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사대주의 공방

라동철 2023. 4. 24.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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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성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를 받들어 섬기는 태도를 사대주의라고 한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형성됐던 조공·책봉에 바탕을 둔 외교 정책을 일컫는 '사대(事大)'에서 파생된 용어다.

윤석열정부의 외교 정책을 둘러싼 여야 공방 과정에서 최근 사대주의란 말이 소환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자신의 SNS에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당당한 주권국가 인식을 가지지 못한 채 아직도 사대주의적 속국 인식에 빠져 있다"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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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동철 논설위원


주체성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를 받들어 섬기는 태도를 사대주의라고 한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형성됐던 조공·책봉에 바탕을 둔 외교 정책을 일컫는 ‘사대(事大)’에서 파생된 용어다. 중국의 옛 왕조인 은(殷)·주(周) 시대에 약소 제후국이 강대 제후국에 정치·군사적인 복속의 표시로 공물을 헌상한 것에서 유래됐다.

중국이 군사·경제·문화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압도하던 시대에 사대는 조선을 비롯한 대다수 주변국들이 택했던 외교 전략이었다. 국가 자주성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패권국을 이웃에 둔 약소국들이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는 지적도 일리가 없지 않다. 약한 나라가 강대국의 눈치를 본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국제 관계였다.

윤석열정부의 외교 정책을 둘러싼 여야 공방 과정에서 최근 사대주의란 말이 소환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자신의 SNS에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당당한 주권국가 인식을 가지지 못한 채 아직도 사대주의적 속국 인식에 빠져 있다”고 쏘아붙였다. 외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고 밝힌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민주당에 “중국과 러시아에 굴종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지난 18일에는 진성준 민주당 의원이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에 대해 “사대주의적 대외관이 아주 심각한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일본의 호응이 없는데도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해법을 밀어붙였고 도·감청 의혹에도 미국을 두둔한 행태에 대한 비판이었다.

미·중 패권 다툼의 확산, 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 긴장 고조 등 최근 외교안보 환경이 살얼음판을 딛는 형국이다. 국제 역학 관계나 변화를 정확하게 읽고 대응하지 않으면 국익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중차대한 국면인데도 상대에게 ‘사대주의’ 딱지를 붙이며 소모적인 말싸움이나 벌이는 여야의 행태가 한심할 따름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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