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미래다] “IB는 교과서의 생각, 저자의 생각을 넘어 ‘내 생각’을 기르는 교육”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 인터뷰
학습자가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IB 교육은 암기식 비중이 큰 국내 공교육의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최근 도입을 검토하는 학교가 느는 배경이다. 국내 IB 교육 전문가인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사진) 소장에게서 한국어 IB 도입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Q : 다수 시도교육청에서 IB 도입을 확정 또는 추진 중인데, 외국서 개발된 IB가 국내 교육에 적합한가.
A : “IB는 1968년 유엔 주재원 자녀들이 국적에 상관없이 양질의 교육을 받고 전 세계 어느 대학에서도 인정받도록 개발됐다. 초기 영어·불어·스페인어로 개발됐고, 2002년 독일어로, 2013년 일본어로, 2019년에 한국어로 번역됐다. 글로벌 역량을 기르지만, 교과 소재는 각국의 국가 교육과정과 충돌하지 않게 구조화돼 있어 정해진 교과서 없이 각 국가의 다양한 교과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하나의 교과서만 숙지하면 되는 평가 체제가 아니므로 IB 수업에선 다양한 교재와 자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IB 도입은 외국 콘텐트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콘텐트를 기반으로 우리 국가 교육과정의 목표 역량을 더 충실하게 길러줄 수 있는 평가 패러다임을 도입하는 것이다.”
Q : IB가 말하는 ‘생각을 꺼내는 교육’이 무슨 의미인가.
A : “IB의 대입 시험 문제를 보면 교과 지식을 얼마나 잘 집어넣었는지를 측정하는 객관식 선다형이 아니라 학생 각자의 관점과 논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꺼낼 수 있는지를 논술로 평가한다. 우리나라 수능은 ‘다음 중 가장 적절한 것은’과 같은 객관식 형태의 질문으로 누군가가 정해 놓은 정답을 맞히는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꺼내는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교과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보다 교과 지식을 바탕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단순히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학생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꺼내는 교육’으로 평가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한다.”
Q : 어떤 점이 국내 수업 방식과 다른가.
A : “수업 방식의 한 장면만으로 IB 수업을 단정할 수 없다. 현행 공교육 수업에서도 토론, 프로젝트, 조별 협동학습 등이 있고, IB 수업에서도 강의와 설명이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어떤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것인지가 다르다. 각 수업 방식은 교과 지식을 잘 ‘집어넣기’ 위해서 사용될 수도 있고, 학생 각자의 생각을 잘 ‘꺼내는’ 교육을 위해 활용될 수도 있다. 즉 현재 공교육의 수행평가에서도 여러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 수행평가에서 예민하게 변별되지 않고 최종 변별이 객관식 선다형의 기말고사에서 이뤄지는 경우라면 학생들에게는 각자의 생각을 꺼내는 역량이 제대로 길러지기 어렵다.”
Q : 기존 한국의 논술과는 무엇이 다른가.
A : “저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도 다뤘지만, 서울대 학부 학생들은 리포트나 논술 시험에서 자기 생각을 포기하고 교수의 관점을 따를수록 학점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관식 논술 시험임에도 사실상 정답이 정해져 있는 객관식의 또 다른 형태였다. 우리나라 대입 논술 전형 역시 대학마다 모범 답안을 제시함으로써 학생 각자의 발산적 사고를 제한한다. IB 평가에서는 각자가 어떤 관점을 가졌는지보다 그것을 얼마나 논리정연하게, 설득력 있게 기술했는지를 평가한다. 논술이라고 모두 동일하게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채점 기준을 가졌는지가 관건이다.”
Q : 한국어 IB 도입의 의의는.
A : “IB의 한국어화 및 공교육 시범 도입은 우리 근대 교육사의 역사적 사건이다. IB는 교과서의 생각, 저자의 생각을 넘어 ‘내 생각’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다. 객관식, 상대평가 일색의 대입 시험만 있던 한국 공교육에 모든 과목 논·서술 평가만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사례가 처음 도입되는 것이다. IB 한국어화는 단순히 시험문제 번역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교원 연수, 채점관 양성, 엄정한 평가 윤리 및 문화까지 전반적인 교육 패러다임의 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시대적 역량을 기르면서도 절반 이상 엎드려 자는 우리나라 공교육 교실을 깨우고 아이들의 눈빛을 살아나게 하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김재학 중앙일보M&P 기자 kim.jaih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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