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회의원이 스스로 쓸모없다 하나...의석 늘리고 표만큼 나누자 [류호정이 소리내다]
“비례대표 중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류호정입니다.”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렇게 발언을 시작했다. 모름지기 국회란 판ㆍ검사나 변호사, 의사 또는 학자 출신의 중ㆍ장년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그곳에 ‘여성-청년-비례대표’ 국회의원은 그 자체로 얼마나 ‘부당한 존재’였을까. 국회의원 류호정의 의정 활동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향한 조롱과 멸시를 알기에 그렇게 발언을 시작했다.
더 잘해야 했고, 더 당당해야 했다. 전문직이 아닌 20대 여성이 국회의원까지 돼버린 일종의 ‘사고’는 비례대표제와 할당제 덕분에 일어났고, 그 제도의 취지가 내 어깨에 고스란히 얹혔기 때문이다. 나는 ‘소수자와 약자의 대표’를 위해 그 제도들이 도입됐다고 배웠다. 그리고 온전히 그 덕분에 내가 국회에 있음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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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제 덕에 탄생한 돌연변이 의원
나는 다시 소리낸다. 평균 연령 만 55세, 80% 이상이 전문직 중산층 남성인 국회에서 나는 그야말로 돌연변이다. 그 잘못된 평균에서 가장 멀다. 그런 류호정이 만든 사건 몇 가지가 있었다. 성공한 아재들의 유니폼, 어두운색 정장에 넥타이 대신 일하기 편한 원피스로 옷차림한 국회의원이 나타났다. 일상에서 원피스와 청바지를 즐겨 입는 그 시민집단을 대표하는 의원이 등장했다고 하면 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걸 보여줄 작정이었다. 대기업 무서운 줄 모르는 국회의원이 하나 더 생겼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반칙을 공론화하고, 끝내 시정했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일한 적이 없고, 산업 발전의 역군도 아니었으므로 ‘좌우지간 글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일하는 시민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고, 그게 바로 국익이라는 국회의원도 생겼다. 포괄임금제 금지법안 등 ‘노동권 보장’을 위한 수많은 노동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일부는 성과도 있었다. 여느 20∼30대처럼 문신에 대한 편견이 없으니 타투 시술을 불법으로 해석하는 대법원이 황당했던 그 국회의원은 ‘타투 합법화’를 위해 일했다. 국회 잔디밭에서 등 파인 드레스를 입고, 몸에 붙인 타투를 전시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이 세계 유일의 타투 불법 국가임을 알릴 수 있었다. 20대의 80%,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타투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의 결과도 끌어냈다.
내가 소수 정당의 공천을 받아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당선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국가가 정한 여성 할당에다 정의당이 정한 청년 할당을 더 해서 겨우 이 자리에 섰다. 그래서 비례대표 중의 비례대표다. 이런 류호정이 볼 때 정치라는 비즈니스는 공정하지 못하다. 어떤 시장이 있다 치자. 그 시장에는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기업이 둘 뿐이다. 3등, 4등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1등과 2등이 ‘담합’한다. 가격은 맞추고, 서비스 경쟁만 하는 식으로 공생한다. 제품의 질은 떨어지고, 소비자의 불만족은 높아진다.
독과점식 선거제도, 정책 경쟁 없어져
한국 정치라는 시장이 그렇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언제나 90% 가까운 의석을 나눠 가진다. 정권을 잡으면 집권당이고, 뺏겨도 제1야당이 되는 제도를 만들고, 누렸다. 다른 시장에는 법을 만들어 독과점을 규제하면서, 정치 시장에는 독과점을 강화해왔다. 당연히 정책의 질은 떨어지고, 유권자의 불만족은 높아진다. 정치인들의 공천 경쟁만 있고, 정당 간의 정책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위 그래픽은 제20대, 제21대 국회의 실제 의석 배분과 정당 득표율에 따른 의석 배분의 차이다. 국민의 명령은 오른쪽인데, 현실은 왼쪽이다. 우리 주권자는 이미 다당제를 명령했다. 정국의 주도권은 1당과 2당이 갖되, 3당과 4당이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고 다자간 ‘경쟁’을 하라 명령했다.
나는 주권자의 의사를 선거제도가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정상화하자는 게 비례성 강화 내지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비례성 강화라는 “받은 만큼 나눠주자”는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다. 아울러 “각 정당이 받은 표만큼 의석을 배분받자”라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계산이 어렵다는 반론에 재반론한다. 아주 쉽다. 원칙은 ‘국민이 찍은 표만큼 의석을 나누는’ 것이다. 40%를 받은 정당은 300 곱하기 0.4를, 10%를 받은 정당은 300 곱하기 0.1을 해서 의석을 받는 방식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필연적으로 ‘비례대표정수 확대’를 요구한다.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지역구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1당과 2당의 기득권이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의원정수 확대이고, 의원 세비 감액이다. 정의당의 지역구 240명, 비례대표 120명 제안은 그렇게 나왔다.
비례대표 확대하고 전체 의원 수 늘려야
나는 의정 활동을 하는 내내 비대한 행정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의원의 숫자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쓸모를 증명하지 못한 다선 의원 몇몇을 빼면 300명이 채 되지 않는 의원이 수백조원의 예산·결산 심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인지 늘 불안했다. 또한 의원정수 확대로 개별 의원의 권력을 축소하고, 시민의 이익에 복무하는 의원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정치가 싫고, 국회가 밉겠지만 주권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선거제도가 나랑 뭔 상관인데?”라고 하기보다는 “저놈의 정치인들을 제대로 심판하려면 어떤 룰을 도입해야 하나”를 고민해주셨으면 한다. 그 룰이 정의당은 물론이고 류호정에게 불리해도 괜찮다. 주권자인 국민이 찍은 표만큼 의석을 나누는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니라면 다른 대안을 찾아 주셔도 좋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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