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회담 앞둔 中 외교부 ‘강경’ 유지…관영매체 동원해 압박
23일 중국 외교부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해협 발언과 관련해 정재호 주중국 대사에게 항의한 내용을 상세히 공개하며 ‘압박’을 이어갔다. 관영 매체 사설을 통해선 한국 외교의 ‘국격’까지 거론하며 거친 공세를 펼쳤다. 오는 2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대만 문제가 지난 2021년과 22년 공동성명 수준 이상 언급되지 않게 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중국 외교부는 쑨웨이둥(孫衛東)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지난 20일 정재호 대사에게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며 발언 내용을 23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앞서 왕원빈(汪文斌) 외교부 대변인이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외교 경로를 통한 항의를 뜻하는 ‘엄정한 교섭’을 한국에 제기했다는 사실만 밝혔을 뿐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쑨 부부장은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 속 대만 발언을 언급한 뒤 “이 발언은 완전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중국 측은 엄중한 우려와 강한 불만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의 내정이며 중국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라며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 자신의 일로 어떠한 외부 세력의 개입과 간섭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한국 지도자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대만 문제를 한반도 문제와 비교했다”며 “북한과 한국은 모두 유엔에 가입한 주권국가로 한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는 성질과 경위가 전혀 달라 근본적으로 비교 가능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중·한 수교 공동성명 정신을 확실히 준수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하고, 대만 문제에서 말과 행동을 삼갈 것을 정중히 촉구(敦促)한다”고 덧붙였다.
쑨 부부장의 발언을 길게 열거한 중국은 정 대사의 발언은 단지 한 문장만 공개했다. “한국은 일관되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이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 했다면서다. 쑨 부부장과 정 대사의 통화는 지난 20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서울 외교부 청사로 초치된 뒤 한 시간 반쯤 지나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관영 매체도 공세에 동참했다. 인민일보 계열의 환구시보는 23일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이 조각났다”는 사설을 내고 “윤석열 정부의 이번 대만 발언은 중·한 양국이 1992년 수교한 이후 한국의 가장 악랄한 표현”이라며 “한국 외교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부용치훼'(不容置喙·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표현을 동원해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한국 정부가 비판한 것에 대해 "이 발언이 어떻게 한국의 귀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이고, 어떻게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과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거론한 뒤 “워싱턴에서 잃어버린 '국격'과 외교적 자존심을 중국에 강요함으로써 만회할 생각인가”라고 비아냥거린 뒤 “한국 외교는 역사 공부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 시점에 있으며 미국에 대한 곱사병을 고쳐야 한다”며 주장했다. 한·미·일 공조를 겨냥한 갈라치기로 풀이되는 발언이다.
중국의 관변 인플루언서들도 포털 뉴스에 선을 넘는 표현을 쏟아냈다. 위챗(한국의 카카오페이지)의 공공계정 쥔미취안(軍迷圈)은 22일 “대만 유사(有事·사변)가 곧 일본 유사라고 말했던 두 명이 이미 서천(西天·저승)으로 갔다. 당신들도 살아있을 때 잘해라”는 막말을 올리며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와 최근 자위대 헬기 추락으로 숨진 일본의 사카모토 유이치 8사단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상하이 신민만보의 공식 SNS인 하이상커(海上客)는 22일 윤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음주운전은 위법이자 기소를 당할 수 있다”며 “정치가가 몽롱한 말을 내뱉고 입을 다물지 않는다면 후과는 상상보다 더 엄중할 것”이라는 협박성 글을 게재했다.
“한·미 공동성명 대비 ‘청중비용’ 관리 모습도”
다만 21일 왕원빈 대변인은 전날의 “말참견(置喙·치훼)”에 해당하는 표현은 생략한 채 한국에 “엄정한 교섭” 사실만 언급하는 등 직접적인 공세 수위는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강(秦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21일 상하이에서 열린 ‘란팅(藍廳)포럼’에서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玩火者, 必自焚)’”이라고 강경 발언을 언급하면서도 특정 국가는 지목하지 않았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국가 지도자가 외교정책에 실패할 경우 청중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청중비용’이 더 올라가지 않도록 메시지 제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23일 “정 대사가 쑨 부부장과의 통화에서 ‘최근 대만해협에서의 긴장 고조 상황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큰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 대사는 통화에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무례한 발언은 한중 간 상호 존중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는 점도 재차 전달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로이터 인터뷰 취지에 대해서도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을 언급한 것”이라는 기존 정부 입장을 전달했다. 외교부는 쑨 부부장이 이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윤 대통령을 특정해 언급한 게 아니다”고 해명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와 더불어 외교부 당국자는 환구시보의 ‘국격 논평’에 대해선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며, 누구의 격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가소롭다”고 반박했다. 이어 “중국 언론의 악의적 기사는 중국을 국제사회로부터 더 멀어지게 할 뿐이며, 중국 정부의 입장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도 덧붙였다.
中 해군 건군절 맞아 대만해협 군사 긴장 지속
한편 대만 해협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계속됐다. 23일 해군 건군절을 맞은 군은 ‘교룡행동(蛟龍行動)’이란 제목의 선전 영상을 공개하고 6만톤급 항공모함 산둥(山東)함, 평면 갑판의 4만톤급 상륙공격함인 하이난(海南)함과 광시(廣西)함, 1만3000톤급 구축함인 우시(無錫)함의 실전 훈련 장면을 공개했다. 일본 방위성은 21일과 22일 각각 중국 전폭기 훙(轟)-6, 2대가 대만과 오키나와 사이의 미야코(宮古) 해협을 통과해 서태평양 해역을 왕복했다고 발표했다. 홍콩 동방일보는 프랑스 해군 호위함 프레리알함이 21일 일본 요코스카 항에 정박했다면서 앞서 지난 12일 대만해협을 통과한 뒤 서해에서 한국 군함과 연합훈련을 전개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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