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쫒아낸 보안시장 독식…신고가 쓴 '모토로라'의 부활 [바이 아메리카]
[한국경제TV 김종학 기자]
최근 남중국해,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미중간 갈등이 다시 불붙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 이후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런 기조가 이어지며 전세계 정보기술 등 첨단기술 시장의 지형마저 뒤바뀌고 있죠.
이런 지정학적인 변화가 한때 설자리를 잃어가던 무선 통신장비 회사가 거대 기업으로 되살아났습니다. 바로 미국의 국가 인프라와 미국 자국민의 일상을 보호하기 위해 2018년 8월 제정한 국가방위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NDAA) 영향도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해킹 등 보안 문제로 중국산 CCTV 도입을 전면 금지한 이 법을 근거로 국가 기간망 등에 중국 기업의 통신 장비 혹은 영상장비를 대체하게 되는데, 이러한 반사이익을 받은 기업이 모토로라 솔루션입니다.무전,통신,관제를 비롯해 아비질론의 영상감시와 분석 솔루션으로 자국내 수요를 사실상 독식하고 있죠.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서 반짝이는 기업들을 들여다보는 '바이 아메리카'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불안 사회'가 탄생시킨 미국 최대 재난안전망, 통신망 사업자이자 대지진과 화재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무전기 최강자 '모토로라 솔루션스(티커명 :MSI) ' 이야기입니다.
올해들어 미국 내에서 총기를 사용한 사상 사고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학생·교직원 등 6명이 숨진 내슈빌, 해고된 은행 직원의 앙심에 13명 사상자가 발생한 켄터키주 루이빌, 멤피스(11명 사상), 테이트카운티(6명 사망) 등 국내에서도 이러한 뉴스에 둔감해질 정도입니다.
비영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 집계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집계 가능한 대규모 난사 사건만 130건(주:녹화일 이후 2건의 사고가 추가로 발생) 지난해 발생한 647건을 빠르게 따라붙고 있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팬데믹 이후 미국의 총기를 이용한 살인과 사망자를 분석한 자료에서 2020년 한 해에만 4만 5천명, 35%나 증가해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분석을 내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증가하는 총기 사고뿐 아니라 지난 3년에 걸친 팬데믹, 각종 재난과 지정학적인 위협의 증가로 북미, 유럽을 중심으로 한 통신장비와 감시장비 수요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8년 이전 이러한 장비는 중국 통신사, 통신기업들이 잠식하던 시장이었지만, 미중 갈등 이후로 시장의 구도가 확연히 뒤바뀌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경찰과 군이 착용한 장비 중에 무기를 제외하고 어느 나라에서건 허리춤이나 가슴팍에 꼭 보이는 장비, 바로 '모토로라' 로고가 박힌 무전기와 통신장비, 감시 카메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접는 스마트폰에다 인공지능 기술이 번성하는 시대에 웬 한물간 무전기 얘기인가 싶지만, 통신망이 다 망가진 재난과 휴대전화 버튼 누를 시간조차 없는 긴급한 사건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유일한 장비라는 점을 내세워 독점적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기술입니다.
무전기는 급박한 상황에서 버튼(Push To Talk)만 누르면 0.5초 이내 일정 거리내에서 누구든 연결 가능한 가장 효율적인 통신 수단이죠. 게다가 버튼을 눌러 발언권을 얻은 뒤에는 동시에 명령 전달이 가능하다보니 군사 작전은 물론 경찰과 소방, 수만 명이 운집한 경기장,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등 대규모 작전과 인파 통제 등이 필요한 보안·공공안전 분야에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겁니다.
최대 고객이 밀집해 있는 미국만해도 주, 지방, 연방 정부를 상대로 각국 통신장비 업체들과 경쟁하는데, 홀로 점유율 40%에 육박하는 모토로라솔루션스는 무전기만으로 연간 9조원, 반도체 매출이 부럽지 않을 정도입니다. 미국의 NDAA 국방수권법 제정 이전까지만 해도 시장을 잠식해오던 화웨이, ZTE, 하이크비전, 다후아기술, 하이테라 등 5개 중국 기업이 생산한 통신·감시 장비가 퇴출되면서 이를 고스란히 차지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모토로라 하면 날개 모양의 알파벳 M 로고 디자인에 90년대를 풍미한 스타텍, 레이저폰이 더 익숙하지만 이미 옛날 얘기입니다. 세계 최초의 차량용 무전기를 발명하고, 최초의 휴대폰(1973년), 80년대 ‘다이나텍’, 마이크로텍 등의 혁신을 썼던 모토로라 모빌리티는 노키아, 삼성전자, 애플에 차례로 밀려나 중국 레노버에 넘어가 존재감조차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망한 줄 알았던 모토로라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이런 걸 전화 위복이라고 해야할까요? 2011년엔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의 압박에 못이겨 모토로라 모빌리티와 모토로라 솔루션스를 분사했는데, 마지못해 떼어낸 '솔루션스'부문이 경쟁자가 없는 재난통신 사업에 국제 정세의 도움까지 얻어 대박을 터뜨린 셈이죠.
재난안전을 위한 통신망은 전세계에서 프로젝트 25, 테트라(TETRA)라고 불리는 표준을 쓰고, LTE기반 차세대 공공재난 안전망 구축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이런 통신기술은 모토로라 솔루션스가 사실 원조나 다름없거든요.
나아가 우리가 지금 쓰는 휴대폰 LTE니 5G니 이름만 다를 뿐 어쩐지 잘 느껴지지 않는 속도에 비싼 요금제를 부담하는 동안 모토로라 솔루션스는 무전을 넣으면 인공지능으로 번호판 식별해주고, 사고 발생 지점을 자동으로 인식해 경찰·소방 사고 현장팀까지 자동 배치 해주는 넘사벽 기술을 구축해둔 상태입니다.
지금은 악당 때려잡는 택시기사로 이직한 '박해영 경위님'이 애타게 손에 쥐던 TRS, 무전기 통신망으로 북미 지역 1위, 올해 초엔 유럽의 탈레스를 제치고 영국 재난망 구축 사업까지 따냈습니다.
게다가 'Black Lives Matter' 흑인 인권 문제가 불거진 이후로 미국 지역 경찰마다 가슴 중앙에 착용하고 있는 바디캠을 비롯해 미국 전역의 911 관제센터, 보안카메라를 몽땅 쓸어담는 일종의 군수기업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모토로라 솔루션은 아예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경기장, 지하철 등의 인물 하나하나의 동선과 사고 가능성을 영상으로 분석하고, 심지어 CCTV에서 총기 사고 현장을 즉각 탐지하는 기술까지 투자하면서 마치 플랫폼기업이 온라인 시장을 독식하듯 전세계 80조원 규모 재난망 시장을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까지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높은 금리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타격을 받았지만, 정부의 후원 속에 모토로라솔루션스는 이마저도 피했습니다. 미국 정부에 찰싹 붙어서 사업을 하는 덕분에 6~8년 마다 다가오는 교체 수요를 흡수하는데다, 올해 연말 기준 수주 잔고만 해도 143억 달러(18조 8천억 원)에 달할 만큼 막강한 수요를 쥐고 있습니다.
덕분에 무전기와 보안카메라 장비 매출과 방재센터 구축까지 더해 작년에만 연간 11조 9천억 원, 1년 만에 37%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기업 운영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떼고도 배당과 투자에 사용가능한 여유자금을 보여주는 잉여 현금흐름(Free Cash Flow)은 109% 늘어, 웬만한 배당주 못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비질론(Avigilon), 에어디펜스(무선랜 보안 1위), 학교 재난알림 앱을 설계한 레이브 모바일 세이프티 등 해마다 보안기업을 꾸준히 사들여 다른 기업과 격차를 벌리면서도 현금이 남아도는 거죠.
올해에도 배당을 주당 0.88달러로 11%나 증액했는데, 이를 미리 알아본 대형 펀드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주가는 연중 최고치, 시가총액은 무려 478억달러(약 63조원)를 기록 중입니다.
창업주인 갤빈가가 떠난 뒤 캐피탈 월드 인베스터스, 뱅가드, 블랙록 등이 지분을 보유해 상장지수펀드를 통한 고정적인 자금 유입이 주가 상승의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월가 JP모건은 공공부문의 견조한 수주 잔고가 기대 이상이라고 보고, 지난달 중순 모토로라 솔루션스의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하기까지 했습니다. 모토로라 솔루션스의 현재 주가수익비율 PER은 35.7배, 월가 12개월 목표주가는 평균 302달러로 앞으로 6.8%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막강한 정부 수요를 바탕으로 다음 분기 실적도 낙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토로라솔루션스는 연례 투자자보고서에서 지금의 성장으로 더 안전한 학교, 지역사회와 경찰간의 신뢰, 더 빠른 재난 대응 환경을 만드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본능 중에 앞날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고 안정적이면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욕구가 깔려있다고 합니다. 내 가족과 사회를 지키기 위해 먼 누구나 같은 행동을 할 겁니다.
모로토라 솔루션스는 정보기술과 통신망을 꽉 쥔 미래기술 기업이기도 하지만, 미국 내에서 대통령조차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총기 규제, 한편에서 안전하다고 믿기 어려워지는 사회 불안감이 맞물려 성장하는 회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성장하는 기술주이자 공공기관의 막강한 수요로 성장하는 회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획:김택균 #구성:김종학 #촬영·편집:이예지
김종학기자 jhkim@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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