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궁에서 달빛볼까요?" 궁궐에서 인생사진…'궁케팅'까지

한승곤 2023. 4. 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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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에서 셀카 삼매경 빠지고
경복궁에서 '국왕과 왕비' 먹던 후식 즐겨
낭만과 여유로움 선호 MZ세대서 큰 인기

"진짜 겨우 예매했습니다.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2023 창덕궁 달빛기행' 예매를 가까스로 했다고 밝힌 직장인 박승혁(31)씨는 "코로나도 좀 끝나서, 올해 예매는 더 치열했던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씨는 "궁 행사는 계속 인기가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등 궁에서 열리는 기획 행사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에서는 '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이라는 신조어 '피켓팅'을 넘어선 '궁케팅'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궁케팅은 궁궐과 티켓팅을 합친 신조어다.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나온 말로, 20~30대 등 MZ세대들 사이에서 궁궐 투어를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경복궁 생과방' 입장권 예매자의 82.6%가 30대 이하였고, 덕수궁에서 열리는 '밤의 석조전'은 81.9%, 경복궁 '달빛 기행'은 74.1%가 30대 이하였다. 이렇다 보니 문화재청에서는 일부 행사 예매에 추첨제까지 넣어 운영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 RM은 2021년 자신의 트위터에 '경복궁 별빛야행' 관련 "(예매) 할 때마다 항상 매진돼서 저는 못 와봤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여기에 전통 소품도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자개소반 모양을 작게 본떠 스마트폰 등을 충전시킬 수 있는 소품,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고려청자 케이스 등 한국의 멋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실용성 있는 작품들이다. 그런 인기를 증명하듯, 지난해 10월 그룹 아이브(IVE) 장원영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의 갈라 디너쇼 행사에 봉황 비녀를 꽂고 패션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20일 오후 기자가 찾은 창경궁은 평일임에도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산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인근에 있는 창덕궁 역시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경복궁은 일반 관람객과 관광객까지 몰리며 주말을 방불케 했다.

경복궁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 나왔다고 밝힌 직장인 박형식(37)씨는 "궁이 주는 여유로임이 좋다"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궁을 찾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김영광(35)씨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궁을) 찾는다"면서 "조용한 분위기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궁 행사도 많은데,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반응처럼 궁 관련 행사는 인기가 많다. 특히 약과, 사과정과 등 궁중병과 6종과 함께 삼귤다, 감국다, 오미자 등 궁중약차 6종을 마시며 서울 도심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경복궁 생과방' 행사의 경우, 작년을 기준으로 3차까지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경복궁 생과방은 '국왕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는 곳으로, 이 행사는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토대로 실제 임금이 먹었던 궁중 병과와 궁중 약차를 오늘날에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행사다.

서울 경복궁 인근에 있는 한 한복대여점 앞. 20일 오후 평일임에도 많은 관람객, 관광객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덕수궁에서 열리는 '밤의 석조전' 행사 역시 인기가 많다. 석조전은 1910년에 완성된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이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근대 건축물로, 문화재청에서는 1930년대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일부 훼손된 석조전을 원형대로 복원해 2014년에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이국적인 건물이 있다 보니, 색다르기도 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인기가 많다. MZ세대들 사이에서는 '석조전 인생네컷'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에 문화재청은 지난해 '밤의 석조전' 행사에 중절모, 리본 장식 등 개화기풍 소품을 비치해, 셀프 사진 스튜디오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밖에 창덕궁 달빛기행, 창경궁 아연, 경복궁 별빛야행, 종묘 묘현례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우리 전통문화를 알기 쉽게 재해석했기 때문에 호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는 K-POP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며,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화도 함께 관심이 생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우리 문화가 굉장히 고급스러운 문화다. 다만 그 문화를 이해하고 다가서기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행사를 열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분이 찾아주시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3·창비, 중앙M&B) 저자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라며 "우리 궁이 인기 있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K-문화'가 인기를 많이 끌고 있고, (그렇다 보니) 관심도 많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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