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늘어나는 무당층…원인은 뻔하다 [신율의 정치 읽기]

2023. 4. 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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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층은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질까? 일각에서는, 요사이 무당층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런 추세가 정치 혐오의 표현이고 그래서 정치적 위험 신호라고 해석한다.

요사이 부쩍 무당층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 무당층은 큰 변화 없는 비교적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무당층의 존재가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다. 무당층은 상당 수준의 합리성을 보여주는 집단이다. 정치권에서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이들은 그 사안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이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히려 정치적 위험 신호는, 무당층의 증가가 아니라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을 거의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 증가다.

강성 지지층은 정치를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파악한다. 또 상대 잘못은 맹비난하고 확대 해석하면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측의 잘못은 관대하게 취급하거나 ‘음모’라고 주장하는 특징을 가진다. 한마디로 진보나 보수 어느 쪽 강성 지지층이 증가하든, 이들 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정치에서의 합리성이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무당층은 정치의 합리성 측면에서 귀중한 존재다. 동시에 극단적 세력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 지대 역할을 하는 계층이다.

앞서 언급했듯 무당층 비율은 비교적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세대별로 분석해보면, 2030세대에서 유독 무당층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특정 세대에서 무당층이 급증하는 것은 좋은 신호가 아니다. 젊은 세대 상당수가 무당층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불만의 표현이다. 당연히 사회적 불안이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권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국민의힘이 ‘천원의 아침밥’을 들고나와 이를 전국 대학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천원의 아침밥’은 본래 자신들 아이디어라며 민주당 역시 ‘대학가 아침밥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천원의 아침밥’은 문제가 있는 정책이다.

첫째, 대학생에게 천원으로 아침밥을 제공하는 것은 좋지만, 이는 대학에 진학한 젊은이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30% 정도의 2030 젊은이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아, 오히려 복지의 사각지대만 양산한다. ‘대학생’이라는 특정 집단을 타깃으로 하는 정책은, 정책의 보편성 차원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젊은 노동자가 사망했을 당시, 그의 가방 속에서 발견된 사발면이 상징했던, 144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 노동자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여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생색은 정치권이 내고 있지만 대학생에게 천원으로 아침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대학당국 혹은 대학 동문회 지원이 필수다. 즉, 정치권이 생색을 내고 있지만, 실제 이런 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는 따로 있다는 얘기다.

셋째, 대학생이 혜택을 받는 것은 맞지만, 정작 대학생들은 이런 정책이 ‘선심성 정책’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진다.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급조한 정책’이라고도 생각한다. 예비 타당성 조사 기준은 상향 조정해 미래 세대에게 채무의 짐은 잔뜩 부담하게 하고, 아침밥은 천원에 주겠다는 여야 정치권의 ‘협치’에 속아 넘어갈 젊은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비 타당성 기준 상향 조정이 보류됐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가 많은 정책을 통해 젊은 층을 공략하려 한다는 것은, 무당층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 부족을 그대로 보여준다.

무당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합리성을 보여줘야 한다. 자기편에서 발생한 사건은 ‘정치적 음모’고, 상대방에서 발생한 사건은 ‘저질의 정치 범죄’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합리적인 젊은 유권자 마음을 사기 어렵다. 현재 정치권을 휩쓸고 있는 이른바 ‘이정근 게이트’에 대한 여야 접근을 보면, 과연 이들이 무당층을 공략할 마음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지난 3월 31일 하영재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당시, 민주당은 하영재 의원 관련 혐의는 매관매직에 관한 범죄 혐의로 질이 매우 안 좋은 범죄 혐의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대로 자당 의원에 대해 제기되는 혐의는 ‘정치 탄압’ ‘야당 탄압’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전 사무부총장 스마트폰 녹취 파일에서 지난 2021년 전당대회 당시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이 제기됐음에도 민주당은 이 역시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식 사과하고 검찰에 수사를 촉구한 점이다. 민주당이 이런 입장으로 선회한 이유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중첩된 사법 리스크’의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첩된 사법 리스크’란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와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녹취에서 비롯된 민주당 의원들 사법 리스크를 의미한다. 리스크가 중첩될 경우 상황은 매우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마치 물리학적으로 기존 파장에 새로운 파장이 가세했을 때, 파장이 더욱 커지는 이치와 같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민주당은 일단 두 개의 사법 리스크 중 하나에 빠르게 대처해 ‘파장이 중첩’되는 것을 피하려 했을 테다.

두 번째, 녹취가 포함하는 내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JTBC와 TV조선 등에서 보도된 녹취를 들어보면, 정황이 매우 수상하다. 당사자 중 한 명인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전 사무총장은 해당 녹취가 “다른 상황에서 다른 취지로 한 발언”이라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검사 출신인 같은 당 조응천 의원이 해당 녹취를 ‘짜깁기’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를 조작에 의한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세 번째, 이런 상황에서 계속 야당 탄압만 주장하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들 수 있다. 야당 탄압만 녹음기처럼 되뇌었다가는 여론이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국민의힘은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민주당을 ‘더넣어 돈봉투당’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한편 이런 국민의힘 모습 역시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도청 의혹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대처가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 잘못을 부각시켜 국면을 전환하려는 정략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공격이 거세질수록, 역설적으로 이번 수사 의미가 축소될 가능성마저 있다.

현재 정치권을 보면 ‘진짜 여론’을 읽는 데 미숙해 보인다. 이는 각 당이 강성 지지층 뜻을 좇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선거 승리의 키는 무당층이 갖고 있다. 따라서 무당층 지지를 얻어야 하고, 이들 무당층을 잡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강성 지지층에게 접근하는 전략인 ‘아전인수’식 자기중심적 주장을 하는 것은 오히려 무당층을 멀리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6호 (2023.04.26~2023.05.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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