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자아를 찾기 위해 다리를 잘라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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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데이비드'라는 남자가 있다.
언젠가부터 그는 한쪽 다리가 자신의 일부가 아닌 불쾌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잘라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단순한 정신이상자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자아를 드디어 찾은 것일까? 저자는 데이비드가 난생 처음으로 온전해졌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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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데이비드’라는 남자가 있다. 언젠가부터 그는 한쪽 다리가 자신의 일부가 아닌 불쾌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걸을 때는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다리로만 깡충거리며 걸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잘라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여러 번 시도했다. 지혈대와 포장용 노끈을 이용해 다리를 잘라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럴수록 다리를 잘라내야겠다는 열망은 커진다. 그는 다리를 잘라내기 위해 의사에게 의뢰한다.
인도의 과학 칼럼니스트 아닐 아난타스와미가 쓴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통해 자아를 들여다보는 도서다. 뇌과학을 통해 자아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저자는 자아가 형성되는 데 있어 몸이 우선인지, 마음이 우선인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책의 시작은 우화다. 한 남자가 길을 걷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 들어가서 눕는다. 그런데 도깨비가 들어와 남자 옆에 시체를 내려놓는다. 이후 다른 도깨비가 들어와 그 시체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의 싸움 속에 남자가 중재하게 됐다. 남자는 어차피 죽을 운명, 먼저 들어온 도깨비가 시체를 들고 왔다고 말한다. 그러자 뒤에 들어온 도깨비는 화를 내며 팔을 떼 버린다. 처음 들어온 도깨비는 그 남자를 불쌍히 생각하며 시체의 일부를 떼서 붙여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남자의 몸은 전부 시체로 바뀐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누구일까? 원래의 자신 그대로인가, 아니면 신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된 건가?
이후 책은 ‘코타르 증후군(자신이 죽은 존재라고 믿는 질환)’, ‘알츠하이머(치매)’, ‘제노멜리아(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고 싶은 질환)’, ‘조현병’, ‘이인증(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질환)’, ‘자폐증’, ‘유체이탈·도플갱어’, ‘황홀경 간질’ 등 순서로 자아에 대해 탐색한다. 책 자체의 난이도는 있다. 뇌과학을 다루는 만큼 과학적 용어, 철학적 용어를 번갈아 가며 쓰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신질환과 자아에 대한 이야기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다만 집중해서 읽다 보면 우리와 멀지 않은 사례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한 예로 치매다. 치매 환자를 보살피는 사람들은 같은 애로사항을 겪는다. 과거 경청을 잘하고 여유롭던 사람이 치매에 걸리자 막말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좀처럼 참지를 못한다. 이 책에 나오는 치매 환자의 딸도 마찬가지다. 자상하던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잠을 깨우면 화내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책은 치매 환자들이 ‘서사적 자아’를 잃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까지 구성하는 능력을 서사라고 한다. 치매는 해마와 뇌측두엽을 공격해 서사를 구성하는 능력을 앗아간다. 자신이 과거에 누구였는지, 무슨 경험을 했는지 잊어버리고 미래를 위해 학습하는 능력조차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치매 환자는 신체가 있지만 자아가 있는지 불명확하다.
다시 데이비드 이야기로 돌아오자. 데이비드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즐겼다. 그의 얼굴에 있던 어두운 그림자마저 사라졌다. 그는 단순한 정신이상자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자아를 드디어 찾은 것일까? 저자는 데이비드가 난생 처음으로 온전해졌다고 평가한다. 신체를 잃어버렸지만 자아는 찾은 셈이다. 이외에도 책은 흥미로운 정신질환에 관한 사례와 심도 높은 철학에 대해 논하고 있다. 분명 독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l 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 l 더퀘스트 l 396쪽 l 1만9800원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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