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미국 수퍼 ‘트조’엔 특별한 게 있다

2023. 4. 2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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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미국에 살면서 특이하다고 생각한 곳이 있다. 트레이더 조(Trader Joe’s) 수퍼마켓이다. 한인 사이에서 ‘트조’라고 불리는 트레이더 조는 캘리포니아 1호점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560여 매장이 있다. 전국적 체인이지만 동네 단골 마트를 지향하는 트조는 직원들의 밝은 표정과 친근한 태도로 매번 나를 즐겁게 한다.

이를테면 계산대 직원은 “How are you doing?” 인사로 시작해서 이 제품은 내가 사용해보니 이런 게 좋더라, 나는 이런 레시피를 사용하는데 당신은 어떠냐, 등등 고객과 공감 어린 대화를 나눈다.

최근 ‘실밸리 몸체험’이라는 개인 프로젝트의 하나로 집 근처 트조 매장에서 파트타임 근무를 시작했다. 밖에서 보았던 트조에서 ‘크루(트조에서 직원을 부르는 말)’로 일하면서 그 안을 들여다보니 감탄사가 터졌다. 그만큼 다른 곳에 적용할 시사점이 많았다.

「 “제품이 좋으면 돈은 따라온다”
정직원·임시직원 동등한 대우
매장내 협업과 소통 도드라져
챗GPT에는 없는 인간적 교감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첫째, 제품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16년 전 구글 근무를 시작할 때 창업자들이 강조했던 말이 있다. “제품을 만들 때 고객을 먼저 생각하라.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였다. 트조 근무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은 말도 비슷했다. “마케팅 필요 없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좋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트조 창업자의 철학이다.

다른 수퍼 체인들이 1만2000개 품목을 취급하는데 반해 트조는 4000개 제품만 엄선해서 판매한다. 80% 이상이 자체 브랜드다. 트조 브랜드 상품은 더 좋은 기름, 더 적은 소금,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 오리지널 브랜드 제품보다 더 선호된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또 트조는 판매자가 제안하는 입점 비용을 일체 거부한다. 대신 그 돈으로 제품 단가를 낮춰 달라고 한다. 단위 면적당 매출액이 가장 높은 수퍼 체인이 된 비결이다. 고객 만족도에서도 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 고객 만족은 직원 만족부터 시작된다. 트조는 동종업계 최고의 시급을 준다. 주당 근무시간과 시간대를 직원들이 고를 수 있다. 직원 20% 할인, 매주 신제품 무료 제공, 무료 헬스클럽 등등, 대우가 좋다. 월급을 받는 정직원과 시급을 받는 크루들은 모두 동일하게 존중받는다. 크루들 간 협업이 원활할 수밖에 없다.

아르바이트 5일째였다. 창고에서 스파게티 소스 박스를 옮기다 놓쳐서 박스에 들어있는 모든 병이 깨졌다.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데, 크루 대여섯이 빗자루·걸레·티슈 등을 들고 뛰어왔다. 그들은 먼저 내가 안전한지를 확인한 뒤 청소를 시작했다. 3분이 채 안 걸려 창고 바닥이 깨끗해졌다. “이제야 트조 진짜 직원이 된 거다. 뭔가 깨지 않고는 진정한 트조 직원이 될 수 없다” “나는 블루베리 팩을 떨어뜨려 블루베리가 온 매장을 뒤덮었다. 너는 창고에서 깼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라며 내 마음을 도닥여줬다.

셋째, 창의적인 기업문화다. 예컨대 트조에만 있는 것이 있다. 계산대에 걸려 있는 작은 종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 직원들은 그 종을 두드린다. 가격 바코드가 안 붙어 있을 때 종을 두 번 두드리면 근처에 있던 크루가 달려와서 해결해준다. 매장 계산대가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있는 다른 수퍼체인과는 달리 트조에선 두 계산대가 쌍을 이루고 있다. 캐셔 둘이 한 공간에서 등을 대고 계산대를 운영한다. 한 명이 좀 더 바쁘면 다른 한 명이 뒤돌아서서 도와줄 수 있다. 장바구니에 물건 넣기, 상품 스캔하기 등을 거들어준다. 서로 쉽게 돕고 도움받는 시스템이다.

넷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성이다. 트조는 재활용 쇼핑백이 드물었던 1970년대 가장 먼저 재활용 장바구니백을 도입했고, 고객에도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고객 열 명 중 예닐곱이 재활용백을 쓴다. 또 창업 초기부터 팔기는 어렵지만 상태가 좋은 제품을 선별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준다. 아주 작은 흠이 있는 제품은 절대 팔지 않는다. “너 이거 돈 주고 살 거야?”라는 물음에 “아니다”라고 대답하면 바로 내린다. 당장의 수익을 생각하면 아깝겠지만 해당 제품이 형편이 안 좋은 이웃에게 돌아가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대세인 시대다. 모임에선 챗GPT나 생성AI 등을 언급하려면 만원을 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AI가 시나 소설을 쓰고, 발표 자료를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또 작곡까지 한다. 미래에 내 직업이 과연 남아있을까 하는 자조적인 얘기도 한다.

이번에 트조 몸체험을 하면서 “트조는 사랑이죠”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이유를 알게 됐다. 같이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공감대와 인간적 교감은 AI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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