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호갱님 된 줄···Y에게 말 건 그녀의 정체는?[개척자 비긴즈]
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열한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네 별명은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대한민국을 들썩이며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대사다. 주인공 우영우는 자신의 단짝 친구 최수연에게 ‘봄날의 햇살’이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대했던 친구의 행동들을 캡처해 둔 사진 설명하듯 별명의 이유까지 정확하게 밝히면서 말이다.
교회 개척의 순간과 정말 딱 맞닿아 있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11월의 어느 날. 몸도 춥고 마음은 유난히 더 추웠던 그 날, 목요 찬양예배 준비를 위해 이것저것 물품을 준비할 요량으로 대형 마트인 이케아로 향했다.
크고 작은 쇼룸을 채우고 있는 가구며 인테리어 물품들이 어찌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저런 공간에서 예배 드리고 성경공부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예배 처소 하나가 갈급한 유목민 개척자에겐 쇼룸 하나하나가 겟세마네 동산, 갈릴리 마을처럼 느껴졌다.
소비자는 주머니가 가벼울수록 입도 가벼워진다. 입이 무거울 새 없이 묻고 따져야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장 곳곳에서 만나는 여러 도움의 손길들을 통해 예배에 필요한 물건을 카트에 담았다. 별로 담은 것 같지도 않은데 스마트폰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흠칫 놀랄만한 숫자가 나왔다.
물건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카드를 발급해주는 창구 앞을 지나가는데 한 여사님이 날 부른다. ‘아... 호객행위는 딱 질색인데.’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구입한 금액의 10%를 환급받을 수 있다는 말이 귀에 꽂혔다. ‘10%면 카페 탐방하면서 마실 커피가 몇 잔이야.’ 여사님의 앞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몇 분쯤 흘렀을까. 뭔가에 홀린듯이 서명까지 했다. 이내 내가 결제했던 카드로 환불을 받고 여사님께 발급받은 카드로 결제까지 마무리했다.
회원 카드 권유자와 고객과의 만남. 신규 회원 가입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그 인연은 종결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희한했다. 회원 가입에 이어 결제라는 거사를 마친 내게 여사님이 다가왔다. 그러곤 질문 세례를 던지기 시작했다.
Q: 근데, 어디에 쓰려고 물건을 구입하셨어요?
A: 찬양예배가 있어서 구입했습니다.
Q: 목사님이세요?
A: (들켰다) 네(혹시 실수한 것은 없는지 되짚어 봤다. 다행히 없었다).
Q: 이전 발급 내용을 보니깐 사업자로 되어 있어서요.
A: 아... 예전에 빵집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목회 활동만 하고 있고요.
Q: 큰 교회에서 사역하세요? 아니면...
A: 개척교회 준비하고 있습니다(세상에서 제일 작은, 보이지도 않는...)
Q: 아이고... 어떡해~
여사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리실 것 같았다. 그 표정엔 걱정과 응원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고마웠다. 분명 유난히 추웠던 날, 몸까지 자연스레 움츠러들었던 날이었는데 마음이 따듯해지며 몸도 녹아내렸다.
A: 한 번 해보려고요. 맨땅에 헤딩!
Q: 기도할께요~ 목사님!
A: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눈 뒤 돌아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다른 고객들도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닫히는 문 사이로 달려오는 여사님의 모습이 보였다.
간발의 차로 버튼을 누르셨나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안도의 한숨인지 달려오시느라 차오른 숨인지 모를 가쁜 숨을 내쉬던 여사님이 스윽 봉투를 내미신다. “목사님~ 응원할게요! 작은 마음입니다.”
지극히 순간적으로 벌어진 장면이었다. 여사님의 봉투를 건네받자마자 속절 없이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다. 눈물이 났다. 펑펑 울었다. 좁다란 엘리베에터 공간에 함께 탑승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괜찮았다. 너무 따뜻했고 감사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내 추운 마음을 여사님을 통해 녹여내고 계셨다.
여사님이 ‘봄날의 햇살’처럼 따듯했다. 생각지도 못한 다정한 손길을 길에서 카드를 발급하면서 받았다. 하나님의 지지가 느껴졌고 유난히 추웠던 11월은 여사님을 만나기 전과 후가 달라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봄날의 햇살처럼 따듯했나?’ 돌아봤다. 그렇지 않았다. 오늘도 하나님은 개척을 준비하는 나에게 마음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서 더 깊고 넓은 시야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며칠 뒤 정신을 차리고 이케아에 여사님을 찾아갔다. 카드 회원 가입할 때 받은 연락처가 있었지만 사전 연락을 드리고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카드발급은 2인 1조로 근무에 투입된다는 사전 정보도 파악했다. 양손엔 2잔의 커피와 드립백 세트가 들렸다. 어떻게든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은 발버둥이었다.
여사님을 만났던 곳으로 향하는 동안 심장이 나댔다. 쿵쾅거림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얼굴을 뵈면 왠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한숨 돌리며 마음을 정리하고 카드발급 센터로 갔다. 그런데 여사님이 계시질 않았다.
성격유형검사(MBTI) 결과 중 나는 ENFP(재기 발랄한 활동가)다. 지금은 P(자율형)보다 J(계획형)가 필요한 시점이다. 연락을 드렸더니 오늘은 휴무란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찾아갔다. 이번엔 아내와 딸도 대동했다. 마침 추가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야 할 일도 생겼다.
물건을 담고 계산을 마친 뒤 카드발급 창구로 향했다. 다행이었다. 오늘은 여사님이 계셨다. 준비한 커피와 드립백을 드리며 며칠 전 나누지 못했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이렇게 까지 안 오셔도 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저희도 그 마음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전하고 싶었던 거예요.” 서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렇다. 개척은 춥지 않다.
‘우당탕탕 우영우’처럼 개척자로서의 여정도 8할 이상이 우당탕탕 좌충우돌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아무리 치밀하지 못하고 계획도 없이 걸음을 내디디고 또 내디뎌도 맞닥뜨리게 될 모든 순간을 당신이 예비하신 목적에 부합하게 쓸 것이라는 걸.(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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