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북한에 소송 추진…개성공단 무단사용 대응 착수
북한이 개성공단 내 한국 소유의 자산을 무단으로 가동하는 것과 관련해 정부가 법적 대응에 들어간 동향이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 18일 우리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북한의 행위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배상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는데, 이를 두고 외교가에선 "정부가 후속조치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정부가 개성공단 내 한국측 자산에 대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을 내세워 법적대응을 추진하고 있다"며 관련 정황을 전했다.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는 기관으론 남북협력기금 수탁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 통일부 산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출입은행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피해를 본 기업들에게 남북협력기금으로 조성된 경협보험금을 집행하면서 신청 기업들에게 '대위권(代位權) 행사 관련 약정서'를 받아 공단 내 일부 자산에 대한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의 경우에도 북측 근로자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했던 버스 등 재단의 자산을 북한 당국이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확인됐다.
또 다른 소식통은 "통일부는 개성공단 내 한국 기업들의 자산과 관련해 직접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개성공단 관련 일부 기관들은 직접당사자의 지위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 기관이 로펌·경협전문가 등의 조언을 받아 가능한 법적 조치를 다각적으로 검토한 이후 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북한이 개성공단 내 한국 측 설비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재산권 침해"라 규정하며 "위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무단으로 개성공단 내 설비를 가동해 이득을 취했다면 한국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지만, 법적 조치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법리적으로는 개성공단 내 재산에 대한 당사자 권한을 가진 기업이나 기관이 북한 정권을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 손해가 발생한 것을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아야 소송 제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또 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더라도 강제로 집행할 수 있는 북측 자산이 한국에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위를 넓혀 북한 당국을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ICJ의 재판관할권은 상호 동의에 기초하기 때문에 우리가 제소하더라도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회부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 북한은 국제투자보호에 관한 기본협정인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나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법정으로 이 사안을 가져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개성공단에 대한 법적 조치의 실효성 보다는 북한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움직임은 북한의 인권 실태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북한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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