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일대일로 후폭풍’이 거세다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김규환 2023. 4. 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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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 中 중심 경제공동체 구축, 에너지교역망 확보 차원
참여 개도국엔 글로벌 경기 침체·금리 상승 악재 수두룩
개도국 디폴트 위기에 中에 회수 불가능 악성채권 쌓여
지난 3년간 쏟아부은 돈 가운데 103조원 재협상·탕감액
일대일로 참여국 파키스탄을 방문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 4월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경제회랑 건설과 관련한 양해각서(MOU) 등 모두 50여개의 양자 협력관계에 관한 MOU를 체결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 신화/뉴시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해 야심차게 추친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Belt-and-Road Initiative·BRI,육상·해상 新실크로드)의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중국 중심의 경제공동체를 구축하고 에너지 교역망을 확보한다는 당초의 구상과 달리 코로나19 팬데믹(Pendemic·전염병 대유행) 이후 악화된 글로벌 경기,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급속히 치솟은 금리 등이 참여 개발도상국(개도국)에 직격탄이 됐다. 일대일로 개도국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중국은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악성대출’ 급증이라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2020년부터 올해 3월 말까지 3년 동안 전 세계 도로와 철도, 항구, 공항 등 인프라 시설에 대한 중국 국가기관의 대출금 중 785억 달러(약 103조 5000억원) 규모가 재협상했거나 탕감됐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 16일 보도했다. 이 같은 수치는 2017년부터 2019년 말까지 3년 간 기록한 재협상 및 탕감액인 170억 달러보다 4배나 더 많다. 일대일로 개도국에 제공한 중국의 차관이 지난 몇년 새 악성채권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얘기다.


2013년 시진핑 주석 지시로 시작된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중국 사상 최대 규모 국가 사업으로 올해 시행 10주년을 맞았다. 육상 실크로드(중앙아시아~유럽)와 해상 실크로드(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남미)를 건설해 해당 국가들과 중국과의 경제공동체를 표방해 왔다.


중국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개도국 가운데 일대일로 시업에 참여하는 국가에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투자한 덕분에 경제·외교적 영향력을 높인 것이다. 개도국 입장에서도 눈앞에 보이는 경제발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만큼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탄중프리오크 항구에서 중국이 제작한 고속열차 차량이 하역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고속철 사업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가운데 하나다.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 녹색금융개발센터의 ‘2022 일대일로 투자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투입한 금액은 모두 9620억 달러(약 1268조 8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이 프로젝트에 발을 들여 놓은 149개국에 빌려준 총대출액은 1조 달러로 추산된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도국에 대규모 융자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인프라를 건설했다. 이때 차관은 위안화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대부분 위안화로 빌려줬는데, 그 위안화 규모가 90%를 넘는다.


그런데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예상 밖의 난관에 부닥쳤다. 참여 개도국의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가 높아진 까닭이다. FT는 “수많은 일대일로 참여국들이 글로벌 경제 성장둔화와 금리인상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데다 부채비율마저 높은 탓에 파산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국가 디폴트 건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이후 국가 디폴트가 모두 14건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9건이 일대일로 참여국에서 나왔다. 지난해 국가 디폴트를 선언했던 스리랑카가 대표적이다. 스리랑카는 2010년 중국에서 대규모 차관을 들여와 함반토타항을 건설했으나, 지속된 경제난으로 결국 2017년 항구 지분 일부와 항만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줘야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디폴트가 임박하면서 반중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파키스탄에 도로와 철도, 송유관 등 인프라를 대규모 지어주고 과다르항 이용권을 얻었다. 과다르 주민은 항구를 운영하는 중국 회사가 현지 자원을 독차지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참가국들에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중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이권을 노린 중국 폭력조직들도 동반 진출하는 바람에 이들 국가의 치안 상황이 위협받고 있다. 사진은 중국 폭력조직의 두목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을 3년내 장악할 것이라고 큰소리르 치는 모습. ⓒ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갭처

일대일로 참여 개도국 경제는 대부분 국가부채가 많은 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 성장세 하락, 선진국 기준금리 인상 등 여러 악재가 겹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다. ‘선진국 경제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149개국 중 117개 나라(중국 포함)가 일대일로 사업에 따른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중국은 2022년 공여한 해외차관 가운데 60%가 재정난을 겪는 국가에 투입됐다고 미국 윌리엄&메리칼리지 원조데이터연구원이 전했다. 때문에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빌미로 개도국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를 제공한 뒤 이들을 '부채의 함정‘(debt trap)에 빠뜨려 경제적 속국으로 만든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크다.


사정이 이런 데도 중국은 참여국들의 부채탕감 논의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정 국가에 부채를 탕감해주면 같은 요구가 빗발칠 것을 우려한 탓이다.


중국도 참여 개도국들의 디폴트 우려가 가중된 상황에서 마냥 손 놓고 볼 수 없게 되자 앞으로 채무국에 대한 채무조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강(易剛) 인민은행장은 지난 1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서 개도국 채무조정에 관한 공동 프레임워크를 이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고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이 전했다.


공동 프레임워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이 2020년 개도국과 최빈국 채무를 재조정해주기 위한 합의다. 공동 프레임워크 합의에도 중국은 그동안 채무부담 경감조치를 도입한 22개국 채권국의 모임인 '파리클럽'에 참여하지 않은 탓에 채무협상이 진전되지 않았다.


ⓒ 자료: 국제신용평가사 피치

이 같이 참여 개도국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중국이 구제금융 제공에도 나섰다. 이들 채무국들의 디폴트로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타격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에이드데이터와 세계은행(WB),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킬세계경제연구소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2000~2021년 22개국에 모두 24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집행했다.


이중 1040억 달러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실시했으며 2021년 한 해에만 405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NYT는 “그동안 서방의 요구에도 개도국 부채 해결에 의지가 없었던 중국 정부가 입장 변화를 시사한 것”이라며 “중국이 부채탕감에 나설 경우 개도국 부채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긴급 구제금융 대출은 2010년만 해도 제공액이 전혀 없었지만, 2021년 한해에만 405억 달러로 같은 해 IMF의 구제금융 대출(686억 달러) 규모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NYT는 “구제금융과 일대일로 등을 통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됐다”며 “중국은 구제금융을 통해 개도국에 자신들을 미국과 IMF를 대체하는 ‘최후의 대부자’로 각인시키고 위안화 대출로 달러패권을 잠식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엔 한계도 있다. 구제금융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매슈 밍기 로디움그룹 선임분석가는 구제금융에 대해 “근본적 해결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NYT는 “중국은 여전히 부동산 부실대출 등으로 인한 국내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다”며 “개도국의 부채탕감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 자료: FT

더욱이 중국은 IMF나 미국보다 훨씬 높은 금리로 개발도상국에 돈을 빌려주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이 일괄 적용하는 해외 채권금리는 5%로 IMF의 장기채권 금리(2.5%)나 미국의 단기채권 금리(1%)보다 이자부담이 2배 이상 크다. 일각에서 중국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5%의 높은 금리를 매겨 ‘부채 외교’를 추구한다고 눈총을 받는 이유다.


그렇다고 중국이 현재로선 일대일로 프로젝트 기조를 수정할 가능성은 낮다. 장훙(張翃)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박사후과정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를 '세기의 사업'이라고 명명한 상태"라며 "일대일로 실행 방식에 오류가 있었다는 말조차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개도국 빚은 중국 경제에도 부담이다. FT는 “악성대출 급증은 중국은행의 재정에 타격을 주며 중국 금융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경제가 재정난을 겪는 개도국에 무분별하게 차관을 제공한 것에 결국 발목이 잡힌 셈이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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