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토크]예금 상품 만든 애플, 은행도 될 수 있을까?

임주형 2023. 4. 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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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지갑, 결제 이어 저축 상품까지
금융 서비스 포트폴리오 갖춘 애플
규제 엄격한 금융업 뚫기 힘들어
대신 '고객 데이터' 활용 가능

아이폰으로 유명한 미국 IT 기업 애플이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저축성 예금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연이율 4.15%로 미국 은행 평균 이자율의 10배에 달합니다. 그 파급력에 중소 은행은 물론 대형 은행도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실 애플은 10여년 전부터 금융 산업에 눈독 들여왔습니다. 전자결제, 전자지갑, 심지어 신용카드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플은 은행으로 변모할 수 있을까요? 이미 IT 기업으로써 충분히 성공적인 애플이 굳이 금융에 손을 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금 147조원 보유한 애플, 저축 상품 내놔

애플 카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애플의 저축 상품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발표됐습니다. 연이자 4.15%의 파격적인 조건, 애플 카드 사용 시 최대 3%의 캐시백도 제공합니다. 아이폰 사용자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쉽게 등록할 수 있습니다.

계좌 출시 이후 미 금융권에는 작지 않은 파장이 있었습니다. 스테이트스트리트 은행, BNY멜론 은행 등 대형 은행의 주가도 뉴욕 증시 장중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SVB) 뱅크런 사태 이후 불안에 떨고 있는 지역 중소은행들도 경계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은행 위기 이후 갈 곳을 잃을 예금을 빨아들일 생각이라면, 지금이 가장 적기로 보입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SVB 뱅크런 이후 미국 지역 금융 그룹 3곳에서 600억달러에(약 80조원) 가까운 고객 예금이 빠져나갔습니다.

애플이 비록 금융기관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금융 관련 서비스를 해온 경험이 있고 현금 흐름도 147조원(지난해 기준)에 달하는 튼튼한 공룡 기업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애플 생태계 크지만…'금융업' 규제 벽 높아

미국의 대표 금융업 단지 뉴욕 맨해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렇다면 애플은 은행이 될 수 있을까요. 애플의 금융 서비스 자체는 긴 역사를 가졌습니다. 애플의 전자지갑인 '애플 월렛'은 2012년 출시 됐습니다.

이후 애플은 독자적 전자결제 체계인 애플 페이, 애플 제품 구매에 대한 캐시백을 지원하는 애플 카드, BNPL(선구매후결제) 등을 내놨고, 모두 호평받고 있습니다. 저축 계좌가 약 13억명에 달하는 애플 고객에 도달할 수 있다면, 애플은 순식간에 거액의 예금을 유치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애플이 '금융 서비스'를 하는 것과 '금융 기관'이 되는 것 사이에는 큰 갭이 있습니다. 간편 결제, BNPL 등 디지털 금융 서비스는 핀테크 스타트업에는 좋은 시장이지만, 이미 애플 같은 거대 기업이 본격적으로 투자하기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융 사업의 알짜배기는 수신과 여신이고, 그중에서도 고객에 대출해주는 여신 사업이 이익 증대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여신 사업을 벌이려면 금융당국으로부터 허가받아 금융기관을 출범시켜야 합니다.

미국, 영국, 유럽 등 선진국 소매 은행 허가 심사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을 요구합니다. 전 세계 단위로 금융산업을 하려면 각국 금융당국으로부터 개별적인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애플 같은 IT 기업이 그런 노하우와 인력을 모두 보유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미국, 영국 같은 금융 강국에서도 거대 은행은 대부분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갖춘 회사들입니다.

'고객 데이터'가 애플 금융 기술 핵심 경쟁력

애플은 애플페이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대신 애플이 노리는 것은 금융 정보업일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금융 기술기업 '유닛' 창업자인 이타이 담티는 최근 '링크드인' 블로그에 애플 저축 계좌의 의미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담티에 따르면 애플은 직접 금융업을 하는 대신, iOS 운영체제를 다양한 금융 서비스로 확장해 다른 은행, 보험사 등이 필요로 하는 '기반시설'을 지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애플은 애플 계좌를 등록하고 애플 월렛을 이용하며 애플 페이로 거래하는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10억명 넘는 고객의 소비 패턴, 선호 취향 등을 파악 가능합니다. 이 정보는 애플 고객들에게 '맞춤형 상품'을 제공하려는 금융 기업에 매우 유용할 겁니다.

그렇다면 애플은 향후 보험사, 은행 등과 협력해 새로운 애플 맞춤형 상품을 개발할 때 파트너사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셈입니다. 이번 저축 계좌도 골드만삭스와 협력해 개발한 것처럼 말입니다. 굳이 금융 기관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지 않고도 금융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테크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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