐을 때, 배우 전도연의 첫 번째 단독 주연 액션 영화라는 설명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대 배우 전도연’에게 이번 작품이 본인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액션 영화라고?
전 세계의 많은 구독자들이 즐겁게 본 이 영화, 〈길복순〉에서 전도연은 극의 주인공이자 주제이며 장르 그 자체입니다. ‘사춘기 딸을 키우는 베테랑 킬러’라는 설정을 제 옷처럼 입고 액션, 로맨스, 엄마와 딸 사이의 감정 연기까지 극 전체를 꽉 채웠지요. 메이드 복장으로 칼을 휘두를 때도, 레드 벨벳 슈트를 입고 후배 앞에서 ‘한 실력’을 보여줄 때도 참으로 근사한 길복순. 극의 마지막, 차민규(설경구)의 목을 베는 순간 클로즈업된 길복순의 얼굴, 두 사람의 역사와 온갖 감정이 뒤섞인 듯한 그 표정은 오직 전도연 배우여서 가능했겠지요.
〈일타 스캔들〉에서는 또 어땠고요? 1월부터 3월까지 tvN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 덕분에 주말 저녁을 훈훈하게 보냈어요.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해 청바지를 입고 일상성 묻어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전도연을 보는 게 즐거웠지요. 〈일타 스캔들〉과 〈길복순〉으로 이어진 전도연의 승승장구가 이상하게 내 일처럼 기분 좋고 신이 나요.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전도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엘르〉 2017년 12호에 실린 전도연 배우의 데뷔 20주년 기념 인터뷰는 제가 에디터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포트폴리오 중 하나입니다. 세상에, 전도연과 마주 앉아 주구장창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마주한 배우 전도연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연기 여정에 대해 들려주었지요. 당시 제가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아직도 너무나 ‘목말라’ 한다는 점이었어요. 배우 전도연은 자신이 이룬 성취나 영광을 곱씹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20년’이란 숫자나 ‘칸의 여왕’이란 수식에 갇히길 경계하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이끌어줄 캐릭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죠.
돌아보면, 제가 만난 대부분의 여성 배우들이 그러했어요. 더 크고 훌륭한 배우일수록 ‘도취’란 없었어요.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죠. 이 길이 얼마나 힘들고 매 작품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지. 그럼에도 그들은 더 많이, 다양하게 쓰이기 원하고, 도전하기 원했어요. 그들의 겸손함과 열정에 깊이 감화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어쩐지 애잔하고 씁쓸한 기분도 들었어요. 이렇게 아름답고 탁월한 여성들이 그토록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양자경은 자리에 걸맞은 특별한 수상 소감을 남겼지요. “여성들이여, 누구도 여러분에게 당신의 전성기는 지났다고 말하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그리하여 〈일타 스캔들〉과 〈길복순〉의 성공을 두고 전도연의 또 다른 전성기이니 부활이라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저 몇 년 전 마주했던 그의 ‘타는 목마름’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길 바랍니다.
긴 시간 버티고 견디고 도전한 배우들 덕분에 요즘 챙겨볼 게 많아요. 김희애와 문소리의 〈퀸메이커〉, 엄정화의 〈닥터 차정숙〉, 김서형의 〈종이달〉도 얼른 봐야 하는데.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모험을 거듭해 세상이 지은 한계를 돌파한 배우들, 그네들 덕분에 영화와 드라마 속 여성의 모습은 더욱 깊고 다채로워졌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도 슬며시 더 크고 먼 미래를 그리게 됩니다. 일단은, 힘내서 버티고 살아남아 봐요. 인생의 정점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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