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대한민국, 마약이 위험하다

최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 뿌려진 ‘마약 음료’ 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일당은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를 핑계로 성인 3명 이상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의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서 만든 음료를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학생들 부모에게 전화해서 마약 투약을 신고하겠다며 협박하여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현재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음지에 머물던 마약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이제는 대명천지에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퍼져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마약 청정국’으로 이름을 날리던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손쉽게 마약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마약 판매상들이 보통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마약을 뿌리고 있다 보니까 마약 접근성 자체가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마약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마약 투약 사건이 대중에게 빈번하게 노출되면서 대중의 마약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요즘 마약과 관련해 가장 떠들썩한 사건은 배우 유아인씨 사건이다. 유씨는 프로포폴, 대마초, 코카인, 케타민, 거기에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되는 졸피뎀까지 투약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돈스파이크씨가 여러 차례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는데, 검사가 형량이 약하는 이유로 불복해서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유씨 사건까지 터졌다. 유명 연예인들의 행위는 대중들에게 모방심리를 조장하게 되는데, 이런 모방심리는 마약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마저 쉽게 무너뜨린다.

정부는 수습이 어려워진 상황이 되어서야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검찰·경찰·관세청·교육부·식품의약품안전처·서울시가 유관기관 협의회를 열고,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또 청소년을 상대로 한 마약사범이 검거될 경우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고,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의 가중처벌 조항을 적용하는 등 무거운 형량을 구형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약 유통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특별법을 적용해 완전히 박탈하고, 향후 중형 선고를 위해 양형 강화도 추진한다고 한다.

하지만 마약에 있어서 엄벌주의가 능사가 아님은 지난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마약사범을 엄벌에 처해왔지만, 그 수가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왔지 않은가. 이제는 마약에 대한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

마약청과 약물법원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싱가포르, 태국 등에서 운영되고 있는 마약청은 수사는 물론 치료, 재활, 국제 협력 등 모든 과정을 전담하고, 부처 간 협력을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처벌 강화만으로는 재범률을 낮추지 못하자 약물법원을 설립했다. 약물법원은 판·검사와 변호사, 치료 제공자, 보호관찰관, 사례 관리자, 프로그램 조정관 등으로 구성돼서 상담, 치료, 약물검사, 보상, 제재, 사례 관리 등 재범 위험을 낮추기 위한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재범 방지를 위한 과정에 성실히 참여하면 형을 면해주거나 줄여줬는데, 그 결과 약물법원 참여자들의 재범률이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유용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위태로운 마약 상황은 우리에게 엄벌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