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도, MT도 득실득실..."취준 보다 낭만" 고학번 돌아온 이유
“요즘 학교에서 하는 오프라인 행사는 무조건 선착순 모집이에요. 50명까지 참여할 수 있는 타 학교와 교류 행사는 1시간 반 만에 마감되더라고요. 예전과 달라졌어요”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서예원(21)씨는 몇 년 만에 확 바뀐 캠퍼스 풍경이 낯설기만 하다. MT나 OT와 같은 학과 행사는 한동안 새내기(대학교 1학년 학생)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이젠 옛말이 됐다. 서씨는 “요즘은 고학번들이 더 열심히 참여한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에 쫓겨 학교에 등을 돌렸던 고학번들이 캠퍼스로 돌아오고 있다. 5월 축제를 앞둔 서울 시내 대학들에서는 최근 몇년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1ㆍ2학년을 보낸 20학번과 21학번 학생들, 소위 ‘코로나 학번’들이 적극 가세하며 어느 때보다 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취업난이 지속되며 고학년은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학내 활동에 소홀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올해는 늦게라도 대학 생활을 즐기려는 코로나 학번들이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다음달 22일부터 5일간 축제를 여는 중앙대학교에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고학번과 신입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행사를 기획했는데, 고학번 참가자 모집이 조기 마감됐다. 중앙대학교 축제기획단 관계자는 “생각보다 고학번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조준범(25) 성균관대 학생회장도 “올해는 축제 뿐 아니라 과 활동이나 전반적인 학내 행사 모두 코로나 학번들의 참여도가 높다”며 “3월에 진행한 ‘금잔디 문화제’에서 선착순 200명에게 굿즈를 나눠주며 중복 지급을 막기 위해 학번을 조사했는데, 신입생만큼이나 3~4학년이 많았다. 생소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도 비슷하다. 고려대학교 관계자는 “만우절(4월 1일) 날 학내 광장에 같이 모여 자장면을 먹는 작은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참가자가 너무 많아 배달 오토바이들이 여기저기서 손님을 찾고 난리가 났다”며 “요즘은 작은 오프라인 행사만 열어도 학생들이 바글바글하다. 그만큼 소속 욕구에 목 마른 세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임예영(22)씨는 “1·2학년 때는 마스크 착용 의무나 인원 제한 때문에 축제 분위기를 느낄 기회도 없었는데, 이번에 그런 제한 없이 다 같이 모여 축제를 즐길 수 있어서 의미가 큰 것 같다”며 “주변 친구들 대부분 1·2학년 때 못 즐겼던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즐기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임씨를 비롯해 적지 않은 3학년 학생들이 MT나 입실렌티(고려대학교 봄 응원축제)에 적극 참여하는 분위기다. 그는 “코로나 때 대학 생활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며 휴학한 친구들을 보면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휴학 안 하게 후회된다. 중앙광장에서 자장면을 먹는 신입생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취업에 대한 달라진 시각이 ‘캠퍼스의 낭만’에 대한 욕구가 커진 배경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일률적인 스펙쌓기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효용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학년 때부터 스펙 쌓고 취업 준비한다며 교내 행사에 발도 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반면 요즘은 자신만의 적성을 찾고자 하는 학생도 늘었고 대기업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 같은 것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도 커지며 취업 준비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여기에 코로나까지 겹치며 한동안 억눌리다 보니 다시 대학 생활의 낭만을 찾으려는 욕구가 커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취업 준비를 하는 이모(26) 씨 역시 ‘대기업 취준’에만 매달렸던 대학 생활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 명문으로 불리는 대학을 나온 이과생도 한둘이 아닌데, 흔한 스펙만 가지고 취업이 될 거란 생각은 버렸다”며 “요즘 기업들은 자기소개서나 면접에 전공이나 직무 관련 적성도 보지만, 학생이 공부 말고 어떤 걸 했는지도 본다. 노래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가 있는데 학교 다닐 때는 시간 낭비 아닌지 고민했지만 나중에 그 경험을 자소서에 잘 써먹더라”고 말했다.
한편 대학들은 이런 분위기에 맞춰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늘리는 등 축제 준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이태원 참사 이후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만큼, 성균관대 등 일부 대학은 예년보다 더 넓은 장소로 축제 무대를 옮기거나 관할 경찰서와 협의를 통해 인파 통제 방안 등을 협의 중이다.
신혜연, 김민정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링거' 때문에 서세원 사망?…의사들 "넌센스" 말 나온 이유 | 중앙일보
- 제자 때리고 그 어머니 성추행…고교 운동부 코치에 벌금형 | 중앙일보
- “미군 철수, 인민 달래기용이니 이해를” 김대중이 증언한 김정일 [김대중 회고록] | 중앙일보
- "169명 고백하자" 해도 선 그었다…'돈봉투' 끌려가는 野, 왜 | 중앙일보
- 한국 망칠 '의대 블랙홀'…시골학원에도 '초등 의대반' 터졌다 | 중앙일보
- 앗, 콧물에 피가…"오전 환기도 자제" 미친 날씨에 독해진 이것 | 중앙일보
- "연인이냐" 말도 나왔다…사라진 국왕 뒤엔 22살 연하 킥복서 | 중앙일보
- "싸구려 도시락 먹는 한국 관광객 기이해" 日극우인사 또 논란 | 중앙일보
- 알바가 실 꿰고, 간호조무사 봉합…그 병원 아찔한 600번 수술대 [사건추적] | 중앙일보
- 前 KBS 통역사 고백 "정명석 추행 보고도 문제로 인식 못 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