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가 선 무대, "왜 코첼라인가"에 대한 대답
[이현파 기자]
▲ 지난 4월 15일(미국 캘리포니아 시각),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블랙핑크 |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지난주 '코첼라'라는 이름을 질리도록 들었을 것이다. 지난 14일부터 16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이 열렸기 때문이다. 코첼라는 글래스톤베리(영국)와 함께 세계에서 손꼽히는 종합 뮤직 페스티벌이다. 특히 올해는 블랙핑크가 2023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간판 공연자)로 공연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한 관객이 준비한 태극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십수만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네 명의 동양인 여성의 모습은 역사적이었다.
출범 당시 인디 록 페스티벌의 성향이 강했던 코첼라는 큰 흥행을 거두지 못 했다. 그러나 전설적인 밴드들의 재결합, 프린스와 마돈나 등 역사적인 뮤지션들의 공연이 이어지면서 페스티벌의 문화적 상징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다프트 펑크의 공연은 훗날 EDM 뮤지션들의 음악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2019년, 신인 시절의 빌리 아일리시는 헤드라이너들보다 더 거대한 떼창을 이끌어내며, 한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예고했다. 코첼라를 '비첼라'로 바꿨다고 평가받는 비욘세의 2018년 공연 역시 언급해야 한다. 이처럼 코첼라의 헤드라이너는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혹은 이끌었던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블랙핑크의 공연은 일반적인 월드 투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공연 말미 '지금까지 블랙핑크였습니다'라고 외친 그들의 모습은 오래 회자될 것이다.
페스티벌의 거의 모든 공연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는 점도 이 페스티벌의 위상을 키우는 데 한 몫 했다. 높은 수준의 음악과 영상을 집에서 즐기는 기쁨이 끊이지 않았다. 거의 모든 공연을 유튜브로 중계하는 페스티벌은 전 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없다시피 하다. 소위 '공연의 민주화'는 코첼라의 신화성을 더욱 키웠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음악 팬도 동시간성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중 일부는 그 다음해 캘리포니아행 항공권을 결제했을 정도니까. "모두가 코첼라를 알고 있다. 당신이 음악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라는 빌리 아일리시의 말은 사실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코첼라가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페스티벌이냐' 묻는다면 의문 부호를 제기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음악에는 딱히 관심이 없고, 소위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게시하기 좋은)' 한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인플루언서들의 잔치로 변질되었다는 혹평도 존재한다. 이것은 최근 코첼라 페스티벌을 직접 보러 간 한국인 친구들도 증언한 것이다.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음악가 비요크(Bjork)가 장대한 공연을 펼치고 있는데, 무대 대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관객이 적지 않다는 비보가 들려왔을 정도니까.
▲ 블랙핑크 '코첼라 2023' 공연 모습 |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럼에도 '왜 코첼라인가?' 묻는다면, 단순한 대답을 꺼낼 수밖에 없다. 음악이 선사하는 멋진 순간 때문이라고, 또 이 시대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코첼라는 급변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자 부지런히 고뇌한다. 특히 올해는 백인 헤드라이너가 존재하지 않는 최초의 코첼라였다. 아시아에서 온 걸그룹(블랙핑크), 아프리카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프랭크 오션)가 헤드라이너를 맡았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슈퍼스타 배드 버니(Bad Bunny)는 코첼라 역사상 최초의 라틴 헤드라이너가 되었다. 그는 공연의 도입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실히 하면서 라틴 문화권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힙합, 알앤비, 라틴 음악과 아프로비츠 등이 백인 중심의 록 음악을 대체했다.
올해 코첼라에서는 기억하고픈 순간들이 많았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라틴 팝스타 로살리아(Rosalía)의 공연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피비 브리저스, 줄리엔 베이커, 루시 데커스로 구성된 슈퍼 그룹 보이지니어스(boygenius)는 무지개색 기타 줄을 멘 채, 여성과 퀴어의 연대를 노래했다.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블론디(Blondie)의 1945년생 보컬 대비 해리는 반짝이는 옷을 입고 젊은 관객들 앞에서 퇴색되지 않는 젊음을 노래했다. 흑인이자 성소수자인 아티스트 이브 튜머(Yves Tumor)는 싸이키델릭과 알앤비,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섞으면서 록의 미래를 제시했다. 그뿐인가. 아르헨티나, 인도, 대만 등 다양한 국가의 뮤지션들이 자신이 속한 신(scene)을 소개했다.
음악이란 이토록 다양한 볼거리,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이런 순간 하나하나가 기록되어 코첼라의 신화성을 연장시키는 것은 아닐까? 코첼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1일부터 23일(현지 시각), 동일한 라인업으로 2주 차 공연이 펼쳐진다. 요즘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당장 이번 주말, '코첼라'의 공식 유튜브 채널로 달려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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