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시장은 변곡점인데…기후변화 정책은 ‘역주행’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4. 2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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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 신지윤 그린피스 전문위원(동북아학 박사)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최종 확정
산업계 목소리 수용했지만 기후 대책 미흡
검증되지 않은 기술 계획도 지나치게 많아

지난 4월 11일 적지 않은 논란을 남기고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탄기본)이 최종 확정됐다. 이번 탄기본은 공식적으로는 향후 20년, 즉 2042년까지의 계획이지만 사실상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정 계획이다. NDC 수정도 요지부동인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은 유지한 채, 부문별 배출량 수정에 치중했다. 이와 같은 계획의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근본 의문, 시민 사회와의 의견이 사실상 배제된 절차적 문제 등은 도외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번 탄기본에 드러난 탄소중립위원회, 정부의 생각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필자는 최근 일어난 발전소 출력제어 논란, 한전과 민간사업자 간의 PPA 요금제 도입 갈등을 전력 시장의 변곡점 신호로 판단한다. 한국 기후변화 및 에너지 전환 정책을 폭 넓게 검토할 필요성이 커진 시점이다. 탄기본은 물론 ‘산업 분야’ 온실가스 대응 정책에 초점을 맞춰볼 때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2018년 대비 2030년 산업 부문 온실가스 11.4% 감축 목표다. 많은 전문가들이 감축 목표를 기존 14.5%에서 11.4%로 낮춘 사실을 비판했다. 온당한 지적이지만 11.4%라는 낮은 수치가 근본적으로 비판 대상이다.

11.4%는 공정 전환, 혹은 새로운 기후 기술 개발에 시간이 부족하기에 2030년까지는 감축 가능한 양이 많지 않다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수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2030년 감축 목표는 2018년 대비 40%다. 부문별로 에너지 전환 46%, 건물 부문 33%, 수송 부문이 38%인데, 대기업들이 주요 배출원인 산업 부문이 11.4%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온실가스 감축 논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의 1.5도 목표에서 출발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이미 산업혁명 이전 대비 1.1도 상승한 지구 온도가 1.5도에 멈추기 위해서 2030년까지 43%, 2035년까지 60%의 온실가스가 감축돼야 한다고 했다. 이를 고려하면 11.4%는 초라한 목표다.

둘째, 계획이 세밀하지 않고 가시성(visibility)이 떨어진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 계획에 많이 포함됐다. 예를 들어 수소는 탄기본에서 무탄소신전원이라는 명목으로 암모니아 혼소발전 20%가 전환 부문 계획에 포함됐다. 수소 부문만 따로 봐도 블루수소 예상 생산량이 늘어나 온실가스 배출량 계획이 기존 계획보다 120만t이 늘어났다. 암모니아 혼소 터빈의 기술적 완성도 이슈를 차치하더라도 수소 활용의 최대 난제는 수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현재 발표된 전 세계 청정 수요 프로젝트는 국제에너지기구(IAEA)가 예측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에 필요한 청정 수요 수요량의 35%에 불과하다. 그나마 FID(개발 전 최종 투자 의사 결정)가 이뤄진 프로젝트는 절반에 못 미친다. 우리나라는 자체 수소 생산보다 해외 수입에 크게 의존하려 하는 바, 수소가 부족해 수소 활용이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CCUS(탄소포집저장) 활용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검증되지 않은 기술의 개발과 연관된 감축 수단이 계획을 충족하지 못 했을 때, 어떤 대비책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는 왜 검증된 태양광, 풍력을 외면하고 검증되지 않은 수소, CCUS로 한 발 더 나아가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치환된다.

셋째, IT 산업 온실가스 감축 대책이 뚜렷하지 않다. 국가온실가스 통계상 IT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력 산업, 철강 산업보다는 낮다. 하지만, 이 수치는 자체 생산 단계에서 발생한 소위 Scope1 배출량이다.

그런데, RE100은 기업이 소비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인 Scope2까지를 기준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요구하고 있다. 채택이 임박한 국제지속가능기준위원회(ISSB)의 공시 기준에선 더 나아가 기업이 생산해 판매한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유발하는 모든 온실가스인 Scope3가 기준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IT 산업, 특히 반도체 산업은 전력 다소비 업종이다. 삼성전자의 예를 들면 2021년 Scope 1 배출량은 7.6MtCOe고, Scope2 배출량은 12.6MtCOe다. 따라서, RE100 이행을 염두에 둔 IT 산업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제조 공정에서의 불소계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재생에너지로 전환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금번 에너지 전환 부문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기존 계획보다 8.6%포인트를 낮춰 21.6%가 됐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산 속도를 늦춘 이유가 전력계통에 있고, 전력계통의 피로는 전력소비는 수도권에 45%가 몰려 있고 신규 재생에너지 자원은 남부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불균형에서 비롯한다.

삼성전자는 ‘국내 사업장에서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몇 안 되는 글로벌 기업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국내에서 확보 가능한 재생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산 속도에 브레이크를 건 시점에, 전력계통 문제를 심화시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뉴스가 나왔다. 비록, 탄기본 지면에 RE100 이행 기반 구축이 할애돼 있지만, IT 산업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시대를 역행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탄소배출권 제도 개혁 절실
전기 요금 현실화로 한전부터 살려야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탄소배출권 제도의 개혁이다. 같은 온실가스 1t을 배출할 수 있는 권리가 오늘 유럽에선 14만4700원(97.3유로)이고 한국에선 1만2900원이다. 한국의 감독당국은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의 BAU 배출량 측정과 유상할당에 엄격해져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강화되면 2030년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 11.4%는 자연스럽게 상향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도 그토록 강조해왔던 기후 관련 신기술 개발과 관련 밸류체인 형성이란 산업 정책을 진실로 추진하겠다면 배출량 감축 유인 제공이 선행돼야 한다.

두 번째 제안은 ‘한전을 살려라’다.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어려운 이유,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숱하게 논의됐다. 그런데, 정작 한국전력 자체가 전력 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한국전력의 소위 ‘출구 전략’에 고민은 충분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의 비중 확대는 한전 발전자회사가 보유한 석탄, 가스발전소 자산의 좌초자산화를 의미한다. 분산형 전력 시스템이 안착하면 한전의 전력판매 매출액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를 한전이 반길 이유가 없는 건 당연하다. 변화에 앞장 설 이유가 없는데 요금 인상 유보로 초래된 초유의 현금흐름 부족 사태는 변화에 소극적 대처, 예를 들어어 ‘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 투자 지연’ 에 핑계거리가 될 수 있다.

한전을 움직이게 하려면 재생에너지 확대 이후에도 한전이 살 수 있는 길을 터줘야 된다. 당장 급한 건 전기 요금의 현실화다. 아울러 신규 재생에너지의 원활한 전력망 연결을 위해선 서둘러 송전 요금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PPA(소비자와 발전사업자 간 전력 거래)도 활성화되고 우리 기업들의 RE100 달성도 빨라질 수 있다.

신지윤 그린피스 전문위원(동북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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