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0원의 기적…땅값도 뛰었다, 일본 이 도시 보육혁명 [김현예의 톡톡일본]
지난 21일 오후 5시 30분쯤 한눈에도 묵직한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이시바시 씨가 종종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마 뒤 그를 반긴 건 5살 아들. 어린이집(보육원) 가방을 둘러맨 아이는 엄마를 만난 즐거움에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곳은 지바(千葉) 현 나가레야마(流山) 시의 송영(送迎) 보육스테이션. 우리 말로 치면 '마중 보육스테이션'인데 지하철역 바로 맞은 편에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아이를 직접 어린이집에서 바로 데려갈 수 없는 부모들을 위해 만든 곳이다.
이시바시의 일터는 도쿄(東京) 시부야(渋谷). 일을 마친 건 오후 4시 30분쯤.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퇴근한 참이다. 한숨을 돌린 이시바시가 이렇게 말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애가 있는데,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만 해도 지금처럼 어린이집이 많지 않았어요. 어린이집에 못 들어가면 일을 못 할 수도 있겠구나 했었어요.” 자리가 있다고 한 곳은 한 정거장 거리 어린이집.
하지만 등·하원이 골치였다. 어린이집은 오전 8시에 시작하는데, 아이를 맡기고 출근 시간에 맞추는 일이 간단치 않았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바로 이 송영 보육스테이션. 출근길 오전 7~8시 사이 역 앞에 있는 이곳에 아이를 맡기면, 안전하게 아이를 어린이집까지 버스로 데려다준다는 얘기였다. 하원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어린이집서 데려와 퇴근 때까지 아이를 맡아준다. 이용료는 하루 100엔(약 990원). 한 달 이용료는 2000엔(약 1만9800원)에 불과하다. 이시바시는 “큰아이를 시작으로 둘째까지 7년째 이용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부모 마음 헤아린 1㎜ 지원이 인구를 늘리다
나가레야마시는 당시 어린이집이 부족해 아이를 맡길 마땅한 곳이 없거나, 자리가 있어도 먼 거리라 갈 수 없는 ‘보육난민’ 문제가 골치였다. 엔도 츠요시(遠藤剛) 나가레야마시 보육과장은 “여러 시민이 참가하는 마을 만들기 협의회 회의 중 ‘버스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주면 어떠냐’란 이야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걸 계기로 역을 개설하는 것과 동시에 역 앞 대형 건물에 송영 보육스테이션을 만들게 됐다. 어린이집을 하는 다케다 원장이 위탁운영을 하는 식이었다. 2007년 7월의 일이었다.
나가레야마시는 이 시설을 아이가 스스로 앉을 수 있고, 가방을 메거나 걸을 수 있는 만 1세 이상이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케다 원장은 “아이가 너무 어려 혼자 앉을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시설 이용을 위해 대기하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가고 데려오는 과정에도 정성을 쏟았다. 건물 입주자들은 아이들의 버스 이용 시간엔 주차장 이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도로변에서 차에 타고 내리는 일이 없도록 배려한 셈이다. 이 덕에 아이들은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걱정 없이 건물 주차장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전하게 보육시설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4월 현재 이곳의 버스 5대는 7개 코스로 나뉘어 24개 어린이집을 지금껏 무사고로 오가고 있다.
밤 9시까지 연장 보육도 한다. 저녁밥도 350엔(약 3400원)에 제공한다. 다케다 원장은 “퇴근해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하면 대부분 시간이 늦는 엄마 입장에선 아이 밥이 가장 걱정인데, 이 부분도 고려해 영양 균형을 맞춘 저녁밥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년간 늘어난 인구 4만명
도시의 변화는 진행형이다. 역 서쪽 출구 인근 이탈리아 음식점은 돌봄사업을 하는 오타카베이스와 손잡고 점심 저녁 시간을 제외하곤 초등학생 아이들을 맡아주는 서비스를 최근 시작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 돌봄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는 엄마들이 많다는 ‘초1의 벽’을 함께 넘어보자는 취지다. 이곳은 “영어를 가르쳐주거나 하진 않지만 함께 숙제나 자습, 보드게임을 하면서 자유롭게 아이들이 부모의 퇴근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가레야마는 대단하다』를 쓴 경제저널리스트 오니시 야스유키는 나가레야마시의 일본서도 손꼽히는 인구증가 성공 원인으로 보육스테이션 외에도 보육사 지원(처우 개선 월 4만3000엔· 집세 지원 최대 6만7000엔), 여성 창업 스쿨과 같은 창업 지원책이 주요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구증가로 부동산 자산가치도 크게 상승해 역에서 10분 정도 거리 토지가 3.3㎡에 110만엔(약 1090만원) 정도로 5년 전의 1.5배로 올랐다”고 설명했다.
나가레야마=김현예 특파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링거' 때문에 서세원 사망?…의사들 "넌센스" 말 나온 이유 | 중앙일보
- 제자 때리고 그 어머니 성추행…고교 운동부 코치에 벌금형 | 중앙일보
- “미군 철수, 인민 달래기용이니 이해를” 김대중이 증언한 김정일 [김대중 회고록] | 중앙일보
- "169명 고백하자" 해도 선 그었다…'돈봉투' 끌려가는 野, 왜 | 중앙일보
- 한국 망칠 '의대 블랙홀'…시골학원에도 '초등 의대반' 터졌다 | 중앙일보
- 앗, 콧물에 피가…"오전 환기도 자제" 미친 날씨에 독해진 이것 | 중앙일보
- "연인이냐" 말도 나왔다…사라진 국왕 뒤엔 22살 연하 킥복서 | 중앙일보
- "싸구려 도시락 먹는 한국 관광객 기이해" 日극우인사 또 논란 | 중앙일보
- 알바가 실 꿰고, 간호조무사 봉합…그 병원 아찔한 600번 수술대 [사건추적] | 중앙일보
- 前 KBS 통역사 고백 "정명석 추행 보고도 문제로 인식 못 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