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어린이와 놀이공간] 물, 모래…기본 재료로 가장 재미있게

문정임 2023. 4. 2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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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프레시디오 터널톱스 놀이터
프레시디오 터널톱스 놀이터 모래장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정임 기자


최근 미국에서 가장 핫한 놀이터를 꼽으라면 단연 프레시디오 터널톱스 놀이터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프레시디오 국립공원의 해안 요새에 자리했다.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절벽에 들어섰다는 이색적인 이유도 있지만 물과 모래, 나무와 돌 등 자연 재료를 가장 즐겁게 놀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해 눈길을 끈다. 지난해 7월 개장한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프레시디오 터널톱스를 찾았을 때 아이들은 물놀이대 주변에 몰려 있었다. 작은 손으로 수동 펌프를 힘껏 움직일 때마다 굵은 수도에선 맑은 물이 콸콸 쏟아졌다.

물줄기는 아이들이 공들여 쌓은 모래 댐을 금방 허물어뜨렸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신이나 소리를 질러댔다. 댐이 무너지고, 투명한 물이 물 놀이대를 따라 흐르자, 아이들은 바닥의 모래를 한 주먹씩 퍼 올려 물길을 막았다. 이를 지켜보던 한 아빠는 “아이들이 물놀이 구역을 가장 좋아한다”며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샌프란시스코)다운타운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이곳에 와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물놀이대가 넓게 제작돼 모래를 아무리 쌓아도 물길을 막지 않는다. 문정임 기자


아이들이 가장 재밌어하는 건 수동 펌프다. 힘을 이용해 물을 나오게 하는 놀이기구는 이곳에만 있다. 펌프는 아이들의 연령대를 고려해 두 가지 형태로 디자인했다. 손잡이를 위아래로 힘주어 움직이는 형태와 위에서 누르는 형태다. 물 놀이대의 높이도 그에 맞춰 제작했다.

물놀이가 재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물 놀이대의 폭이 넓다는 점이다. 물길이 넓으니 모래를 아무리 쌓아도 막힐 염려가 없다. 아이들은 그 위에서 모래로 무언가를 계속 만들었다.

한국의 놀이터에서는 물 놀이대 대부분이 막힘 현상으로 설치 후 곧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 공장에서 물 놀이대의 물 빠짐 공간을 세면대처럼 작게 만들어서 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이들이 물을 가지고 놀 때 모래나 돌, 낙엽 등 주변의 여러 재료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놀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 빠짐이 좋은 넓게 디자인했다.

물 놀이대 가장 위 칸은 시소처럼 가운데 부분만 고정했다. 아이들은 기울기를 보며 모래를 더 쌓거나 덜어냈다. 디자인 하나하나에 아이들이 더 즐겁게 놀 수 있는 장치를 담아낸 것이다.

돌로 만든 미끄럼틀. 길이가 짧아도 마찰이 작아 내려오는 속도감은 상당하다. 문정임 기자


좌우로 움직이는 그네. 여러 명이 함께 탈 수 있다. 문정임 기자


옆으로 가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미끄럼틀이 있다. 미끄럼틀 정상부까지 올라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한쪽은 돌계단을 만들었고, 다른 쪽은 큰 바위를 겹겹이 쌓았다. 아이들은 나이나 신체 능력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오른다. 미끄럼틀을 타는 재미에 높은 곳을 오르는 성취의 기쁨까지 계산한 설계다.

놀이터 안쪽에는 거대한 참나무가 누워 있다. 길이가 족히 20m를 넘고, 가장 굵은 부분의 둘레는 적어도 두 아름은 된다. 최대한 자연성을 살리기 위해 굵은 가지가 달려 있던 부분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참나무는 마치 놀이터를 지키는 거인처럼 보였다.

긴 통나무와 줄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놀이 구조물. 아이들은 몸 전체 근육을 활용해 매달리고 균형을 잡으면서 앞으로 이동한다. 문정임 기자



누운 나무를 처음 보는 아이도 있다. 평균대처럼 양손을 벌려 걷다가, 높은 가지를 만나면 몸을 밀착해 매달리며 아이들은 앞으로 계속 전진했다. 대형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미로 구조물, 좌우로 움직이는 그네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조약돌 쌓기 구역과 나뭇가지 등으로 만들기 작업을 하는 구역도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프레시디오 국립공원은 ‘요새’라는 뜻이다. 오래전 군사기지로 활용됐다. 군사시설을 축소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 1990년쯤 골든게이트 국립공원으로 편입됐다. 이후 미 의회가 연방 정부 출자기구인 프레시디오 트러스트를 설립해 공원 내부 토지와 건물 관리를 맡겼다.

프레시디오 트러스트는 공원 전체를 피크닉 시설과 산책로, 자연으로 이뤄진 가족 놀이터로 만들어 가기로 했다. 특히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자연 요소가 많은 놀이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설계팀은 자연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배치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터널톱스를 방문한 사람들은 자연 재료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각 놀이구역은 이동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구분돼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놀이에 몰두할 수 있다.

터널톱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의자가 많고 다양한 형태로 배치했다는 점이다. 이는 공원을 찾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채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면서 놀이터에 상상의 풍경을 얹어주는 역할을 한다. 깨끗한 화장실과 시내까지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 등 공원과 연계해 제공되는 서비스에도 시민들은 높은 만족도를 나타낸다.

터널톱스의 명성은 다른 도시로도 전해지고 있다. 동부 뉴저지에 사는 ‘놀이의 과학’ 저자 수전 G.솔로몬도 기자에게 꼭 가볼 것을 권했다. 그는 “물과 모래, 바위와 나무만으로도 아이들이 최고의 놀이터라고 손꼽는 곳”이라고 이곳을 소개했다.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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