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들의 공식 언어, “나는 모른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데스크 2023. 4. 2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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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히 송영길 버린 더불어민주당
도운 사람에게 형사책임 떠넘기나
과장된 찬사가 도덕 불감증 부른다
프랑스에 체류해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3일 오후(현지시간) 귀국을 위해 파리 외곽에 있는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김민석 정책위 의장이 23일 페이스북에 송영길 전 대표에 대한 글을 올렸다.

“송 전 대표는 물욕이 적은 사람이다. 내가 보증한다.”

물욕은 모르겠거니와 ‘표 욕심’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사람이라면 당 대표 경선에 나섰겠는가. 애초에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부터 하지 않았을 법하다. 표 욕심, 다른 말로 명예욕은 남달랐다고 보는 게 상식적 판단일 듯하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돈 봉투 의혹’은 물욕이 아니라 표욕(票慾)과 관련된 사건이다. 그런데 김 의장은 사안의 핵심을 뒤집으면서 송 전 대표의 이미지 세탁을 꾀했거나 꾀한 셈이 됐다. 정치인이 특히 금기시해야 할 것이 바로 국민들의 판단을 흐려놓을 수 있는, 안 좋은 말재간이다. “내가 보증한다”는 말도 이 범주에 속한다. 공인(公認) 보증인인가?

과감히 송영길 버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가 이미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사건에 대한 당의 입장과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당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서 노력하겠다. 이를 위해서 송영길 전 대표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는 말씀도 드린다.”

대표가 ‘깊이 사과’했는데도 고위 당직자가 민심 회유성 발언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이 대표가 “수사기관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는 말까지 한 마당이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여론을 자극해서 ‘정치탄압, 야당탄압’의 구도로 국면을 전환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서는 ‘허언(虛言)’ ‘식언(食言)’ 정당이라는 ‘이미지의 굴레’를 벗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번 일에 대한 민주당의 초기 대응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바람직했다. 반사적으로 윤석열 정권과 검찰을 공격하던 패턴을 탈피, 사과부터 하고 검찰 수사에 맡기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의 민주당 행태에 비추어 일대 변화였다. 자신이 연루된 사건들의 수사와 관련, ‘모르쇠’로 일관하며 ‘검찰의 탄압’을 입에 달고 살던 이 대표가 군더더기 없이 사과부터 하고 나선 것은 충격이기까지 했다. “저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하고 놀란 사람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물론 경우가 달랐다. 우선 남의 일이다. 사건의 중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1심에서 4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만큼 검찰의 탄압으로 몰아붙인다는 게 너무 억지스럽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총선 한 해 앞에 터진 대형 스캔들을 두고 검찰과 맞선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민심에 역행하는 우둔한 전략전술이라 여겼음직도 하다. 이재명은 터무니없이 부인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시비비가 분명한 리더’라는 이미지를 대중의 심리에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

도운 사람에게 형사책임 떠넘기나

이 대표는 사과는 하면서도 당 차원의 조치는 피해갔다. 검찰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검찰에 사건처리를 일임하다니! 이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는 뜻으로, 세상을 몹시 놀라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할 일이다. 계산이 없었을 리 없다. 당의 조사역량과 여건엔 한계가 있다. 어차피 송 전 대표에 대한 징계가 핵심과제일 텐데 이는 이 대표 자신에게 짐만 될 뿐이다. 당에서 ‘불법’으로 결론지어 버리면 훗날 검찰 수사결과에 어떤 반박이나 항의도 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서둘러 면죄부를 줘 버릴 경우 민심이 용납치 않을 것이다. 당의 기강을 이 대표의 뜻에 맞춰 확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꽤 괜찮은 대응이었다고 여길지는 모르겠으나 이 대표에게 결코 유리한 국면이 아니다. 앞으로 자신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서 막무가내로 ‘탄압’을 주장할 명분이 약해졌다. “다른 사람의 일일 때만 솔직해지나?”라는 여론의 지탄을 못 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면에서도 얻은 만큼 잃은 것도 많다. 이 대표는 송 전 대표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2차 투표 없이 통과할 수 있게 해준데다 국회진입의 길을 열어준 사람이 바로 송 전 대표다. 그런 사람이 곤경에 처했는데 이 대표는 외면해 버렸다. 평판이 좋을 리 있겠는가.


한편 송 전 대표는 22일 파리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갖고 탈당과 조기귀국의 뜻을 밝혔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을 성싶지는 않다. 시간을 벌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생각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런데 당, 특히 이 대표가 아주 쉽게 자신을 버렸다. 이 대표와 ‘정치공동체’라고 여겨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을 텐데 그는 지켜주기는커녕 단 한 마디의 역성도 들어주지 않았다. 외국에 머물면서 더 버틸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그는 어제 파리를 출발해서 오늘 오후 3시에 귀국할 것이라고 한다. 다음 행보는 탈당과 검찰 조사다.


당연한 일이지만 정치리더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솔직하게 조사에 응해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제가 지난해 4월 15일 당 대표 출마 회견을 했다. 4월 18일부터는 후보 등록 이후에 전국 순회강연, TV 토론 등을 했고. 3명의 후보와 30분 단위로 정신없이 뛰어 다녀 일일이 챙기기 어려웠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과장된 찬사가 도덕 불감증 부른다

특파원 간담회에서 그는 ‘모르쇠’로 입장을 정리한 듯했다. 돈 봉투 사건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당이 자신을 버렸다고 해서 자신의 승리를 위해 무리한 일을 벌였던 사람들을 버려선 곤란하지 않은가? 바빠서 일일이 못 챙겼다는 것은 리더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캠프의 핵심 인사들로부터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것도 스스로의 자질 부족을 광고하는 셈이다.


‘정계은퇴’이야기까지 나온다는 기자의 지적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치를 직업이나 생계로 하지 않았다. 제가 정치를 한 이유는, 학생운동 때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이라는 사명을 갖고 있다는 말씀만 드리겠다.”

이 말은 ‘돈 봉투’에 대한 그의 결백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정치를 직업으로 하지 않았다면 의원이 아니라 통일운동가로서 활동할 일이었다. ‘민족의 화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설명해 줘야 한다. 국민 사이의 화해에는 오히려 역행하면서 개념도 모호한 ‘민족 화해’를 들먹이는 것은 몽상 속에서 의원직, 당 대표직을 수행했다는 말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민족’이 만사형통의 키워드일 수는 없다. ‘화해’ ‘통일’의 대상이 되어야 할 ‘민족’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의 황당한 말잔치나 말재간이 멀미를 느끼게 할 때가 갈수록 잦아진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페이스북에서 한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역시 큰 그릇 송영길, 자생당생(自生黨生: 자기도 살고 당도 살렸다는 의미인 듯)했다.”

이런 간지러운 찬사는 그의 결백이 입증되고 난 다음에 바쳐도 늦지 않다. 정치 9단이라 불리는 이가 이처럼 과장되게 말 인심을 쓰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민주당 의원들 모두가 도덕 불감증에 빠질 수도 있음을 왜 생각지 않을까? 정치인들의 타락상에 탈기한 국민들을 조롱하면서 뺨을 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를 아낀다면 송 전 대표 뺨을 쳐야지!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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