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굿즈] 특별한 315명 아이들 위한 가장 특별한 분유

문수정 2023. 4. 2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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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분유 25년’ 매일유업의 선행
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요? 소비만능시대라지만 물건을 살 때부터 '버릴 순간'을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품 생산과 판매에서부터 고민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굿굿즈]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과 제품을 소개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노력에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정선희 희귀질환협회 회장, 정지아 매일아시아모유연구소장, 김세한 선임연구원, 윤정연 매니저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매일유업 본사 1층에서 매일유업이 315명의 선천성대사이상 질환 아동청소년을 위해 만드는 특수분유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분유 한 통 가격은 1만7000원(1단계), 2만원이다. 매일유업이 손실을 감수하며 만들면 정부가 만 20세 미만 환아에게는 지원을 해준다. 20세 이상 성인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지원이 급감한다. 이한형 기자

우리나라엔 315명의 특별한 아이들이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많은 부분에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음식에서만큼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페닐케톤뇨증(PKU)과 같은 희소질환인 선천성대사이상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315명뿐인 이 아이들은 어떻게 조심스러운 식이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집에서 부모가 적당히 챙겨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선천성대사이상은 단백질의 구성단위인 아미노산 일부를 몸에서 소화시키지 못하는 질환이다. 건강하게 자라려면 특정 아미노산을 제거하거나 보충한 특수 음식을 반드시 섭취해야 한다.

주방에서 닭고기 요리를 하면서 특정한 아미노산만을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험실을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다. 실험실의 전문가들이 만든 특수한 식품이 필요하다. 그래서 식품기업이 나서야 하고, 우리나라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곳은 매일유업뿐이다.

매일유업이 이렇게 특수분유를 만들기 시작한 건 1999년이었다. 선천성대사이상 환아를 위한 특수분유 생산 25년째를 맞아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매일유업 본사에서 정지아 매일아시아모유연구소장(소아소화기영양전문의), 김세한 선임연구원, 윤정연 매니저, 정선희 희귀질환협회 회장을 만났다. 아이를 살리는 ‘좋은 제품(굿굿즈)’, 특수분유 제작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9년 매일유업에 입사해 15년째 연구 중인 정 소장의 말이다.


“엄밀히 시작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고(故) 김복용 선대회장께서 해외 분유업체와의 기술제휴 당시 선천성 대사이상 분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 ‘돈은 되지 않는’ 사업이 시작됐어요. 아픈 아이들을 위해 분유를 만드는 기업이라니,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매일유업에 입사한 계기가 됐습니다.”(정지아)

매일유업은 선천성대사이상 질환아를 위해 1년에 두 차례 공장 가동을 멈춘다. 혹시라도 들어가면 안 되는 아미노산이 포함될까 설비 세척에만 24시간을 들인다. 그리고 다시 라인을 정비하고 특수분유를 생산한다. 꼬박 이틀에 걸쳐서 4만캔을 만들 수 있는 설비에서 4000~6000개만을 만들어낸다. 원료를 해외에서 구매하는 과정에서도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매일유업은 매년 국내의 환아 수만큼 제품을 만들어나가며 분유의 종류도 조금씩 늘렸다. 현재 생산되는 특수분유는 모두 8종 12개 제품이다. 4종에 대해서는 2단계(4세 이후) 제품까지 나온다. 통칭 ‘특수분유’라고 부르니 영유아만을 위한 식품일 것 같지만 성인 환자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다.

PKU 환아를 키우면서 희귀질환협회 활동을 하고 있는 정선희 회장은 환아가족 모두 매일유업의 열심에 고마워한다고 전했다. “일찍부터 특수분유를 먹으면서 식이관리를 시작한 아이들은 장애 없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요. 열세 살 난 제 아이는 분유 한 통으로 이틀을 먹거든요. 매일유업이 아낌없이 만들어주고, 정부 지원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에요.”

요즘 특수분유를 만들면서 가장 고심하는 것은 ‘맛’이다. 아미노산을 극대화하다 보니 맛이 없다. 김세한 연구원은 “(아미노산을 원료로 하는) 조미료를 아주 많이 먹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단백질 음료를 즐기는 성인이라면 가장 맛없는 프로틴 음료를 떠올리면 될 듯하다.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맛’이에요. 아이들이 먹기 좋은 맛을 구현하고 싶은데 제한해야 하는 게 많아서 쉽지는 않아요. 원래의 맛을 최대한 가리고 딸기, 초코 같은 좋은 맛을 더하려고 하는데도 간단찮은 일입니다. 계속 관심 갖고 연구하고 있어요.”(김세한 연구원)

맛과 함께 도전하고 있는 영역은 종류를 늘리는 것이다. 매년 8종 12개 제품을 생산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네슬레, 애보트, 미드존슨 등 글로벌 기업이 감당하고 있다. 환아 가족들은 언제나 고마워하지만, 연구원들은 ‘모두에게 충분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환자 가족들을 만나고 오면 마음이 좀 급해져요. ‘질병군이 다양하니까 분유도 종류가 늘어야 할 텐데.’ ‘4세 이상 아동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도 먹을 수 있는 보충제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거죠.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늘었고, 조금씩 늘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정지아 소장)

매일유업은 특수분유 지원뿐 아니라 선천성대사이상질환 가족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도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유업이 2001년부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매년 진행해오던 ‘PKU 가족캠프’는 환아 가족이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다. 서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긴 설명 없이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데 모이는 자리이니만큼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PKU캠프예요. 각자 개발한 레시피를 공유하면서 정보도 얻고 마음도 나눌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식당에 둘러앉아서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몰라요. ‘왜 그걸 못 먹느냐’는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뭔지 살펴볼 필요도 없어요. 무엇보다 외식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정선희 회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도 충만하게 해준다. 정 소장처럼 처음부터 특수분유에 관심을 갖고 매일유업에 입사한 경우도 있지만, 관련 업무를 하면서 열정이 생기기도 한다. 김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선천성 분유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며 “저희가 하는 일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고, 그래서 선천성대사이상이라는 질환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익숙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정연 매니저도 ‘보람’을 말했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부담 없이 생활하려면 질환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하는 것 같아요. 아직 부족한 느낌이라 인식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하려고 합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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