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장항준 감독이 믿은 '리바운드'의 힘
농구에서 슈팅한 골이 골인되지 않고 림이나 백보드에 맞고 튀어나올 때 선수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리바운드'다. 실패한 골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공을 잡고 뛰어 올라야 다음의 기회를 취할 수 있다.
영화 '리바운드'는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중, 고교농구 대회에서 단 6명의 엔트리로 출전한 최약체 팀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연승의 쾌거를 이루어낸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실제 이야기다. 장항준 감독은 왕년에 잘 나갔지만 현재는 소외 받은 코치와 선수들이 끊임없이 '리바운드'하는 과정을 스크린 위에 수놓았다.
영화 속 이야기 뿐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 뿐 역시 '리바운드'의 연속이었다. 신인 배우들로 꾸려진 영화에 100억 가까이 투자하는 건 모험이라 여겨졌고, 영화가 엎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게임사 넥슨이 투자를 결정해 1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넥슨은 첫 번째 영화인 '리바운드'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배우 하정우가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 기획안은 장원석 대표가 최초로 기획했어요. 그리고 김영훈 대표가 제작에 참여했고요. 저희가 투자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 하정우 씨가 이 시나리오를 워낙 좋아해서 넥슨 쪽에 다리를 연결시켜줬죠. 넥슨 쪽으로 이 시나리오를 본 후 '우리는 돈 벌고 싶어서 영화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영화가 하고 싶다'라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리바운드'에 출연한 배우들이 스타성이 있진 않으니까요. 주인공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잖아요. 주연 중 알려진 배우는 안재홍, 정진운 뿐인데, 이들이 좋은 배우지만 100억 가까이 투자할 수 있는 배우들은 아니잖아요. 온전히 시나리오만 믿고 투자해 주신 거죠."
'리바운드'는 배우들을 까다롭게 캐스팅 했다. 실제 선수들과 체격이 비슷해야 했고 농구 스킬을 보여줄 수 있는 실력도 갖춰야 했다. 장 감독은 배우들이 아낌없이 몸을 불살라 준 덕분에 역동성 넘치는 농구 경기 장면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칭찬했다.
"농구 영화라 경기 장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영화는 경기 장면이 많이 들어가 품이 많이 들어갔어요. 물론 편하게 찍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이 경기 안에 관객들이 몰입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관람하면서 경기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카메라가 밑으로 내려가고 끊기면 안 됐어요. 배우들은 합을 맞추고 그 안에서 고속 카메라로 플레이 시켰어요. 배우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리바운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엔딩 장면이다. 배우들의 경기 장면이 실제 부산 중앙고 선수들의 경기 장면 사진들이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진다. 끝난 줄 알았던 경기의 여운이 마지막 장면으로 더욱 깊게 스며든다.
"각색하며 실화의 느낌을 줄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부산 중앙고 경기 사진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고교 대회고 우승 팀이 아니라 사진이 많이 없어요. 이름 모를 일반인들의 사진도 있죠. 그래서 샅샅이 찾았어요. 그래서 선별한 사진이 지금의 엔딩이죠. 이 사진에 맞춰서 찍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어요. 실제처럼 움직이면서 고개와 손끝까지 다 맞췄어요. 떼샷도 쉽지 않았죠. 개인샷들은 거의 플레이 중에 나온 거라 아무리 보고 따라 해도 동작과 표정이 달라졌어요. 상대편 선수의 움직임도 신경 써야 했고요. 그걸 맞추는데 한 테이크당 20번씩 찍은 것 같아요."
감동의 또 다른 화룡점정은 펀(FUN)의 '위 아 영'(We Are Young)을 OST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지친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경기를 하러 등장할 때 '위 아 영'으 흘러 나온다. 이 곡은 제55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받은 곡으로,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어떤 음악을 깔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위 아 영' 같은 노래 분위기가 어떨까 하면서 제안을 받았어요. 팝송은 저작권료가 비싸서 살 수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제작하려고 했죠. 그리고 넥슨 쪽에서 블라인드 시사 할 때, 음악이 완성되지 않아 '위 아 영'을 넣었고요. 그런데 넥슨 쪽에서 '위 아 영' 음악을 살 테니 삽입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팝의 저작권료는 정말 비싸요. 프린트당 횟수 별로 지불해야 하거든요. 국내 사용료만 그렇고 해외에서 영화를 틀 경우는 또 이야기가 달라져요. 그래서 영화하는 사람들이 팝을 잘 안 쓰죠."
'리바운드'를 본 선수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강양현 코치, 배규혁, 허재윤 등은 영화에 깜짝 출연하며 또 하나의 깨알 재미를 선하기도 한다.
"한 선수의 어머님은 결과를 알고 영화가 가짜라는 걸 알아도 응원하시더라고요. 당시 선수들은 이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을 거예요. 느끼지 못할 나이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난 후 어른이 되서 보니 북받치는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실제 선수들은 출연시킨 건 기념사진처럼 만들어 선물로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만들어서 한 앵글에 들어가 있도록 설정했죠. 우리만 아는 시그니처였어요."
장항준 감독은 영화 '라이터를 켜라', '기억의 밤'을 연출하면서 충무로 인정받는 동시에 재치 있는 입담으로 예능에서도 활약 중이다. 장 감독은 나이가 들 수록 작품이 소중함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영화 감독이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니까 더 애틋해지네요. 방송은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가면 웃겨야 해서 부담스럽더라고요. 제가 예능 작가 출신이라 그들의 마음을 잘 해요. 웃긴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시청자들도 제가 식상할 것 같아요. 저도 제가 그렇게 쓰이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이제 당분간 방송은 쉬려고 해요."
올해 55세가 된 장항준 감독은 60대가 돼도 영화 현장에 있는 것이 목표다. 좋은 사람들과 오래오래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아직 계획은 없지만 아버지 학창 시절과 청소년 이야기를 영화 만들어 보고 싶네요. 아버지로부터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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