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화학·유전자·약학·물리학…법과학자가 사건 해결 실마리 찾는 방법이죠
미국의 인기 수사 드라마 ‘CSI’ 시리즈에 나오는 길 그리섬 반장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언제나 되풀이합니다. 법과학 전문가로 구성된 과학수사대 요원들은 범행 현장에 남겨진 보이지 않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이리저리 몹시 바쁘게 돌아다니죠. 뭉개진 손가락에서도 지문을 채취하고, 미세한 혈흔도 찾아내요. 이렇게 모인 강력한 증거 앞에서 범인은 더는 도망갈 수 없습니다.
법과학이란 범죄사건과 관련한 수사 및 재판 등에 필요한 지식이나 자료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하고 해결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법과학자는 법과학 분야의 전문 지식·기술을 갖춘 전문가로서 사건과 관련된 각각의 전문분야에서 증거물 등의 감정 및 분석을 수행하며, 그와 관련된 연구와 개발을 수행합니다. 법과학은 크게 보면 법의학을 포함한 개념이며, 법의학을 제외한 순수 법과학에는 화학·유전자·약학·디지털·법심리학·물리학(화재·안전·교통) 등의 분야가 있어요. 법과학적 지식을 활용하는 것을 ‘과학수사’라고 하죠. 범죄 현장에 남겨진 증거물과 단서를 과학적 지식, 과학 기구(장비) 및 시설을 이용해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방법이에요.
법과학과 과학수사, ‘CSI’나 한국 드라마 ‘싸인’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죠. 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입니다. 국과수에서 일하는 연구원을 법과학자라 부르는데, 범죄 수사 및 사건·사고의 원인 규명 등에 필요한 과학적 감정과 연구 활동을 통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죠. 미디어를 통해 국과수를 접하며 국과수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국과수 연구원은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국과수 법과학부 화학과 박우용 연구관을 만났어요.
화학과는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화학물질의 분석을 통해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와 열쇠를 제공하죠. 대표적인 업무 분야는 크게 음주 관련 분석, 화재 및 폭발과 관련된 인화성 물질 분석, 미세증거물 분석, 유해가스류 및 유해화학물질 분석, 환경오염물질 관련 분석, 각종 화학물질의 동일성 및 원산지와 관련된 동위원소 분석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박 연구관은 현재 미세증거물 감정 업무를 담당하죠. “범인들이 보통 자기의 흔적을 다 치우고 가는데, 섬유·페인트·유리 등의 미세증거물 같은 경우 너무 작아 놓치기도 해요. 그런 걸 과학수사관들이 채취해 오면 현미경으로 확인 후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지, 어떤 물질인지 확인해서 사건 해결에 단서를 제공해주죠.”
현장에서 채취한 미세증거물과 대조 시료를 비교해 보기 위해 현미경을 사용하는데요. 미세증거물 연구실에는 여러 종류의 현미경이 있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도 현미경으로 시료를 살펴보며 미세증거물 감정 업무가 어떤 건지 살짝 경험해봤죠. 화학 분야의 경우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한 감정기술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데요. 다양한 혼합물에서 특정한 물질을 분리·식별하는 기초적인 분석방법이지만 어떤 화학물질이 얼마만큼 존재하는지 알아내는 강력한 분석방법이기도 하죠. 박 연구관을 인터뷰하며 자세한 법과학 업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재민 이 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학생 때부터 과학에 큰 흥미를 갖고 과학자로 일하기 위해 화학공학과에 진학했어요. 대학·대학원에서 화학 및 환경화학공학과 관련된 지식을 쌓고 연구했죠.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며 눈에 들어왔던 것이 매스컴·뉴스 등을 통해 보고 듣는 다양한 범죄였고, 지금까지 연구해 온 과학적 지식과 연구내용을 활용해 사회 정의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과학적인 입증으로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국과수의 업무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엄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범죄 해결에 기여함으로써 억울한 피해자를 줄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2001년에 국과수의 화학분석과에 지원했죠.
시연 국과수에서 하는 업무를 소개해 주세요.
입사 후 대전과학수사연구소로 발령을 받아 15년 정도 근무하며 다양한 사건을 담당, 화학적인 분석을 통해 사건 해결에 기여했습니다. 국과수는 다양한 사건·사고를 다루는 만큼 단순히 한 분야의 분석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협력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본인의 과 이외에도 넓은 분야에서의 과학적인 지식을 함양하는 것이 필요하죠. 현재는 본원에서 근무 중인데요. 지방연구소에서는 다양한 감정을 골고루 경험해 볼 수 있는 반면, 본원 화학과에서는 업무 영역을 세분화·전문화해 운영하며 고가의 감정 장비 사용 및 운용의 효율성과 타 감정 분야와의 연계를 고려하여 동위원소 분석과 같이 본원만의 감정 영역도 존재합니다. 현재 담당하는 미세증거물 감정 업무의 경우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증거물을 가지고 범인을 추적하거나 사건의 정황 등을 증명하는 등 과학수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죠. 다양한 형태의 증거물을 분석하고, 서로 같은 물질인지 증명하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준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무엇인가요.
국과수는 강원도 원주에 본원이 있고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분원과 제주 출장소가 있으며, 일부 지방경찰청의 합동 법과학감정실에도 일부 파견돼 주요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저는 원주 본원, 서울·대전 및 전주 소재의 전라북도경찰청 합동 법과학감정실 등에서 20여 년간 근무했는데요. 기억에 남는 근무지는 가장 오랜 시간 근무했던 대전과학수사연구소, 수도권 지역의 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했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경찰 과학수사팀과 직접 소통하면서 사건과 관련한 현장 상황 파악이 용이하고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었던 합동 법과학감정실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증거물을 채취하거나 측정한 사례가 많은데요. 일산화탄소로 인한 질식 사망사건(선거 유세 버스 사망사고, 차량과 보일러 및 난방장치 사용과 관련되어 불완전 연소가스로 사망한 사건 등)과 관련한 현장 재현 실험과 가스 측정, 가축 분뇨 처리장 등에서의 유해가스 중독 사망 현장 감정, 각종 화학공장에서의 사망사고 현장 감정, 철도 조차장 안전사고 사망사건, 교통사고와 관련된 현장에서의 증거물 채취 및 분석, 대통령 동상 손괴사건과 관련한 금속 성분 동일성 분석 등 여러 사례가 기억납니다. 그중에서도 2015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장이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사 들고 귀가하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청주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 있는데요. 당시 가해차량 범퍼의 파손되어 접합된 충격부위를 감정했고, 접합부분에서 순간접착제 성분을 확인한 게 인상에 남네요.
승찬 사건을 해결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사례가 있다면요.
2021년 한밤중에 대전에서 피의자가 화단 경계석을 도로에 던져 이후 지나던 오토바이가 충돌하여 배달 청년이 사망한 사건이 있어요. 현장에 있던 경계석에서 오토바이의 타이어 성분이 검출되었고, 오토바이 타이어의 충돌 부위에서 경계석의 콘크리트 성분이 검출되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죠.
재민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뭐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빠르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 및 분석방법에 대한 학습과 적용이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지만 지속적인 학습과 연구, 동료들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감정결과가 실제로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을 때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시연 법과학자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정확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범죄현장에서 수집된 증거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범인을 찾아내는 것은 법과학자들의 특별한 역할이며,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정의를 선사하는 것이므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준 법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직업의식이나 자질은 뭔가요.
법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직업의식은 정확하고 공정한 법과학적 분석을 통해 사실과 증거에 기반해 사건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인내심과 성실성, 탁월한 분석력, 적극성 등의 자질이 요구됩니다. 또한 다양한 법과학자와 수사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므로 대인관계와 소통 능력도 중요하죠.
승찬 법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국과수에는 매우 다양한 분야의 법과학자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해 지식을 습득하고,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하면 입사자격이 주어집니다. 특히 화학 분야에서는 화학·분석화학·물리화학·유기화학·화학공학 등의 전공지식이 요구되죠.
재민 국과수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기 채용이 없고, 결원이 생기면 충원하는 형태로 1년에 수차례 뽑기도 하고, 채용이 없는 해도 있습니다. 채용은 부서별로 이뤄지며 직무별로 요구하는 전공이 다르죠. 국과수 연구원은 공무원 신분이라 공무원법 제33조(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지원 가능합니다. 제가 들어올 당시에는 영어 및 전공 시험과 면접을 통해 합격하는 방식이었는데, 현재는 연구 실적을 중심으로 한 서류전형 및 실무와 관련된 면접을 통해 합격자를 선발해요. 영어의 경우 TOEIC·TEPS 등의 공인 영어 성적을 기준으로 하며, 서류 검토 시 관련 분야의 연구 성과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니까 대학원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논문 게재, 학회 발표, 연구과제 참여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성과를 쌓을수록 유리하며, 평소 관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준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연 법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자신이 흥미를 가진 분야에서 법과학자를 꿈꾼다면 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연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평소 그 분야에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다양한 교육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 국과수 외 과학수사 기관은
「 경찰청 경찰은 현장에서의 과학수사를 대표합니다. 경찰은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 조사하고, 증거물을 채취하며 사건 전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죠. 경찰청에는 수사와 관련된 많은 전문 부서들이 있고, 거짓말 탐지 검사, 화재 감정, 사건 현장 조사, 범죄 프로파일링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있어요. 해양경찰청 과학수사대의 경우 수중 범죄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검찰청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는 범죄수사 증거물의 신속·정확한 감정(분석), 사이버범죄에 체계적인 대응으로 일선 검찰청 수사를 지원하고 있어요. 과학수사 장비의 첨단화, 감정 기법 연구, 전문수사관 양성을 통해 범죄수사 증거물을 감정하고 사이버 범죄에 대응합니다.
국방부 과학수사를 담당하는 수사부서와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가 있어요. 군대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군인 범죄는 국방부 내에 설치된 수사 기관에서 따로 담당하죠. 약·독물, 총기, 폭발물 사고, 화재, 지문 분석, 부검 등 군 관련 범죄 사건을 조사·감식·감정하며 과학수사를 지원하죠.
」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국립과학수사연구원·박우용 연구관, 동행취재=구시연(서울 월촌초 6)·심예준(서울 을지초 5)·추승찬(서울 역촌초 5)·한재민(서울 상곡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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