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한·미 동맹 70주년…믿음이 강화돼야 할 시간
동맹 70주년의 미국이 이번 주 윤석열 대통령을 국빈 초청했다. 141년 전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의 1조는 ‘거중조정’ 약속이었다. “양국은 영원히 화평우호를 지키되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 통지)를 거친 뒤에 필수상조(相助)하여 그 우의를 표시한다”였다. 1896년 당시 이범진 주미공사의 외교일지로 올 초 복원, 발간된 『미사일록』에 따르면 클리블랜드 미 대통령은 고종의 국서를 전달받자 “처음에 조약을 맺을 때처럼 한결같이 영구히 친목하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127년 전 조선 공사의 눈에 비친 미국 민주주의·자유의 첫인상은 이랬다. “(의사당에선) 교묘하게 변론하며 상대방을 비평하고, 부통령은 조용히 앉아서 듣고 많은 사람의 논의를 취한다.” “대통령과 장관·상원의장이 한자리에 서 맞담배를 피우는 평등이라니, 괴상한 일이로다.” “모두 화기애애하고 스스로 만족하니 더할 나위 없이 잘 다스려지는 지치(至治, 이상적 사회)의 세상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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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워싱턴은 동맹 70년의 축제
수교 141년 축복과 갈등의 교차 속
“미국 잣대는 늘 자기 이익” 교훈도
확장억제 강화, 한국 기업 배려 기대
」
미국의 승전과 해방, 건국, 공산화 남침의 격퇴, 안보 보장 속 경제발전·민주화에까지의 인연(因緣)은 한국엔 분명 축복으로 여겨질 국운의 지렛대였다. 워싱턴의 70주년 축제를 양국 모두 즐길 자격이 충분한 이유다. 그럼에도 늘 잊지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 미국의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국제정치적, 현실적 이익이 잣대일 뿐이다. 늘 선한 사마리아인이란 할리우드 영화의 잔상일 뿐이다. 크고작은 70년의 축복과 갈등 속에서 얻은 우리의 성찰은 단 하나. ‘자구(自救)’. “스스로 강해져 살아남아야 한다.”
미국통이던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확고부동의 신뢰에도 우리는 1910년 일본의 한국병합, 1945년 한반도의 양분 등 과거 두 번씩이나 미국에 배신을 당했다”고 미국 특사를 쏘아붙였다. “공산주의자들의 전쟁 재개에 아무런 방지책도 없는 정전협정문이란 한국에는 사형집행 영장”이라고 동맹의 출발인 상호방위조약을 밀어붙였다. ‘배신’이란 우남(雩南)의 지적대로 미국은 러일전쟁 직후 조선, 필리핀을 일본과 나눠먹기 하는 현실을 택했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역시 미군 철군이 거론되자 “평화를 지키려면 독자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결단했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겠느냐”며 독자 핵무장을 추진했던 드골 식 내셔널리즘의 영향도 컸지만 미국의 감시와 그의 죽음으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야당 총재 김영삼이 의심한 건 ‘민주주의 미국’이었다. 197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란의 전철을 밟지 말라. 주한미군을 내정간섭으로 볼 수 없다면, 한국 민주화를 위한 압력 역시 내정 간섭으로 볼 수 없다. 국민과 유리된 정권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수 국민 중 선택하라”고 촉구했었다. 냉전이 최고조이던 레이건 정권이 전두환 신군부의 5·18 학살과 정권 탈취를 방임하자 ‘민주주의 십자군’으로서 미국의 정체성엔 의문이 확산되기도 했었다.
효순·미선양 사건 직후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도 동맹엔 긴장 요소였다. 2003년 첫 방미 당시 “53년 전 미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난 지금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으로 극적 반전을 보인 연유는 지금도 미스터리. 그 이틀 전 미국행 전용기의 대통령 침실을 핵심 외교 관계자가 찾아갔다. “반미면 어떠냐 유의 얘기는 않으셔야 대화가 진행된다”고 운을 떼자 노 대통령은 벼락같이 화를 내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당황한 권양숙 여사가 말려보다 “지금은 나가계시는 게 좋겠다”고 해 그대로 쫓겨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라크 파병, 한·미 FTA로 자신의 말을 입증했다. 부시가 직접 그린 초상화를 들고 10주기의 노무현을 참배한 장면은 이 영화의 엔딩이었다.
바이든과 윤석열의 이번 회담은 국제정치 구도의 격변 속에서 진행된다. 중국의 대만 위협, 푸틴의 핵 협박, 중·러의 밀착, 북한의 틈새 핵도발 등의 큰 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동맹들이다. 앞서 2021년 미국의 철군 직후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도 동맹의 믿음을 감소시킨 외교적 실패로 지적됐다. 최근 중국의 주재로 이뤄진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장면엔 “사우디가 바이든의 뺨을 때린 것과 같다”(워싱턴 포스트)는 냉소도 나왔다. IRA법, 칩스법 등으로 트럼프 이래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동맹의 불만도 가시지 않고 있다. 섬유류·신발·철강·TV·지식재산권 등 경제적 손실엔 미국의 관대함이 부족했던 게 지난 70년이기도 했다. 지난달 조사에서 한국민의 64%는 독자 핵무기를 찬성했다.
지금 미국은 동맹 70년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고히 굳혀 주길 기대받고 있다. 동아시아 대륙 내 자유민주주의 보루로 세계 10번째(GDP 비율론 5번째) 국방비를 쓰는 게 우리의 고군분투다. 북핵에 한층 강화된 확장억제를 반드시 문서로 보장해야 할 시간이다. 중국과의 경쟁으로 우리 기업의 희생이 없도록 하는 배려 역시 믿음의 징표일 터다. 다시금 “한결같이 영구한 친목”을 기원해 본다.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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