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대표 미인, 지금은 CEO입니다

최동현 2023. 4.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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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SPA' 브랜드 몬테밀라노 세운 오서희 대표 인터뷰
프랑스 명품옷 바이어로 일하다 '세탁 간편한 프린팅 옷' 아이디어 얻어
올해로 23년째 사업…매출 500억원 달성하기도
"인문학 감성 풍부한 사업가가 꿈…시니어 사업 확장 계획"
오서희 몬테밀라노 대표.(사진제공=몬테밀라노)

국내 의류 시장은 명품과 SPA(패스트패션) 브랜드로 양극화된 지 오래다. SPA는 다양한 상품을 빠른 주기로 저가에 판매하는 의류 브랜드다. 젊은 층이 주로 찾는 탑텐·유니클로·자라·H&M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시니어층에서 이들 브랜드보다 더 인기가 많은 곳이 있다. 이른바 '엄마들의 SPA'라 불리는 의류업체 몬테밀라노다.

몬테밀라노는 1993년도 미스코리아 '댈러스 진' 출신인 오서희 대표가 2001년 설립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오 대표가 의류업계에 뛰어든 이유는 하나다. "내가 공들여 그린 그림이 어느 한 자본가의 집에만 걸려있는 게 싫어서"다. 그는 사업가라기보다는 본인의 창작물이 평범한 많은 사람의 옷장에 수집되길 원하는 '의류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몬테밀라노의 주요 타깃은 4050 여성이다. 감각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면서도 실용성에 더 무게중심을 둔 옷을 제작해 판매한다. 자식 키우랴 집안일 하랴 바쁜 엄마 세대가 접근하기 쉽도록 세탁이 간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오 대표가 몬테밀라노 창업 전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레오나드에서 바이어로 일하면서 깨달았다. 오 대표는 "레오나드는 독창적인 플라워 프린팅이 아름다운 세계적 브랜드지만 명품이라 세탁이 까다로웠다"면서 "물빨래가 쉬운 프린팅 옷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창업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23년 동안 사업을 이끌어온 비결에 대해 "약속을 잘 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는 "저는 직원들에게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잘해주겠다고 하지 않는다. 거래처와 만날 때도 언제 골프 한번 치자는 얘기도 안 한다"면서 "기약 없는 약속을 남발하지 않고 꼭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한다. 이게 장수 비결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서희 몬테밀라노 대표.(사진제공=몬테밀라노)

사업에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불경기로 사업 2년 만인 2003년 6개 매장을 모두 정리하기도 했다. 백화점 임시매장을 빌려 재고떨이까지 했다. 당시 기존 의류 가격에 최대 90%를 할인해 팔았다. 20만원짜리 옷을 2만원에 팔자 제품은 순식간에 동났다. 일련의 시련을 겪은 오 대표는 자사 의류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다시 책정했다. 시니어 전문 SPA 브랜드에 집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그 후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현재 전국 백화점 30여곳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코로나19 이전엔 매출이 5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몬테밀라노는 오프라인 매장 위주여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하던 해외사업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간 지난해부터는 베트남과 뉴욕 등지에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오는 5월엔 롯데가 지원하는 중소기업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통해 시드니에서 열리는 '코리아 브랜드 엑스포'에 참여할 계획이다.

몬테밀라노가 개최한 시니어 패션쇼에서 참가자들이 워킹을 하고있다.(사진제공=몬테밀라노)

오 대표는 2018년 서울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에서 시니어들을 위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행사를 주관한 강남구는 당초 키 크고 젊은 20대 모델에 일부 시니어 모델을 참여시키자고 오 대표에 제안했다. 하지만 오 대표는 평범한 시니어가 메인이 돼야 한다고 강남구 측을 설득했다. 결국 행사는 전문모델 없이 70여명의 일반 시니어들로만 치러졌다. 오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별마당 도서관에 400여명이 둘러 모였다. 빨래하던 엄마, 밥하던 우리 할머니가 멋지게 차려입고 레드카펫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가족들이 처음 본 거다. 시니어들은 처음엔 워킹이 어색했지만 무대를 몇 번 오가더니 점점 자신감이 넘쳤다.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한 가족은 피날레를 마치고 서로 끌어안고 엉엉 울기도 했다."

오 대표는 앞으로 인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업가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비 패션인 출신 패션디자이너로서 단순 예쁜 옷만 팔기보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다. 그가 실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시니어 패션쇼를 매년 여러 차례 개최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엔 심리학 박사과정에 도전할 계획이다. 오 대표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자기 자신을 알고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게 인문학적인 사업가라고 생각한다"면서 "패션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사업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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