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원폭희생자 이름을 왜 일본 추도시설에 올리냐고요?
[박광홍 기자]
▲ 국립 히로시마 원폭 추도기념관에 제출한 신청서 함께 제출할 수 있는 사진도 없었고, 다수의 항목에 불명, 알 수 없음을 기재할 수 밖에 없었다. |
ⓒ 박광홍 |
지난 4월 8일, 나의 외조부의 형님 '충만'을 국립 히로시마 원폭사망자 추도평화기념관에 사망자로 등록 신청했다. 앞서 난 '유족으로부터 원폭사망자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접수 받고 있다'는 기념관의 안내문을 보고 한참을 망설였다.
1945년, 나의 외조부는 당시 국민학교 3학년생이셨다. 일본 본토에서 대학을 다녔던 할아버지의 형님 '충만'은 '학도출진'이라는 이름 아래 일본군에 징병되셨다고 했다. 충만이 배속된 곳은 '본토결전'의 핵심병력 중 하나인 제2총군이 있는 히로시마. 충만은 제주도의 본가에 히로시마 배속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충만의 연락은 영원히 끊겼다.
당시에 어린 나이였던 외조부는 당신의 형님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시지는 못했다. 형님의 사진 한 장도, 히로시마에서 제주도로 보냈다는 편지의 실물도 남아있지 않았다. 충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유일한 증거는, 그의 동생이 품었던 실낱 같은 기억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 유일한 증거조차 사라지게 됐다.
실증적 증거를 갖지 못한 상태였지만, 세 번째로 기념관을 방문했던 그 날, 용기를 내 신청서를 작성했다. 기념관은 등록 절차가 마무리되면 우편으로 결과를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감사 인사를 남기고 사무실을 나서면서도, 과연 등록이 정상적으로 가능할지 불안감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관련 기사: 저는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유족입니다).
▲ 국립 히로시마 원폭사망자 추도평화기념관으로부터의 편지 외종조부님에 관한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 닿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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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거처로 돌아와선 기념관의 연락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등록이 안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으니 실망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신청해주신 사망자 등록이 완료됐기에 보고드립니다. 제공해주신 사망자의 성함 등은 원폭사망자 추도기념관에서 영구히 보존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당 사업에 협력과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고인의 명복을 마음으로 빕니다."
그 다음 페이지엔 기념관에 등록돼 전시될 외종조부님의 정보가 기재돼 있었다. 영정사진란도 비어 있었고, 사망년월일을 비롯한 여러 항목에는 '불명'이라는 표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사망자 성명'만큼은 틀림없이 우리 할아버지의 형님이었다.
역사의 파도 속에서 흔적도 없이 스러지고 만 그분의 위패를, 다른 곳도 아니고 일본의 국립 추도시설에 마련했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형님께서도, 이 사실을 안다면 틀림없이 기뻐하시리라.
신청서를 작성한 직후에 <오마이뉴스>에 투고했던 기사엔 일부 부정적 댓글들도 달렸다. '원자폭탄 두 방으로는 부족했다'는 참담한 극언은 논외로 한다 해도, '일본의 국립추도 시설에 조상의 이름을 올리는 게 후손으로서 바람직한 일인가'라는 의문 등도 읽혔다. 이러한 댓글들을 접하고보니, 한일간 역사인식 문제가 거듭 화두로 떠오르며 악감정이 격화되는 가운데 인류의 보편적 가치마저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었다.
비참하게 죽어간 전몰자들을 기리는 과업에 현실 정치 문제가 장애로 작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유해는커녕 존재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외종조부님의 성함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단순히 한일간 역사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과 평화에 관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믿는다. 일본 국립 추도시설에 외종조부님의 성함을 올린 건 국가로서의 일본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행위가 아니라 역사에서 지워진 민초의 존재를 끌어올리는 과업의 일환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만주사변으로 시작돼 일본의 포츠담 선언 수락으로 끝을 맺은 '15년 전쟁'의 본질이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은 일본의 주류 역사학계에서도 분명하게 평가하고 있는 바다. '주권회복'과 '민족해방'에 대한 중국인들의 열망을 제국 일본은 무력으로 진압하고 타협을 거듭 거부하며 팽창을 강행했다.
일본의 노골적인 중국침략은 아시아에서 제국 일본의 패권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었던 '미영 협조노선'의 파국으로 이어졌다. 제국 일본은 침략팽창을 그만두고 미영 협조노선으로 복귀하라는 미국의 강경한 요구에 진주만 공습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원자폭탄 투하는 이 무모한 전쟁의 산물이었다.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전몰자를 추모하는 것
더 이상의 정상적인 작전수행이 불가한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항복을 거부하다 원자폭탄 투하를 초래한 당시 제국 지도부의 책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제국 일본의 전쟁 책임을 성토하는 것과 보편적 견지에서 전몰자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니, 국경과 민족을 초월해 보편적 가치 아래서 연대하는 것이야 말로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상술했듯 원폭투하의 주체였던 미국은 한때 제국 일본이 아시아의 패권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존재였다. 다소 거칠게 논하자면, 파시즘이나 군국주의를 분쇄하고 아시아에 자유를 선사하는 것은 애당초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미국은 일본이 기존의 미영 협조노선에서 이탈하느냐의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뿐이다. 일본의 미영 협조노선이 유지되는 한 미국은 일본과 거래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제국의 전쟁수행에 필요한 지지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 포츠담 회담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 등이 악수하고 있다. 독일의 패전 이후 이미 동서 진영의 대립은 가시화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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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현시, 즉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과시하는 것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의 패권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소련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원자폭탄 투하에는 제국 일본 지도부의 무책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미국의 정략적 의도도 작용했다.
"포츠담 선언은 대독전 승리와 3년 8개월에 걸친 대일전의 경과를 밟아, 41년 11월 26일의 헐 노트(태평양전쟁 개전 직전 미국의 대일최후통첩.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진주만 공습을 강행한다)의 취지를 발전시켜 반팽창주의/반파시즘의 이념으로 뭉친 연합국 국가들의 공통지향을 전면적/최종적으로 표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포츠담 선언의 제12항은 원안에 있던 '(전후) 일본정부에 현재의 황통이 이어지는 입헌군주제를 포함한다'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는 국체수호(천황제 유지)를 항전/종전의 지상과제로 삼았던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즉시수락하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제12항의 변경에는,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을 끝내려 한 트루먼의 정략과 미 제국주의의 전략이 반영되었다.
江口圭一、2020,『十五年戦争小史』,ちくま学芸文庫、313p(괄호 안 문구는 필자 주)
무결하고 정의로운 전쟁이란 있을 수 없으며, 국적에 따라 선과 악을 나누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흑백으로 평가가 불가능한 영역에서, 우리는 결국 '인간으로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사고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핵무기가 초래하는 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등에 대해서는 그 어떤 문구를 동원해도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 히로시마에서 피폭자를 위로하는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원폭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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