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신성한 산' 이름 땄다…中 반도체 극비 프로젝트 정체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에 맞서 중국산 제조 장비로 첨단 반도체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소식통을 인용해 23일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YMTC는 이른바 ‘우당산(武當山)’이라는 일급 비밀 프로젝트 아래 중국산 장비만을 활용해 자사의 첨단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에 도전하고 있다. 우당산은 YMTC 본사가 있는 후베이(湖北)성의 신성한 도교 산의 이름이다. 중국 무협소설 대가 진융(金庸·김용)의 작품에 등장하는 ‘무당파’의 본산이 되는 곳이다. YMTC는 중국 내 유명 산의 이름을 따 반도체의 명칭을 지어왔다.
YMTC가 우당산 극비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려고 하는 건 자신들의 독자적인 낸드플래시(낸드) 반도체 적층 기술인 엑스태킹(Xtacking 3.0)이 적용된 3D 낸드다. SCMP는 YMTC가 엑스태킹 3D 낸드 생산을 위해 중국 반도체 장비업체 베이팡화창(北方華創·NAURA) 등에 대규모 발주를 했고,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을 피하기 위해 이들 업체들에 장비에 부착된 로고를 비롯한 식별 표시를 제거할 것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낸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저장공간인 셀을 좁은 공간에 몇층까지 쌓느냐에 기술력이 달려있다. 3D 낸드는 셀을 평면으로 펼치던 2D 낸드에서 수직으로 쌓는 한 단계 발전된 공정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말한다. 지난해 11월 캐나다 반도체 컨설팅 업체 테크인사이트는 YMTC가 엑스태킹 기술을 활용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232단 3D 낸드를 생산해냈다고 주장했다. 테크인사이트는 “YMTC가 엑스태킹 232단 낸드를 생산했음을 발견했다”며 “코로나19 봉쇄, 지정학적 긴장, 미국의 무역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첨단 기술은 YMTC를 세계 반도체 업계의 중요한 경쟁자로 만든다”고 평가했다.
YMTC는 후베이성 우한을 기반으로 한 국유기업 XMC를 지난 2016년 칭화유니그룹이 인수해 재설립한 회사로 반도체 굴기를 노리는 ‘중국의 희망’이란 평가를 받았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기술적 장벽이 낮다고 여겨지는 낸드 분야에서 성장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YMTC는 지난해 10월 큰 어려움에 부딪혔다. 미국 정부가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14㎚ 이하의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에 대한 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통제 조치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같은해 12월 YMTC를 포함하는 36개 중국 기업을 수출통제 명단(entity list)에 올리면서 중국 반도체 고사 작전을 본격화했다.
여기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기업을 가진 네덜란드와 일본을 압박해 미국의 수출 통제 정책에 동참하도록 했다. YMTC는 이로 인해 KLA, 램 리서치(이상 미국), ASML(네덜란드), 도쿄일렉트론(일본) 등의 반도체 제조 장비 기업으로부터 첨단 장비를 조달받을 길이 사실상 막혔다. 이로 인해 업계에선 YMTC의 엑스태킹을 활용한 낸드 3D 적층 기술 성취가 사실이라 해도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에 따라 최첨단 반도체 장비업체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선 엑스태킹 낸드 양산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돼왔다. YMTC는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에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위축되는 상황까지 겹치며 YMTC는 최근에는 직원의 10%를 감원해야 했다.
그랬던 YMTC는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고 올해 초 부터 경제 성장에 나서면서 새로운 자금을 지원받으며 생산 자립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SCMP는 “YMTC가 우당산 프로젝트를 본격화한 것은 ‘빅펀드’로 불리는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일명 대기금)을 포함한 국영 투자자들로부터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은 이후”라며 “YMTC의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미국의 대중 수출 제한으로 접근이 차단됐던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에 대한 중국의 자급자족 노력이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YMTC가 외국산 반도체 장비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직은 힘들 것이라고 본다. SCMP는 “ASML이 YMTC에 제공해 왔던 리소그래피(반도체 기판에 집적회로를 만드는 기술) 등 해외 기업을 통해 조달한 특정 장비나 기술은 아직 중국 내 대안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루천이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 분야의 세계적인 업체들을 따라잡으려면 적어도 5년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링거' 때문에 서세원 사망?…의사들 "넌센스" 말 나온 이유 | 중앙일보
- 제자 때리고 그 어머니 성추행…고교 운동부 코치에 벌금형 | 중앙일보
- “미군 철수, 인민 달래기용이니 이해를” 김대중이 증언한 김정일 [김대중 회고록] | 중앙일보
- "169명 고백하자" 해도 선 그었다…'돈봉투' 끌려가는 野, 왜 | 중앙일보
- 한국 망칠 '의대 블랙홀'…시골학원에도 '초등 의대반' 터졌다 | 중앙일보
- 앗, 콧물에 피가…"오전 환기도 자제" 미친 날씨에 독해진 이것 | 중앙일보
- "연인이냐" 말도 나왔다…사라진 국왕 뒤엔 22살 연하 킥복서 | 중앙일보
- "싸구려 도시락 먹는 한국 관광객 기이해" 日극우인사 또 논란 | 중앙일보
- 알바가 실 꿰고, 간호조무사 봉합…그 병원 아찔한 600번 수술대 [사건추적] | 중앙일보
- 前 KBS 통역사 고백 "정명석 추행 보고도 문제로 인식 못 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