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윤의 MZ 관찰기] MZ세대도 미래 위해선 아날로그 문해력이 필요하다

2023. 4. 24.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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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는 아날로그 문해력이 필요하다.” MZ세대 관찰기의 두 번째 테제다. 기성세대가 MZ세대와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도, MZ세대 미래를 위해서도 아날로그 문해력 공유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길복순’도 MZ와의 소통은 어렵다

영화 ‘길복순’의 타이틀롤 복순은 중학생 딸을 키우고 있다. 직업이 전문 암살자인 그녀지만 MZ 딸과의 소통은 어렵다. ‘상대 수를 읽고 예측해서 약점을 찾고, 또 다음 수를 내서 허를 찌르는’ 따위의 계략은 통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Z세대 딸을 키워 본 입장에서 나도 그 답답함을 십분 이해한다.

아날로그 기성세대에게 디지털 MZ세대와의 소통은 항상 난제다. 특히 훈계나 지도 따위의 대화는 더더욱 그렇다. 직장 상사로서 지도 차원에서 한마디 했더니 막내 사원이 말없이 사표를 냈다는, 주작 같은 이야기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질책은 MZ를 잠수타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소통의 어려움과 불편함은 기성세대에게 MZ세대를 이해하려는 강박을 선사한다. MZ세대의 습성과 사고방식을 열심히 공부해서 그들과 소통을 잘해야 뭔가 새로운 디지털 사회 구성원으로 제대로 탈바꿈됐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탈꼰대라는 시대적 소명을 달성한 느낌이 들 것 같다.

단언컨대 그런 시도는 일장춘몽이다. 차라리 MZ를 ‘맨 인 블랙’의 합법적 이주 외계인이나 ‘엑스맨’의 별종 인간으로 생각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택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도 이롭고 소통 부담도 덜어진다. 그들이 본래의 외계인 모습으로 변신하거나 초능력을 발휘하지만 않는다면 지구상에서 평화롭게 같이 못 살 아무런 이유는 없다.

소통 관점서 바라보는 문해력 논란

‘심심한 사과’ ‘금일’ ‘사흘’ ‘무운’ ‘명징’ ‘직조’ ‘고지식’…. 한때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궜던 MZ 문해력 논란의 대표적 단어나 표현들이다. MZ세대 일부가 기성세대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누구는 MZ세대 문해력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고, 누구는 한자어 몇 개 좀 모른다고 MZ세대 문해력이 낮다고 보는 건 과장된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MZ세대는 문해력이 낮을까. 나는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문해력은 낮을 수도 있지만 디지털 문해력은 그렇지 않다. 문자 문해력은 낮을 수도 있지만 영상 문해력은 그렇지 않다. 물론 둘 다 아날로그 기성세대 인간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나는 강의 중에 조금이라도 예스러운 단어가 나오면 학생들이 그 뜻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디지털 세대가 기성세대가 사용하는 언어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다. 처음에는 단순히 중고등 교육 과정에서 한자어가 많이 사라지고 다뤄지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게 아니었다. 사실 그들도 배울 건 다 배웠다. 그들이 내가 강의 중 사용하는 단어를 생경하게 느낀 건 온라인 중심인 일상생활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말뭉치가 기성세대 말뭉치와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MZ세대의 아날로그 문자 문해력이 기성세대보다 떨어지는 건 MZ세대가 기성세대 언어를 사용할 일상의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세상과 멀어지는 세대

언어는 삶을 반영한다. 기성세대가 사용하는 말뭉치는 그 시대의 사건과 인물과 사고체계를 담고 있다. MZ세대가 아날로그 시대 말뭉치에서 멀어지는 건 그 시대를 잘 알지 못해서다. MZ세대는 아날로그 세상 자체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X세대는 86세대의 삶과 사고방식을 잘 알고 있다. 86세대는 베이버부머, 어버이연합, 반공, 근대화 일꾼을 키워드로 하는 그들 부모 세대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MZ세대는 어떤가. 나는 강의 중에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의 사람들은 어떻게 약속을 잡고, 어떤 방식으로 소통했겠냐고 학생들에게 자주 물어본다. 많은 MZ에게 이는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영역이다.

MZ세대는 자신들의 부모 세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졌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현재 사는 시공간에서는 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알 기회도 잘 없다. MZ세대와 기성세대가 공유하는 아날로그 시대와 역사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기성세대가 MZ세대와 소통이 어려운 건 기성세대가 MZ세대를 잘 몰라서가 아니다. MZ세대가 기성세대를 잘 몰라서다.

문해력보다 아날로그 격차가 문제다

디지털 정보 격차(digital divide)가 화두였던 시절이 있었다. 한마디로 아날로그 인간들의 디지털 활용 능력 증진이 관심사였고, 고령층도 중요 고려 대상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사회가 진전된 현재 모습은 어떤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고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의 부친은 개인용 컴퓨터로 기본적인 한글 문서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휴대전화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실시간 서바이벌 유튜버의 방송을 찾아보며 저녁 시간을 소일한다. 아날로그 기성세대는 예상외로 빠르게 디지털 환경에 적응했다. 나는 이제 우리 사회에 심각한 디지털 격차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령대 측면에선 더 그렇다. 기성세대 일부가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하는 데 애로를 겪는 정도를 빼면.

지금부터는 MZ세대의 아날로그 격차(analog divide)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아날로그 격차란 아날로그 기반 정보 소통 기술과 활용 능력이 아날로그 기성세대와 디지털 MZ세대 간에 불균등하게 분배돼 있는 현상이다. 디지털 태생 인류의 아날로그 문해력이 떨어지면서 사회 소통과 적응력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MZ에게도 아날로그 시대 삶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디지털 태생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디지털로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모든 인간은 아날로그로 태어나고, 아날로그로 세상을 체험하면서 삶을 시작한다.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 삶의 주 터전이라 해도 아날로그 세상 없이 디지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날로그 문해력이 새로운 디지털 인류에게도 필요한 이유다.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의 인공 자궁에 갇혀 에너지로 사용되는 ‘매트릭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트릭스 밖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MZ세대도 가끔 라떼를 마실 필요가 있다. 새로운 바닐라 빈 라떼도, 녹차 라떼도, 밀크티 라떼도, 민트초코 라떼도, 고구마 라떼도 다 라떼를 기본 베이스로 삼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홍종윤 서울대 BK교수·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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