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딸을 위한 참고문헌

김지은 2023. 4. 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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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영 작가의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를 읽고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하재영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가의 이전 책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 책에도 관심이 갔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라는 책 제목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 숨은 뜻이 무엇일까.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I never had a mother)'는 에밀리 디킨슨이 편지에 썼던 유명한 문장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선언은 모계에 대한 부정이 아니고 내 안의 '여성적 힘'을 선포하는 것이고 어머니의 시대를 넘어서는 것이며 나를 낳은 여자의 분신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말이라고 해석한다. 서문을 읽고 나니 비로소 제목이 이해가 됐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책 표지
ⓒ 휴머니스트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의 엄마를 인터뷰한 내용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앞에는 엄마의 축약된 삶이, 뒤에는 작가의 삶이 하나의 주제로 묶인다.
 
"내가 봤던 여자 어른은 대부분 누구의 아내이고 며느리이고 엄마였으니까. 나도 그게 여자의 역할이자 의무인 줄 알았지. 그렇게 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네.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를 꼽으라면 그때인 것 같아. 학생이었던 시절,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니었던 시절, 내가 그저 나였던 시절." (p.31)

작가의 엄마는 결혼 전에는 남녀 차별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대학까지 나왔는데 결혼 후에는 시동생들을 챙기고 시부모님 시중을 들며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집안일을 하는, 시댁에 묶인 삶을 살았다. 그 시대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다수가 졸업 후 노동 시장에 편입되지 않고 바로 결혼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작가는 이 현상을 여성의 지위는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남편과 시가의 계급으로 결정되었고 여성이 주체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회가 주체적이지 않은 여성을 원했다고 해석한다.

엄마인 나를 돌아보다

책을 읽는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는 다른 책이 쓰인다. 작가와 작가의 엄마의 이야기를 읽으며 끊임없이 나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비교한다. 사실은 2년 전쯤 나도 엄마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엄마에 대해 쓴 <한 여자>를 읽고 나도 나의 엄마가 알고 싶어졌다. 엄마가 되기 전 엄마의 삶에 대해서.

우리 엄마 또한 그 시대의 흐름에 순응했다. 엄마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결혼 후 아이를 하나 낳고 둘째가 생기자 교사를 그만두었다. 엄마에게 왜 교사를 그만두었냐고 물으니, 그때는 여자가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했다. 엄마가 결혼하고서도 계속 일을 하니, "아니, ○○ 선생은 왜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일해? 남편이 무슨 일 하는 사람이야?" 하면서 뒤에서 숙덕댔다고 했다.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에 맞춰 살았던 그 시대 엄마들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면에 부합하려 노력하는지, 또 딸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도 생각한다. 나에 집중하지 않고 타인의 시선만 의식하며 살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이 책을 읽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평범함'에 대한 고찰이었다. 작가의 엄마는 스스로 평범했다는 말을 많이 했고 튀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게 여자의 행복이라고 믿었다.
 
"평범해지고 싶은 소망, 혹은 스스로가 평범하다는 믿음의 기저에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삶에 대한 갈망, 정상성과 표준성에 대한 강박, 비주류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혐오가 자리하는지도 모른다."(p.39)

평범함에 대한 욕구가 비주류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 평범함은 다수성에 대한 것일수도 있지만 어떤 전형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엄마' 하면, '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 딸들은 평범해지기 위해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아들들은 평범해지기 위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때 숙덕거림의 대상이 된다.

자유로운 걸 지향하는 나도 엄마가 되니 아이가 숙덕거림의 대상이 될까 봐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그게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봐 두렵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딸이 미움 받을까 봐 딸의 행동을 통제했던 작가의 엄마도, 나서길 좋아했던 작가도, 다 이해가 된다.

그러나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건 행동을 통제하는 부모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키워주는 부모, 너는 너대로 괜찮다고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부모다. 엄마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인줄만 알았는데 엄마인 나를 돌아보게도 했다.

딸과 엄마 그리고 다시 나

책을 다 읽은 후, 2년 전 엄마와 했던 인터뷰를 꺼내 보았다. 엄마의 학창 시절을 묻는 내 질문에 엄마는 "나의 왕따 역사는 오래됐지"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선생님의 편애로 시작된 따돌림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엄마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되려 노력했고 학교에 오면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고 권하는 직장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결혼해서 사회가 원하는 어머니 상에 맞추어 살았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엄마의 딸이 아닌 같은 시대를 사는 한 사람의 여자로 엄마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엄마에게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좀 더 열심히 살 걸. 좀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인터뷰 말미에 난 엄마에게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돼. 하고 싶은 거 해" 하고 말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그냥 웃었고.
 
"다른 결말을 쓰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부여받은 역할과 책임을 완수한 여인이 자유롭게 비상하는 이야기, (중략) '노년의 성장담'은 그녀의 자부심에 구체적 근거를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픽션이 아니다. 걱정거리 없이 "매일매일 평범한 날이 계속되"었다. 엄마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p.239)

나도 엄마의 노년은 주체적으로 뭔가를 시도하고 성공하는, 예를 들면 박막례 할머니 같은 도전하고 성취하는 삶을 살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건 이 시대가 원하는 또 다른 흐름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스스로 열심히 살지 않았다 말했지만, 엄마가 살아낸 삶은 그 시대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읽는 것을 넘어서 행동하게 한다. 나의 엄마가 궁금해지고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책, 그 이야기를 쓰고 싶게 하는 책, 엄마의 분신이 아닌 나로 살게 하는 책이다.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 보시라.

《 group 》 시민기자 북클럽 : https://omn.kr/group/bookclub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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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게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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